본문듣기

암환자 두 명의 만남... 얼굴 맞대자 눈물이 글썽였다

아파보니 말 안해도 알겠는 그 마음... 암투병하는 조카가 아저씨를 응원합니다

등록 2024.03.26 10:00수정 2024.03.26 15:5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아저씨 병을 생각하니 착잡해졌다. 암환자라서 암환자의 심정을 더 이해한다고나 할까(자료사진). ⓒ 픽사베이

   
7촌 뻘 되는 친척 아저씨가 2년 전 '담도'에 이상 있다는 진단을 받으셨다. 그런데 그 이후 투병이 길어지고 있어 안타깝다. 처음 1년은 경과가 그런대로 좋았는데 이후 악화돼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고 하신다.   


아저씨가 발병할 무렵 나도 암으로 씨름하고 있던 터라 더 동병상련하는 입장이다. 이후 틈나는 대로 서로 병세와 안부를 나누고 있었는데, 최근 병세가 악화됐는지 자주 정신을 잃고 쓰러지신다는 아저씨 소식을 전해 듣고는 깜짝 놀랐다.
    
병이라는 게 대게 늘 그렇지만, 조금 나아지는가 싶다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힘들게 한다. 특히 암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더 자주 경험할 것이다.
     
암환자는 환자 심정을 안다   

사실 내 경우는 더 심하다. 편도에 생긴 두경부암을 집중적으로 치료하다 예후가 좋아지다가 갑자기 신장암과 방광암이 연거푸 생긴 것이다. 사자가 사라지니 호랑이가 나타난 격이었다(관련 기사: 암투병 중 기사쓰기, '살아갈 용기'입니다 https://omn.kr/27b4d ).
    
아저씨 병을 생각하니 착잡해졌다. 아내는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지 모르겠다며 내 오지랖을 탓했지만 괜스레 서글픈 감정이 앞섰다.
     
암 투병하는 조카를 누구보다 걱정해 주던 아저씨 생각에 나는 며칠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선뜻 아저씨를 찾아 위로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암환자라서 암환자의 심정을 더 이해한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나는 가끔 전화와 문자로 아저씨 건강을 걱정할 뿐이었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암투병을 오래 하면 사람 구실을 못할 때가 많다. 병색으로 인해 경조사 참석은 예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뜻만 전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내 솔직한 마음은 그렇지 않다. 축하는 축하대로, 슬픔은 슬픔대로 직접 찾아가 그들과 함께 기분을 나누고 싶다.
     
그런데 아저씨의 위급한 상황을 더 이상 방관할 수만 없었다.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게 현명한 도리가 아닐까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아저씨 뻘이지만 사실 우리 둘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다. 가족끼리 만나면 호칭을 나는 '아저씨'로, 동문이 함께 하면 선배님이라 부른다.
     
아저씨가 고등학교 6년 선배니 사실 내게는 하늘 같은 존재다. 그 옛날 학창 시절로 돌아가면 감히 말도 걸지 못할 상대였다.
     
아저씨 덕분에 선배들도 나를 특별히 아껴준다. 조카를 끔찍이 챙기니 선배들도 나를 함부로(?) 하지 않았다. 선배들은 나를 친동생처럼 대했다.
     
아저씨는 젊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특히 산을 잘 타 대학을 진학해서는 산악회를 창설할 정도였다.
     
'산 사나이'인 아저씨는 체력과 정신력도 남달랐다. 하산해서 어울리는 뒤풀이 술자리에는 항상 아저씨가 중심이었다. 그게 아저씨만의 ' 카리스마'이기도 했다.

'아픈 손가락'... 이렇게 반가울 줄 알았으면 진작 올 걸
   
내가 등산을 시작한 것도 2013년 아저씨가 특별히 권유해서다. 한창 만보 걷기가 유행하던 시절 그것만이 유일한 운동이라 여겼는데 아저씨를 보고 따라나선 것이다.
      
매월 산악회 행사에 참가하면 아저씨를 찾아 인사를 드리고 그간의 안부를 여쭙는 것이 다른 동문들보다 먼저 해야 할 의례였다.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등학교 동문산악회도 아저씨가 초석을 깔았다. 거기서 아저씨는 ' 영원한 산악대장'으로 불린다. 아저씨 동기들은 산악회에서 지금도 노익장을 뽐내고 있다.
      
아저씨가 산악회에 오지 못한 것도 해를 넘겼다. 아저씨의 답답한 마음을 이해하는 동창들은 한 달에 두 번 아저씨 집 근처에서 함께 식사하며 위로하고 있다.
     
나 또한 산악회에 가끔 참가하지만 후배들을 만나면 온통 아저씨 이야기뿐이다. 산을 호령하던 산악대장이 병석에 있어 쾌유를 비는 것이다.
     
어제는 몸에 좋다고 아들이 내게 보낸 과일 '망고' 몇 개를 싸들고, 아저씨 집을 찾아 무작정 방문했다. 아저씨는 마침 소파에 앉아 계셨다. 아픈 사람들끼리 아무 말 없이 얼굴을 마주하자 잠시 눈물이 글썽거렸다.
     
a

아들이 보내 준 과일. ⓒ 이혁진

 
아저씨와 내가 이렇게 반갑고 기뻐할 줄 알았으면 진작에 병문안을 올 걸, 하고 뒤늦게 후회했다.
     
항암치료와 심한 피로로 몸은 많이 수척해도 정신은 살아있으신 듯해 안도했다. 내가 말을 건넸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서로 희망을 가지고 의지하며 삽시다."
    
어쨌든 마음이 후련했다. 미루던 일을 기어코 마쳤을 때 그런 기분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기 효능감이랄까.
    
과거 하산 후 아저씨가 호쾌하게 권하시던 술도 갑자기 떠올랐다. 지금은 아프지만, 우리 둘 다 몸만 회복하면 제일 먼저 술로 축하할 것 같다.
     
아저씨와 나, 아니 선배와 나, 우리 모두 서로에게 떠올리면 마음이 아픈 '아픈 손가락'이다. 아저씨가 예전처럼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산에 다시 오를 수 있게 되면 그때쯤 나도 건강을 회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저씨 집을 나서며 속으로 기도했다.
    
"아저씨, 지금은 힘드시겠지만, 힘든 게 남은 삶을 더 건강하게 살게 할 이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부디 힘내십시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암환자 #아저씨 #학교선배 #병문안 #동병상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윤 대통령, 류희림 해촉하고 영수회담 때 언론탄압 사과해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