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3일 <조선일보> B03면에 실린 <누릴 거 다 누리고 깨어있는 척… ‘진보 중년’을 아십니까>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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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기사의 뼈대가 되는 '진보'라는 단어부터 살펴봅시다.
본 의원은 78년생 소위 전형적인 X세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를 진보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게 사실입니다. 20여 년 전에는 아나키즘 등에도 관심이 있었고 모든 걸 바꾸고 싶었지만, 나이 마흔이 넘은 지금에는 국가와 민족, 시장경제, 민주주의 등 지키고 싶은 가치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변하기보다는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려 한다는 면에서 그만큼 보수화된 것이지요.
그런데 <조선일보>가 뜬금없이 이런 나를 '진보 중년'이라고 규정합니다. 통상 40대가 되면 자산을 모으고 자녀를 키우며 안정을 희구해야 하는데 우리 세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같은 맥락으로 40대가 넘으면 자연스럽게 보수 정당을 지지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4050세대는 진보·좌파 색채를 띠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절반의 진실일 뿐입니다. 40이 넘으면서 자산을 모으고 자녀를 키우며 안정된 삶을 누리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내 자산을 불리거나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착취하고, 부정부패에 눈감으며, 약한 자에겐 강하고 강한 자에겐 약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까지 용인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는 4050세대가 보수 정권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진보라고 하지만 이것은 한국전쟁과 분단이 만들어낸 희극일 뿐입니다. 세계적인 기준으로 보면 우리의 보수 정당은 극우에 가까우며, 현재 진보라 불리는 정당은 중도우파 정도 됩니다. 국민을 학살하고,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헌법을 무시하며, 국가를 사적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정당이 과연 진정한 보수 정당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배고픔을 모르는 X세대?
이어서 <조선일보>는 X세대를 가리켜 단군 이래 처음으로 배고픔을 모르는 세대라고 지적합니다. 1970년대 초반~1980년대 초반 태어나, 80~90년대 고도성장기와 민주화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며 성장했다며, 그래서 어느 세대보다 개인주의적이고 자유로우며, 탈이념적이고 탈권위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사실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X세대가 사회의 주도층이라는 사실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재 X세대는 소위 586세대와 MZ세대 사이에 끼인 세대로 스스로를 규정합니다. 80년대 군사정부와 싸우다가 그만큼 권위적으로 되어버린 586세대와 IMF 이후 무한경쟁 시스템 안에서 개인화된 MZ세대 가운데서 허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조선일보>가 지적했던 4050세대의 운동권에 대한 부채감은 허구입니다. 권위적인 운동권 선배는 존경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극복의 대상이었으며, 과도한 이념교육은 X세대 스스로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4050세대의 역사적 부채의식은 운동권 선배가 아니라 80년 광주에서 피를 흘렸던 보통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그럼 왜 배고픔도 모르고 자랐던 X세대가 이토록 '진보'적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누렸던 혜택을 베풀고 싶기 때문입니다. 앞선 세대들이 땀 흘리며 이룩한 경제성장과 피 흘리며 쟁취한 민주주의의 열매를 다음 세대들에게도 전해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의 발전은 무시한 채 개인의 재산권만 강조하는 대한민국의 극우 세력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세계관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