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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플라스틱 협약, 이란이 빌런으로 선정된 이유는?

한국의 다회용기 통한 재사용 시스템, 회의장에 펼쳐진다면 어떨까

등록 2024.04.27 19:05수정 2024.04.28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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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만드는 ‘제4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4)’가 4월 23일부터 29일까지(이하 현지시각) 캐나다 오타와에서 진행됩니다. 11월 부산에서 이어지는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 성안을 위한 마지막 회의입니다. 플라스틱 협약이 과연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을지, 한국의 시민사회는 어떻게 대응할지를 서울환경연합 박정음 활동가가 오타와  INC-4 현장에서 짚어봤습니다[기자말]
회의장 바닥에 앉아서 각 국가들의 성명서 발표를 듣고 있는데 왓츠앱(WhatsApp/해외에서 주로 쓰는 메신저 앱)에 알람이 떴다. 

"Pretty good statement from Philippines - great job to our PH colleagues(필리핀에서 발표한 성명서는 꽤 좋았어 - 우리 필리핀 동료들 엄청난 일을 했어"  국제환경단체가 모여있는  왓츠앱 방에서 각 국들의 성명서 발표를 들으며 평을 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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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오타와 샤우 센터(Shaw Centre)에서 전체회의 시작을 앞두고 사람들이 모여있다. ⓒ 서울환경연합

 
활동가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정장을 입을 일은 정말 잘 없겠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나는 어색하게 정장을 입고 있었다. 바로 오늘(23일)부터 캐나다 오타와 샤우 센터(Shaw Centre)에서 열리는 제4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tergovernmental Negotiating Committee, 이하 INC-4)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만드는 이 INC-4는 오늘부터 30일까지 일주일간 진행되며, 협약안을 위해 각 국의 정부대표단, UN 사무국, 산업계, 시민단체, 기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모이는 공식적인 회의다. 공식적인 국제회의인만큼 정장을 입어야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안입는 정장을 캐나다에서 입었다. 캐나다는 아직 초봄 날씨라서 꽤 추웠다. 함께 회의에 참여하는 동료들의 낯선 정장 모습을 보고 서로  웃으며 코트를 걸치고 숙소를 나왔다. 

INC에는 UN 회원국, UN 전문기관,정부간기구(IGO), 유엔 시스템, 비정부기구(NGO) 그리고 기자들이 참여할 수 있다. UN 회원국, UN 전문기관의 공식 대표단은 초청장을 받아 별도의 등록절차를 거치고, 정부간기구(IGO), 유엔 시스템, 비정부기구의 경우 입회인(Observer)로 각각 최대 5명씩 참여를 등록할 수 있다.  

사전 신청을 한 사람들은 INC가 진행되는 행사장과 회의장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출입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만드는 회의인 만큼 플라스틱 카드가 아닌 종이로 제작된 출입증을 가지고,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오전 10시  INC-4의 시작을 여는 '전체회의(Plenary)' 오프닝 세션을 위해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나의 회의장에 모여있었다. 이번 INC-4에는 1400명의 정부 구성원과 2800명의 참관인(Observer)을 포함해 4200명이 넘는 175개 UN회원국의 대표단이 참여하고 있다. 

넉넉한 회의장과 좌석 절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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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음 서울환경연합 활동가가 종이로 된 출입증을 들고 전체회의장 앞에 서있다. ⓒ 서울환경연합

 
'전체회의(Plenary)'는 보통 회의의 시작과 끝에 진행되며, 협약의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는 '논의그룹Contact group'과 '소그룹Sub group'의 회의를 거쳐 결정된 최종안이 공유된다. 이 회의는 UNEP 홈페이지에서 실시간, 그리고 이후에도 영상으로 함께 볼 수 있다.  

'전체회의'에는 가장 큰 공간에서 진행됨에도 참여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은 바로 옆 회의실에서 영상으로 보거나 또는 서서, 또는 바닥에 앉아서 회의에 참여하기도 했다. 나 역시 자리를 잡지 못해 서있다가 이후에는 바닥에 앉아 회의에 참여했다. 이제까지 INC-1부터 INC-3가 진행되면서  평가되는 것 중 하나는 얼마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었는지이다. 그 중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데 참여하는 사람에 비해 협소한 공간과 좌석은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이다.


다가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리게 될 INC-5의 경우, INC-4에 참여한 인원의 2배가 모일 것으로 국제 환경단체들은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회의에 원활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넉넉한 회의장과 좌석이 마련될 수 있도록 잘 준비할 필요가 있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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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음 서울환경연합 활동가와 유혜인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바닥에 앉아 회의에 참여 중이다. ⓒ 서울환경연합

 
그 외에도 이야기 되는 중요한 것은 바로 비자 문제이다. 한국인은 캐나다 비자가 굉장히 쉽게 발급되기 때문에 어려움을 전혀 겪지 못했지만, 한국과 달리 그렇지 못한 나라들이 있었다. 이번 INC-4 에도 남반구의 최전선 활동가들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단위들이 비자 문제로 캐나다에 도착하지 못하거나 제 시간 안에 오지 못해 협상에 참여할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이전 INC에서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UNEP와 주최국의 협의를 통해 비자 지원을 하는 등의 조치들이 논의되고 있었다. 이 또한 한국에서 잘 준비해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전체회의는 INC4의 개회를 알리는 INC 의장 루이스 바야스 발디비에소(Luis Vayas Valdivieso)의 인사와  유엔환경계획(UNEP)의 잉거 안데르센 전무이사의 말로 시작했다. INC 의장인 루이스 바야스 발디비에소는 이번 INC4에서 협상 진전이 중요한 역할임을 강조했다.

이는 협상의 기반이 되는 협약의 초안(Zero Draft)가 INC-1부터 INC-3까지 오는 동안  각 국가의 논의를 반영한 결과 기존 초안의 2배 이상 분량의 69장짜리 수정초안(Revised Zero Draft)이 나왔기 때문에다.  다가오는 11월 부산에서 진행되는 마지막 INC-5에서 협약 성안을 위해 이번 INC-4에서는 협상에 진전이 가장 중요하다. (수정 초안 역시 UNEP 국제 플라스틱 협약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플라스틱 전 생애 주기를 포함한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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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 의장 루이스 바야스 발디비에소(Luis Vayas Valdivieso)가 INC 개회를 알리는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서울환경연합

 
이후에는 INC-4 진행을 앞두고 각 국가들의 개막 성명을 발표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각 국가별 세부 의견은 서면 의견서를 통해 사전에 제출되었고 5분 정도의 짧은 성명들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 UNEP 홈페이지 중 서면의견(Written statements)에서 확인 가능하다.) 

이번 국제 플라스틱 협약의 중요한 쟁점 중 하나인  플라스틱 전 생애 주기(생산-소비-폐기) 포함에 대한 내용들이 나올 때마다 그 자리에 함께있는 국제 환경단체들은 조용히 왓츠앱으로 어느 나라의 발표였는지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필리핀 성명이 발표됐다. 

"Plastic pollution should be addressed holistically, comprehensively and  across the full life cycle of plastic(플라스틱 오염은 전체적이고 포괄적이며 플라스틱의 전 생애 주기에 걸쳐 다뤄져야 합니다)"

조용한 회의장 안에서 "full life cycle of plastic(플라스틱 전 생애 주기)" 라는 말이 울릴 때마다 이번  협약의 희망이 엿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걸 느끼는 것은 나 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필리핀 외에도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대표한 팔레스타인, 아프리카 지역을 대표하는 가나, 도서국가연합을 대표한 사모아, 플라스틱 협약 우호국 연합(HAC)을 대표한 말라위, 그리고 필리핀,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등이 플라스틱 전 생애 주기를 포함한 성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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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개막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 서울환경연합

 
그렇지만 부정적인 신호 역시 볼 수 있었다. 바로 이란의 성명이었다.

"Plastic products are the cornerstone of modern day life and are indispensable for society, economy and trade, health care, food, ~ Consensus should be the driver of decision making.(플라스틱 제품은 현대 생활의 기초이며 사회, 경제 및 무역, 의료, 식품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입니다. ~ 의사결정의 원동력은 합의가 되어야 합니다.)"

이란은 플라스틱을 적극 옹호하는 입장을 보이며,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으로 INC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현재 INC는 잠정적으로 투표로 진행하는 것으로 채택되었다. 협약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의사결정이 투표로 정해진 것이다. 그러나 일부 국가들은 투표가 아닌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이는 플라스틱 생산 감축에 대한 조치가 이루어질 수 없도록 방해하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이에 BFFP(Break Free From Plastic)에서는 INC4 소식을 매일 전달해주는 레터에서 플라스틱 옹호국이자 협약 성안을 방해하고 있는 이란을 INC4 첫날의 빌런으로 선정했다. 

전체회의가 끝나고, 쉬는 시간을 잠시 가졌다. 쉬는 시간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회의장 앞에 샌드위치, 샐러드, 수프 등을 판매하는 공간을 이용했다. 어떤 것을 판매하는지 살펴보러 둘러보니 전부 종이 코팅된 포장재에 1회용품으로 제공되고 있었다.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논하는 협약의 회의장에서 1회용 용기로 음식이 제공되는 점이 굉장히 아쉬웠다.

실제로 많은 참여자들이 다음 회의에 참여하거나 빠듯한 시간 속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회의장에서 제공되는 음식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만큼 버려지게 될 수많은 종이 1회용품에 아쉬움이 컸다. 또한 내부에서 음료 또한 1회용 종이컵에 제공되기 때문에 사전에 텀블러 지참을 안내했음에도 참여자 중 일부가 1회용컵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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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장 앞에 공간에서 1회용 종이 포장재에 담긴 샌드위치, 샐러드, 수프 등이 판매되고 있다. ⓒ 서울환경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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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우 센터 2층 공간에는 스타벅스 커피를 종이컵에 판매하고 있었다. ⓒ 서울환경연합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해서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플라스틱 생산을 멈추고, 기존의 제품들을 다시 재사용하는 시스템 확대가 아주 중요하다. 한국의 경우, 다양한 다회용기 업체들이 축제, 배달 등을 통해 재사용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다가오는 INC-5에서 한국의 다회용기를 통한 재사용 시스템이 회의장에 펼쳐진다면, 회의에 참여하는 많은 다른 나라들에게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재사용 시스템은 충분히 실현가능하다는 입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제플라스틱협약 #플라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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