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도소 운동회에서 박성준(오른쪽)씨와 함께. 박 씨는 나중에 국무총리가 되는 한명숙 씨와 6개월째 신혼 생활을 하다가 통혁당 사건으로 체포됐다.
익천문화재단
그러나 그의 사람 사귐은 꽤 까칠하다는 느낌을 준다. 지연이나 학벌 같은 게 아니라 삶의 태도를 보고 사람 됨됨이를 보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운동권에 있거나 투옥된 과거를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을 싫어한다. 서울 문리대 선배이자 친구인 김지하 시인도 의절했다. 김판수는 감옥에 있을 때 독학으로 작곡을 배워 김지하 시에 곡을 붙일 정도로 그를 좋아했지만 1980년대 초 해남에 살고 있던 그를 만나보고 생각을 바꿨다.
남의 얘기는 전혀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시인, 핍박받는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행세하더라는 거였다. 둘도 없는 친구로 생각해 찾아갔지만 그에게는 안중에도 없는 '판수'일 뿐이었다. 1991년 대학가에서 분신 자살이 잇따를 때 김지하가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집어치워라'는 글을 썼을 때는 그가 정신적으로 병든 것 같아서 오히려 연민이 느껴졌다고 한다.
소설가 이청준은 광주일고 동기생이면서 염무웅과 함께 독문과 학생이었고 셋은 하루라도 못 보면 안달이 날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이청준은 너무나 가난하게 자랐지만 소설가로 성공한 뒤 어려운 사람들과 거리를 두려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2008년 그가 죽을 때까지 한번도 보지 않은 이유다.
시든 소설이든 문학평론이든 각 분야에서 일세를 풍미한 사람들이지만 염무웅은 김판수를 주눅들게 하지 않았다. 김판수 또한 영문학도이면서 영화 연출을 공부하고 싶어 케임브리지로 유학을 떠났지만 턱없이 부풀려진 공안조작사건으로 취업하기도 힘들어 사업을 시작한 건데 그를 깊이 이해해준 이가 염무웅이었다.
"무웅이가 한결같이 '넌 참 괜찮은 인간이야'라며 지지해준 것이 평생 못된 짓 안 하면서 살 수 있는 힘을 줬어요. 부나 권력이나 명성을 따라 적당히 흘러가는 삶을 거부하게 만들었죠."
백낙청-염무웅-김판수 선생과 연결해준 소셜미디어
낯가림이 심한 그에게 나를 연결해준 이도 염무웅 선생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염 선생에게 나를 연결해준 이는 <창작과비평>을 창간한 백낙청 선생이다. 글로만 40여 년 사숙하다시피 존경했지만 뵌 적도 없는 백낙청 선생이 2021년 가을 지인을 통해 점심을 사주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언론개혁과 관련해 내가 각종 매체에 쓴 글과 인터뷰, 토론 내용에 공감한다며 격려해줬다. 언론중재법도 찬성 논지를 줄기차게 펴면서 언론계와 언론학계에 우군이 거의 없어 크게 실망했는데,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 언론개혁 마스터플랜을 책으로 쓰라고 권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언론개혁법안을 거부하면서 심한 좌절감에 빠져 그것마저 중단하고 <창작과비평> 2022년 여름호에 서론격의 논단을 쓰는 데 그쳤다.
백낙청 선생은 내가 방송에 출연한 것과 <오마이뉴스> 등에 기고한 글을 염무웅 이사장과 일부 공유한 듯한데, 한 사무실을 쓰는 김판수 이사장도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르기 시작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온라인 교우관계는 실제 만남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다. 지난 2월 20일에는 대구의 김용락 시인이 점심 약속을 주선해 익천문화재단에서 염무웅·김판수 선생과 상임이사로 일하는 송경동 시인을 처음 대면했다.
글과 행동이 일치하는 시인들… 김용락, 송경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