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ne and Food Menu Book1월부터 12월까지 달마다 12가지 와인-음식 페어링을 소개하며 총 144가지 메뉴와 500종 이상의 와인을 다룬다.
임승수
사회가 풍요로워질수록 요리 가짓수와 와인 종류는 끊임없이 늘어나며 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와인-음식 페어링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와인-음식 조합의 가짓수는 무한대로 늘어났으나 안타깝게도 이 모든 조합을 개인이 일일이 경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루 섭취 음식량도 제한적인 데다가 과도한 음주는 건강을 크게 해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정된 기회에서 최선의 경험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와인-음식 페어링 지침이 필요하다. 여러 음이 동시에 울릴 때 조화를 이루려면 엄격한 화성법이 필요한 것처럼.
현재 와인-음식 페어링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는 캐런 맥닐(Karen MacNeil)은 자신의 저서 <더 와인 바이블>(The Wine Bible)에서 와인-음식 페어링의 10가지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고급 요리에는 고급 와인, 소박한 요리에는 소박한 와인을 페어링한다.
2. 섬세한 음식에는 섬세한 와인을, 강렬한 음식에는 강렬한 와인을 페어링한다.
3. 페어링할 때 음식과 와인의 풍미를 상호보완적으로 할지 대조적으로 할지 선택한다.
4. 해당 와인 품종이 얼마나 음식 친화적인지를 고려한다.
5. 과일이 들어간 요리에는 과일 향이 강한 와인이 잘 어울린다.
6. 짠맛 나는 음식은 산미가 있는 와인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7. 짠맛 나는 음식은 단맛 나는 와인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8. 고지방 음식은 진하고 강한 풍미의 와인과 잘 어울린다.
9. 감칠맛 나는 음식은 와인과 더욱 잘 어울린다.
10. 단 디저트와 단 와인을 페어링할 때는 와인이 더 달아야 한다.

▲리히터 에스테이트 리슬링리슬링은 매콤한 한국 음식과 찰떡궁합을 보여준다.
임승수
캐런 맥닐이 주꾸미볶음을 맛봤다면
작년 이 무렵 경기도 파주 교하도서관에서 저자 초청 강의를 했다. 1부에서는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저자 자격으로 피아노 취미의 즐거움과 충만함을 얘기하고 강의 중간에 쇼팽, 브람스, 바흐의 피아노 소품도 연주했다. 2부에서는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저자로서 슬기로운 와인 생활 비법을 공개하고 주꾸미볶음에 상큼한 리슬링(화이트 와인)을 곁들여 참가자와 함께 나누었다.
레드 와인에 치즈라는 스테레오 타입을 예상한 참가자들은 한국 음식과 독일 화이트 와인의 국경을 초월하는 찰떡궁합에 감탄사를 쏟아냈다. 예순을 넘은 참가자가 남긴 후기는 당시 분위기를 잘 보여 준다.
"아마추어 연주자의 연주라서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브람스의 곡은 중간에 다시 치시기도 하셨고, 바흐 아리오소는 도중에 악보가 건반으로 떨어지기도 했는데, 저는 그런 점들이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와인 시음 강연도 편안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와인 맛에 먼저 깜짝 놀랐고 안주와의 궁합에 두 번 놀랐으며, 강사가 수시로 음주(?)하며 강연하시는 모습에 세 번 놀랐습니다. ㅎㅎ 시종일관 웃음을 선사해 주시고 행복해 보이셔서 참석자들 모두 즐거워하고 행복한 시간 보냈습니다. 늘 지금처럼 행복하신 모습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도 행복을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파주 교하도서관에서 강의 중인 필자수시로 음주하며 강의하는 모습에 참가자들이 박장대소했다.
교하도서관
문득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가 떠오른다. 한국 전통 판소리와 힙합, 록 등의 현대적인 음악 요소가 결합해 친숙하면서도 개성 있는 음악이 탄생하지 않았나. 와인-음식 페어링의 진화는 어느덧 토종 한국 음식과 물 건너온 와인의 창조적 융합 단계에 이르렀다.
캐런 맥닐이 파주 교하도서관의 술자리에 참석했다면 주꾸미볶음과 리슬링이 만들어 내는 화음에 놀라 자신의 페어링 10원칙을 11원칙으로 수정할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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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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