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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날 카네이션도 안 된다던 권익위, 김여사 가방은 OK?"

'영부인 처벌불가'에 공직사회 부글부글... "하위직 공무원은 탈탈 털더니, 허탈하다"

등록 2024.06.13 21:38수정 2024.06.1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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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일대 모습. ⓒ 박수림

 
"이번 권익위 결정에 공직자들의 허탈감, 박탈감이 매우 크다. 그동안 권익위는 김영란법 등 대단히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왔다. 몇 해 전인 2017년 스승의 날엔 권익위가 '제자가 주는 카네이션도 받으면 안 된다'라고 유권해석을 했다. 지금도 교수들은 스승의 날 행사 때 대표 학생이 주는 게 아니면 받지를 않는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한테 강한 모습이다." -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4급)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을 종결하자 공직 사회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 10일 권익위는 김 여사가 최재영 목사로부터 명품 가방을 받은 것과 관련해 '청탁금지법에 배우자 처벌 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종결 처리했다.

"현직 교사들은 커피 한잔도 돌려보낸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2일~13일 대면 및 전화 통화로 말단 공무원부터 고위 공무원까지 현직 공무원들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여사권익위" "부패공화국" "어처구니없다", "배우자가 받으면 청탁금지법 위반이 아닌데 내가 몰랐구나", "허탈하다"라는 자조 섞인 말을 하거나 "권익위의 '강약약강(강한 상대에게는 약하고 약한 상대에게는 강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과거 '촌지' 등으로 오랫동안 비판을 받아왔던 교원들의 박탈감도 상당했다. 서울 한 고등학교의 30년 차 교사인 노아무개씨는 "교사들은 학교 상담 주간에 학부모가 과자 하나, 커피 한 잔을 가져올 때도 '법 위반이다, 마음만 받겠다'라고 설명하고 돌려보냈다"고 전했다. 

그는 "권익위 뉴스를 접하고 참 어처구니없고 황당했다"며 "부패 방지를 담당하는 국가 기관인 권익위가 (자신들의 역할을) 무너뜨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주변 동료 교사들 SNS를 둘러보면 이번 권익위 결정을 많이들 공유한다"며 "저도 공유된 게시글에 '(배우자가 받는) 그런 방법이 있었는데 내가 그걸 몰랐구나'라는 식의 풍자 댓글을 달기도 했다"고 했다.

전남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4년 차 교원 박아무개씨도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교직사회에는 학부모나 학생과 선물을 안 주고 안 받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며 "교사들 사이에선 '법의 구멍을 피하려면 상대방과 이해관계에 있는 사이가 아니라 서로 존경하는 사이, 사랑하는 사이라고 하면 되겠다'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라고 말했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4급, 조국혁신당 교육특보)는 그간 권익위의 행보와 어긋나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김 교수는 불과 일년 전 권익위가 실시한 국공립대학 부패전수조사를 예로 들며 맹비난했다. 

"교수들이 국책연구기관이나 자치단체 등 보고서를 평가하면 회의비로 10만~15만원을 줬다. 그런데 작년에 권익위가 그걸 외부 강의신고 하는 거라고 전수조사를 했다. 국책연구기관에 자문했던 사람들 명단 싹 다 뽑아서 대학에 외부강의신고했는지 모두 조사했다. 신고 안한 경우는 모두 소명 받았고 이후에는 행정 주의나 경고 같은 행정처분도 나갔다."


지난해 권익위는 국공립대의 낮은 청렴도를 문제 삼아 부패전수조사를 실시했다. 김 교수도 회의비, 강의비, 원고료 등 대가를 받은 모든 사례금을 조사받았다고 전했다. 당시 전수조사에는 권익위의 정승윤 부위원장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정 부위원장은 이번 결정에서 최재영 목사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명품 가방이 뇌물이 아니라 대통령기록물로 분류된다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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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원회 정승윤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이 10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명품 가방을 수수했다는 내용의 비위 신고 사건을 '위반 사항 없음'으로 종결 처리했다고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그는 또 "예전에는 대학교에서 논문 심사를 할 때 심사를 받는 학생이 간식을 사 오기도 했는데 지금은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로) 간식비도 모두 학과 예산에서 사용하고 있다. 청탁금지법이 공직자들에게는 이렇게 엄정하게 적용되고 있는데, 김건희 여사에 대한 권익위 결정은 현재 정책 기조와 맞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결정이다"라고 지적했다.

정대화 국가교육위원회 상임위원(차관급)도 권익위 결정을 "제도의 후퇴이자 사회의 후퇴"라고 평가했다. 그는 "공직자의 배우자가 선물이나 뇌물을 받는 것은 공직자 당사자가 받는 것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이 맞다"며 "그렇지 않다면(배우자나 가족이 받은 선물은 괜찮다면) 모든 공직자가 전부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권익위가 '앞으로 공직자에게 선물이나 뇌물을 줄 때는 당사자 말고 부인이나 자식에게 주면 된다'라고 선언한 셈"이라며 "이번 결정은 일반인들의 법 감정에 맞지 않고, 법 취지에도 맞지 않으며, 부패를 감독하는 기관으로서 부적절한 결정"이라고 했다.

일선 공무원들도 "우리도 한정식 접대 거절하며 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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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부부,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 출국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10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3개국 방문차 출국하며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행정 일선 공무원들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의 한 구청에서 근무하는 6년 차 주무관 A씨(8급)는 "이전에 도로과 소속으로 일할 때 업체 관계자들이 고급 한정식집에서 식사를 하자는 등의 제안이 많이 있었는데 업체 쪽에서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아도 '자기들 물건을 사달라', '사업에 자기들을 선정해달라'는 이유인 걸 알 수 있었다"며 "그럼에도 저와 주변 동료 직원들은 그런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 몰라라하는 권익위의 모습에 반감이 생기더라"라며 "최근 온라인상에서 회자되는 '부패공화국', '여사권익위'와 같은 부정적인 표현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했다.

31년 차 주무관 B씨(6급)도 "말단 공무원뿐만 아니라 구청장도 뇌물을 받으면 처벌을 받는다. 일례로 영등포구청같은 데는 민선 이래로 다수의 구청장이 내부 직원이나 외부인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해 구속됐다"고 했다. 이어 그는 "권익위는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다고 하는데, 그럼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다 법으로 규정할 건가"라며 "이건(뇌물 수수, 청탁)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대통령과 한솥밥 먹는 경제공동체로서 영부인이 받으면 대통령이 받은 것과 같지 않은가"라고 했다.

교육행정직 2년 차 유아무개씨(9급)도 "일반 공무원들은 자칫하면 본인을 포함해 가족까지 모두 처벌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조심하고 교육도 주기적으로 받는다"며 "권익위가 대통령 부부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내로남불을 한 것 아닌가"라고 했다.

지난 12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도 "권익위는 하위직 공무원들의 직무 수당, 위험수당, 출장 여비 등에 대해서는 탈탈 털면서 조사하는데, 모든 공무원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대통령의 가족에 대한 논란을 이런 식으로 종결하는 것은 120만 공무원의 사기를 저하하는 일"이라고 성명을 냈다.

[관련기사]
딸 장학금에 민정수석 유죄... 부인 명품백에 대통령은? https://omn.kr/290jd
권익위, 김여사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위반사항 없다" https://omn.kr/2900f

 
#권익위 #김건희 #명품가방 #청탁금지법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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