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족을 5년 만에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내 맘대로 여행2] 불시착한 카이로에서의 2박 3일

등록 2024.07.11 15:02수정 2024.07.1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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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카이로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그야말로 '미친도시'에 제 발로 걸어 들어 온 것을 두고, 처음으로 혼자 하는 여행을 후회할 뻔했다. 공항을 나설 때부터 무질서는 시작되었다.

호객 행위 하는 사람들, 사람과 차들이 얽힌 도로, 도보자를 배려하기는커녕 속도 내기에 바쁜 자동차들, 바가지요금, 한 푼이라고 더 받아내려는 관광업 사람들 등. 이러한 이미지를 바뀌게 한 것은 Meland 가족을 만나고 난 뒤였다.  


그 당시 고등학생인 그의 아버지 사무실이 내 숙소와 같은 건물에 있었다. Meland는 아버지 일을 도와주러 매일 출근 했고 그런 그가 나에게 자신의 쌍둥이 형과 부모를 소개시켜 주었다.

그 당시에는 직항도 없는 이 먼 나라에 다시 오겠냐 싶었다. 사람 일은 모를 일이었다. 6개월 후, 나는 다합으로 스쿠버다이빙 다이브 마스터 훈련을 받으러 갔다. 당연히 카이로에 들러서 Meland 가족을 만났고 5년 지난 뒤, 또 보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카이로에서 수재들만 간다는 대학교 공학도였던 큰아들 Kero는 지금은 H버스 회사에 엔지니어로 취직한 상태였다. Kero뿐만 아니라 그의 쌍둥이 동생 Mina와 Meland까지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일을 마치고 바로 온 듯 작업복 차림 그대로 혼잡한 6게이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 가족 안부를 물으면서도 호텔을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며 내 머릿속은 여전히 결정을 유보하고 있었다. 열 시가 지난 시간이었다. 그냥 눈 한번 딱, 감고 신세 한번 져볼까?

이렇게 해서 나는 카이로에서 2박 3일을 머무르게 되었다. 그 다음날 바로 떠나려고 했지만 좀 더 머무르고 가라는 가족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다. 밀렌드 엄마는 음식 솜씨가 좋아서 맛있는 음식을 매 끼니마다 해주었다. 심지어 그녀가 만든 초코 케이크를 사이에 두고 침대에 옆으로 누워서 Kero과 이야기 나누는 것이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가끔 그녀가 이야기를 보탰다.

카이로에서는 밤이 길다. 주택가 사람들도 새벽 한두 시까지 떠들고 논다. 그 이유를 그곳에 가면 알 수 있다. 오전 11시 정도 되면 모든 전기 기계가 멈춘다. 전력량 부족으로 자동으로 끊기는 것이다.


멈춘 거실 팬은 오후 4~5시 사이에 다시 작동한다. 나는 소파에 누워서 책을 읽곤 했는데, 그 시간이 꽤나 평화로워서 가지고 간 책 중에서 한 권을 이미 다 읽어버렸다. 낮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해가 지면 이들의 활동량은 늘어난다. 그만큼 카이로의 여름은 뜨겁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관계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친구든 가족이든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 일처럼 도와준다. 그 관계를 형성하는 매개체는 당연히 대화이다.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정보를 나누면서 끊임없이 웃는다. 그래서 오지랖이 넓다는 말이 맞다.
  
a  금요일 아침 Meland 엄마를 따라 간 교회(로마정교회). 결혼한 여성은 사진 찍는 것을 꺼려해서 그녀의 사진은 없다.

금요일 아침 Meland 엄마를 따라 간 교회(로마정교회). 결혼한 여성은 사진 찍는 것을 꺼려해서 그녀의 사진은 없다. ⓒ 차노휘

 
오지랖 넓게 나도 Meland 엄마 Heba를 따라 그 다음 날 교회(로마정교회)에 갔다. 처음 간 그곳에서 그녀의 친자매들과 조카를 알게 되었고 예배가 끝난 뒤 사제관에서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그곳에서 아랍 커피도 마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함께 장도 보았다. 삼형제 또한 그들의 친구에게 전화를 할 때면 꼭 나를 소개시켜주려고 했다. 밀렌드 아버지 헤니는 나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시켜주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가장 인상에 남은 것은 Go버스를 타기 전(다합으로 가는 버스)에 갔던, 일종의 클럽이다. 클럽이지만 술은 팔지 않는다. 에너지 드링크와 시샤(물담배)를 피우면서, 신나는 음악에 맞춰 테이블 주위와 작은 무대에서 춤을 출 수 있는 곳이다. 일종의 이집트 젊은이들에게는 '핫'한 장소다. 여자와 남자의 구분도 없다. 막 들어갔을 때 혼자 온 여자가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Kero과 Mina가 나를 배려한 것이다. 전날 Kero이 나하고 클럽에 갈 것이라고 했는데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았다. 한국에 비하면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이어서 아주 사소한 외출까지 아버지 허락을 삼형제는 받아야 한다. 이에 Mina가 화를 냈다. 뒤늦게 아버지 단골인 클럽이 아닌 나이트클럽에 Kero과 나를 데리고 갔다.

그곳은 정말 올드한 스타일, 우리나라 80년 대 나이트클럽 같았다. 각 테이블마다 몸집이 좋은 여자가 서비스를 맡았는데 그녀들은 이집트 특유의 춤인 가슴과 엉덩이 털기를 하며 교태를 부렸다. 스피커는 가끔 찢어지는 듯한 소음을 동반했다. 그럼에도 새벽 한 시에 입장한 우리는 일출 시간에 귀가했다.

카이로를 떠나기 전, 원래 계획은 다운타운에서 말을 타는 것이었다. 계획을 바꿔서 Mina가 일종의 클럽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술은 팔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입장 전, 차 안에서 맥주를 마셨다. 두말하면 잔소리다. Mina 친구인 Joseph을 포함해서 우리는 미친 듯이 놀았고 미친 듯이 행복했다. 버스를 놓칠까봐,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놀라운 Mina의 운전 솜씨는, 이집트여서 가능했다.
  
a  주택가 골목

주택가 골목 ⓒ 차노휘

 
그 복잡한 Go버스 승차홈에 주차를 하고는 무거운 캐리어와 내 백팩을 한 사람 씩 밀거나 짊어지고는 좌석까지 확인한 뒤 그들은 떠났다. Joseph도 끝까지 남아서 나를 배웅했다.

처음 내가 이들 삼형제를 만났을 때는 모두 학생이었다. 지금은 모두 엔지니어가 되었다. 아마도 내가 이들을 다시 만날 때는 셋 중 한 명의 결혼식이 아닐까? 자주 만난다고 좋은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이렇게 가끔 만나도 전날 만난 것처럼 오랜 친밀감으로 반가우니, 그들이 나를 두고 '가족'이라고 한 것처럼 '가족의 정' 같은 것이 아닐까.

불시착한 카이로에서 나는 '사랑'을 안고 오전 한 시 5분에 출발하는 Go버스 안의 출렁거림 속에 몸을 맡기고는 다합으로 향했다. 다합에 도착하기까지의 9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검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걱정도 되지만 가슴이 따뜻한 만큼 부정적인 감정은 뒷걸음질 쳤다. 카이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또한 카이로에서는 '카이로답게' 행동해도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a  주택가 골목

주택가 골목 ⓒ 차노휘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이집트 다합에서 프리다이빙을 하기 위해서 2024년 7월 4일 인천공항을 떠나서 8월 23일에 귀국할 예정이다.
#카이로 #다합 #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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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문학박사.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투마이 투마이》, 장편소설 《죽음의 섬》과 《스노글로브, 당신이 사는 세상》, 여행에세이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물공포증인데 스쿠버다이빙》 등이 있다. 현재에는 광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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