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중인 1980년 5월 24일 광주 송암동 일대에서 숨진 권근립의 묘.
소중한
권근립, 그는 송암동에 거주하는 25세 청년이다. 권근립의 어머니, 김금순씨는 증언한다.
"우리 집에서만도 세 명이나 죽었어. 아조 난리가 나부렀당께. 그때 일만 생각허믄 오장이 뒤집힐라 해."
데모를 한 것도 아니다. 시민군으로 활약한 것도 아니다. 총기를 휴대한 것도 아니다. 그냥 집에 있는 청년을 잡아다 죽여버린 것이다.
"온 집안을 다 살피고 밖으로 나가 아들을 찾아 헤매는디, 우리 아들을 신작로 옆 도랑에다 죽여놨드만..."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국군은 국민의 군대다. 결코 선량한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눌 일은 없다. 국군은 자위(自衛) 목적이 아닌 한 총기를 사용하지 않도록 훈련받는다."(<전두환 회고록>, 382쪽) 권근립은 전두환에게 묻고 있다. 대한민국 국군은 국민의 군대인가?
김승후, 그는 1961년생이니까 19세의 청년이었다. 선반 기술을 익히던 승후에겐 꿈이 있었다. 전국 기능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꿈, 그리하여 어머니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드리는 꿈이었다. 승후는 쉬지 않고 기능을 갈고닦아 능력을 발휘할 전국대회만을 기다렸다. 항쟁의 열기가 더해가고 다니던 공장은 문을 닫았다.
승후는 집에서 쉬고 있었다.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공수대원들은 군홧발로 대문을 걷어찼다. "가택 수색을 나왔으니 협조하시오!" 공수대원들은 승후를 철로에 세웠다. 그리고는 대검으로 찔렀다. 승후는 대검을 손으로 잡았다. 옆에 서 있던 공수의 M16 총구가 불을 뿜었다.
김승후는 전두환에게 묻는다. "국군은 선량한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지 않는가? " 망월동에 있는 김승후의 묘비엔 이렇게 적혀 있다. "눈부신 햇살 아래 붉게 빛나는 사루비아 꽃잎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