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손 편지로 마음을 위로하는 곳, '온기'

[인터뷰] 온기우편함을 만든 사단법인 온기 조현식 대표

등록 2024.07.22 13:59수정 2024.07.2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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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감은 현대인들의 보편적인 감정이다. 질병관리청의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성인의 11.3%, 청소년의 28.8%가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다. 우울감은 신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해소되지 않을 경우 우울증으로 심화될 수 있다.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적절히 해소되는 것이 중요하다. 우울감은 정도가 심하지 않다면 누군가 마음을 공감하고 위로해 주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

사단법인 '온기'는 이 사실에 집중했다. '온기'는 익명의 손 편지를 통해 말 못할 고민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위로한다. 이 편지 한 통이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안부이자 내일을 살아갈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온기'의 조현식 대표를 만나 '온기'가 우리 사회에 만들어온 변화와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a  사단법인 온기 조현식 대표 (사진 : 김유희)

사단법인 온기 조현식 대표 (사진 : 김유희) ⓒ 김유희

 
- 사단법인 온기는 어떤 활동을 하는 곳인지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온기는 사회 구성원의 우울감 지속을 완화하고 정신 건강을 회복하자는 목표를 갖고 있는 비영리 조직이에요.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익명으로 고민을 보내주시면 손 편지로 답장을 전해드리는 정서 지원 사업 '온기우편함'과 온기우편함에 도착한 편지 중 공개 동의한 편지의 개인정보를 삭제 및 각색 후 뉴스레터로 발행하는 '온기레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온기는 '일상'이라는 키워드에 많은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사회 구성원의 우울감이 지속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일상에서 내면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이 많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a  온기가  분류·정의한 부정적 감정 발생의 사회환경적 요인 12가지 및 우울감 지속의 2가지 원인 (사진 : 온기 홈페이지)

온기가 분류·정의한 부정적 감정 발생의 사회환경적 요인 12가지 및 우울감 지속의 2가지 원인 (사진 : 온기 홈페이지) ⓒ 사단법인 온기

 
온기는 우울감이 발생하고 해소되지 않는 원인을 총 12가지로 분류하고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부정적인 감정 발생이 지속되는 상태를 '우울감 지속'의 상태로 정의해요.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이 우리 사회에 부재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감정과 고민을 털어놓고 공감받을 수 있는 곳으로써 온기우편함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왜 그 방법이 꼭 손 편지여야 하는지 질문한다면, '진심과 진심이 만났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 때문이었어요. 얼굴을 보고 말하면 얘기하기 어려운 주제도 비대면일 때는 털어놓기 쉽잖아요. 또 모르는 누군가에게 고민을 익명으로 단순히 고민을 털어놓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구나 라는 걸 느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특히 사람 냄새가 많이 묻어나는 손 편지라면 진심을 느낄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 '온기우편함'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셨나요?

"처음 이 사업을 시작하고자 했을 때는 '따뜻한 우편함'으로 지었는데 이름이 너무 길더라고요. '따뜻함'의 유의어를 찾다 보니까 '온기'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그리고 우리가 한 번 더 힘을 내기 위해 필요한 건 온기와 같은 따뜻한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잘하고 있고 더 잘할 수 있다' 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해서 '온기우편함'이라는 이름을 짓게 됐어요."

- 우편함에 주로 고민을 보내는 연령대는 누구인가요? 또 최근에 많이 도착하는 고민의 내용은 무엇인가요?

"가장 많이 편지를 보내주시는 연령대는 20~30대 청년분들로 전체 편지의 60% 이상이에요. 그렇다 보니 고민의 주제도 '취업', '진로', '무기력함'과 관련된 것들이 많아요. 특히 코로나 시기에는 그로 인해 우울한 감정을 겪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가 많았는데요. 최근에는 아무 이유 없는 무기력함에 대한 편지와 은둔에 대한 고민이 담긴 편지도 많이 와요. 그 이유는 내일이 보이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바뀌는 게 없는 사회와 자신의 상황에 대한 고민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처음 온기우편함을 시작했을 때는 청년분들이 취업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많이 보냈는데 요즘은 이유 없는 무기력함에 대한 편지를 정말 많이 보내세요."

- 온기우체부가 되기 위해서 갖춰야 하는 자격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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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자격 요건은 없고, 다른 사람의 고민을 공감하고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온기우체부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누군가에게 공감하고 편지에 답장을 쓴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일 수 있어요. 그래서 내부적으로 온기우체부 활동을 도와드릴 수 있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어요. 처음 2개월 동안 교육을 받은 다음 공식 온기우체부로 활동하실 수 있습니다.

답장을 쓸 때는 중요한 원칙 두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고, 두 번째, 경험을 토대로 공감하며 편지를 쓰는 것이에요. 온기우편함에서 보내는 답장이 사실 정답은 아니거든요. 고민을 공감해드린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편지이다 보니, 공감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슷한 경험을 했던 내용에 대해 솔직하게 적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온기우체부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의 편지를 직접 선택해 답장을 작성하고 있어요."

- 우리 사회에 온기우편함이 필요한 곳은 어디일까요?
 
a  온기우편함 현황 (사진 : 온기 홈페이지)

온기우편함 현황 (사진 : 온기 홈페이지) ⓒ 사단법인 온기

 

"첫째,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 둘째, 온기우편함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우편함을 확장해 가고 싶어요.

2024년 6월 기준, 전국 66개의 온기우편함이 설치되어 있는데요. 최근에는 지하철이나 기차 역사에 온기우편함을 늘리려고 하고 있어요. 그 이유는 많은 분들이 왕래하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 설치된 우편함에 확실히 편지를 많이 보내세요. 또 계획하고 있는 곳은 대학병원 암센터, 어린이 병동, 추모 공원 등이 있어요. 세 곳 다 같은 맥락으로 가장 외롭고 아플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온기우편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온기우편함'과 '온기레터' 외에 또 정신 건강과 관련해 계획하고 있는 사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첫째, 온기우편함의 수혜자를 다양하게 늘려가려고 해요. 예를 들면 최근에는 관련 단체의 요청으로 자립 준비 청년들만 쓰실 수 있는 온기우편함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운영하기도 하고요. 같은 집단의 당사자분들만 쓸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있어요.

둘째, 오프라인에서 집단 상담 모임을 준비하고 있어요. 온기우편함에 도착하는 전체 편지 중 1~2% 정도는 '자살'이라는 키워드를 쓰거나 정말 심각한 우울증 관련된 내용이에요. 이렇게 우울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분들이 보낸 편지는 온기우체부 중 심리 상담 전문가분이 답장을 써요.

여기서 아쉬운 점은 답장 한 번 받는다고 그분의 고민이 완전히 치유되진 않는다는 점이에요. 답장을 쓸 때 지역에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연계해 치료받을 수 있는 정보를 같이 적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얼마나 연결이 될지는 잘 모르는 거죠. 이런 지점에 대한 해결책으로 고민을 남겨주신 분들 중 고위험군 분들이 같이 상담받을 수 있는 오프라인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어요.
 
a  온기에서 제공 중인 온기레터 샘플 (사진 : 온기 홈페이지)

온기에서 제공 중인 온기레터 샘플 (사진 : 온기 홈페이지) ⓒ 사단법인 온기

 
셋째, 온기레터에 전문 심리상담 콘텐츠를 제공하려고 해요. 지금의 온기레터는 주로 익명의 고민과 그에 대한 답장을 싣고 있는데요. 구독자 분들의 피드백 중 하나가 실질적으로 심리상담 이론과 행동 양식을 알려주는 솔루션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추후 그 내용도 함께 담으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넷째, 장애인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온기우편함 팝업을 계획하고 있어요. 정신장애인을 바리스타로 채용하는 카페 '히즈빈스'랑 협업해서 장애인분들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온기우편함 팝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기존에 운영했던 '온기우체국'이라는 이름의 팝업은 비장애인분들을 중심으로 설계된 공간이었어요.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팝업은 유니버셜 디자인을 적용해 장애인 분들도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휠체어 이용 장애인을 포함해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분들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올해 10월 성수에 오픈하려고 해요.

온기가 온기우편함과 온기레터 외에도 이렇게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이유는 정신 건강과 관련해 고민이 있는 당사자분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솔루션을 제공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에요."

- 온기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요?

"온기우편함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온기>가 추구하는 방향은 '안전한 사회'예요. 안전하다는 것에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온기가 생각하는 안전함은 '사회 구성원이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예요. 온기우편함에 고민을 보내주시는 분도, 답장을 작성해 주시는 분도 사회 구성원 중 한 명이거든요. 누군가 나의 고민을 공감해 주고 진심 어린 위로와 용기를 전해주는 것이다 보니 편지를 통해 서로가 연결되는 지점이 되게 커요. 우리 사회에 이런 접점들이 많아질수록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국가이드스타 청년 공익 기자단인 '채리티 에디터 양성 과정'참가자의 취재 기사입니다. / 채리티 에디터 7기 김유희
#한국가이드스타 #온기 #온기우편함 #공익법인 #비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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