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에 관한 생각> 프란스 드 발 지음, 세종서적 출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추천한 책으로도 유명하다. 젠더에 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싶은 모두에게 강력 추천하는 책이다.
세종서적
이 책은 여러 가지 실험 결과를 소개한다. 일부 사람들은 어른들이 장난감을 통해 젠더의 편견을 아이들에게 강요한다고 말하지만, 실험에서는 성별에 따른 선호도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원숭이들에게 장난감을 나눠주면 운송 수단 장난감은 주로 수컷이 갖고 놀고, 인형은 암컷이 더 많이 가지고 논다. 이 같은 특정 장난감 선호는 수컷에게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인간 남자 아이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색에 있어서는 성별 선호 차이가 없었다. 남자는 파랑, 여자는 분홍을 고집하는 건 문화적인 영향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침팬지 도나의 사례도 소개한다. 건장한 암컷이었던 도나는 다른 암컷들에 비해 수컷에 가까운 행동을 더 많이 보였고, 생식기는 암컷이었지만 발정기에도 짝짓기를 하거나 생식 능력을 과시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예시를 통해 저자는 양성을 스펙트럼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양쪽 성의 특성이 확실한 두 봉우리가 있는 반면 그 사이에는 중첩된 특성을 가진 여러 개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성에 따른 차이는 분명 있지만 개인에 따라 그 차이는 다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차이가 아닌 차별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을 과학을 통해 배운다.
얼마 전에는 김학진 교수의 <뇌는 어떻게 자존감을 설계하는가>라는 제목의 뇌과학 책을 읽었다. 최근 들어 친했던 친구들과 멀어졌다 화해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존감이 조금 떨어진 아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 집어 든 책이었다.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으로 언급된 건 '자기 감정 인식'이었다. 감정은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드러나는 것으로, 감정이 발생했다면 분명 근원의 이유가 존재한다고 한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근원의 이유를 찾아내는 습관을 들이는 게 자존감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함께 감정 일기를 써보자고 제안했다. 그날 겪은 감정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한두 가지를 골라 무슨 감정인지를 알아보고,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이유를 적어보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은 <아홉살 마음 사전>을 수시로 꺼내 보며, 자신이 겪은 감정의 이름을 찾고 이유를 간단히 적는다. 긍정의 감정도 부정의 감정도 모두 인정해야 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되 타인을 해하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건 안 된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이런 과정은 사춘기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사춘기 아이들은 보통 자신의 감정을 단순하게 표현한다. '헐', '짜증 나', '미친'과 같은 몇 가지 단어들로 뭉뚱그리는 것. 하지만 감정을 세분화해 인식하면, 급변하는 자신의 감정을 더 섬세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아직 사춘기는 오지 않았지만, 부디 이 과정이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 본다.
내 육아를 의심하기
대표적인 과학커뮤니케이터인 김상욱 교수는 책 <떨림과 울림>에서 이렇게 말한다.
필자가 과학자로 훈련을 받는 동안, 뼈에 사무치게 배운 것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태도였다. 모를 때 아는 체하는 것은 금기 중의 금기다. 또한 내가 안다고 할 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질적 증거를 들어가며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우리는 이것을 과학적 태도라고 부른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은 지식의 집합체가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자 사고방식이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서로 아는 것과 가진 것을 두고 경쟁을 벌인다. 특히 남자 아이들은 잘 모르는 것도 안다고 말하며 허세를 부릴 때가 종종 있다. 과학적 태도를 아이들과 함께 일상에서 실천하고 싶어 이렇게 말한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무엇을 알고 있는지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과학을 배우며 육아를 한다. 육아는 내가 이전에 경험한 그 어떤 일에도 비견할 수 없을 만큼 험난한 여정이다. 좀 알겠다 싶으면 곧바로 거대한 벽에 부딪힌다. 그때마다 처방책처럼 과학책을 펼친다. 생생한 과학적 사실과 신비로운 진화의 세계에 빠지다 보면, 길이 조금 열리는 느낌이다. 내 양육 방식을 확신하기보다 의심하는 사고 방식 역시 과학에서 배웠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할 줄 알고, 수용하고 순응하기보다 의심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아이들을 길러내고 싶다. 나 역시 그런 어른으로 살고 싶어 오늘도 과학책을 뒤적인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할 때
캐럴 계숙 윤 (지은이), 정지인 (옮긴이),
윌북, 2023
차이에 관한 생각 - 영장류학자의 눈으로 본 젠더
프란스 드 발 (지은이), 이충호 (옮긴이),
세종(세종서적), 2022
지속가능한 가치로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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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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