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less Beauty: A HISTORY OF STILL LIFE
한성은
플랑드르와 네덜란드 사람들은 당시로서는 무척 귀한 캔버스 천 위에 그것보다 더 귀한 안료를 개어서 왜 하필 정물을 그렸을까? 전지전능한 신도 아니고, 소중한 사람도 아닌 접시와 잔 그리고 꽃과 과일 따위를 그린 이유는 뭘까?
17세기 네덜란드 사람을 만나서 물어볼 수는 없기에 시선을 요즘의 SNS로 돌리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내가 소유한 것들 중에 꼭 보여주고 싶고, 남들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남고 싶은 것들이 SNS에 게시되고 거기에 사람들은 하트와 좋아요를 누르며 반응한다.
1637년 네덜란드 튤립파동 당시 희귀한 튤립 구근의 한 뿌리의 가격이 숙련공 연봉의 10배에 이르렀으니, 이 시기를 전후해서 그려진 꽃 정물화는 그야말로 부의 상징이었다. 당시 사람들도 지금처럼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지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SNS의 게시물은 예술이라 부르지 않고, 네덜란드 정물화는 예술이라 부른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속에 담은 메시지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SNS의 게시물은 인간의 욕망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지만, 네덜란드 정물화는 그 속에 욕망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