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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로 야구장 망했는데 또?", 대전시 윗분들의 이상한 고집

[取중眞담] 갑천 인조 잔디 야구장 '몰래 공사장'에서 발견한 실패의 흔적들

등록 2024.08.28 20:53수정 2024.08.28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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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a  대전시가 밝힌 '인조 잔디 야구장' 공사 면적은 9110㎡(약 2760평)이다. 하지만 둘러본 공사장 면적은 눈대중만으로도 2배 이상이었다.

대전시가 밝힌 '인조 잔디 야구장' 공사 면적은 9110㎡(약 2760평)이다. 하지만 둘러본 공사장 면적은 눈대중만으로도 2배 이상이었다. ⓒ 심규상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신경 써 차려입은 윗옷이 금세 땀에 젖어 축축해졌다. 28일 찾은 대전 봉산동 갑천 인조 잔디야구장 조성 공사장은 예상보다 넓었다.

대전시가 밝힌 야구장 조성 면적은 9110㎡(약 2760평)이다. 하지만 기자가 둘러본 공사가 진행 중인 면적은 눈대중만으로도 2배 이상 컸다.

주민들의 반발을 의식한 듯 현장 공사는 잠시 멈춰 있었다. 하지만 이미 수천여 평 면적을 평평하게 다듬고 그 위에 두껍게 흙과 파쇄석을 깔아놨다. 인조 잔디를 입힐 기초공사가 거의 마무리된 것이다.

a  28일 확인한 갑천 인조 잔디 야구장 공사 현장. 수천여 평 면적을 평평하게 다듬고 그 위에 두껍게 흙과 파쇄석을 깔아놨다.

28일 확인한 갑천 인조 잔디 야구장 공사 현장. 수천여 평 면적을 평평하게 다듬고 그 위에 두껍게 흙과 파쇄석을 깔아놨다. ⓒ 심규상


갑천 하류 둔치인 이곳은 공사 전에는 대부분 풀이 자라는 자연 초지였다. 일부에 흙바닥 농구장이 조성돼 있었다.

대전시가 이곳에 주민들도 모르게 인조 잔디 야구장 조성 공사를 시작한 건 지난 7월이다. 대전시는 관할 주민자치센터도, 주민자치위원회도 최근 우연히 공사 내용을 알 만큼 일방적으로 일을 벌였다.

공사장 앞 갑천을 천천히 둘러봤다. 며칠 전 내린 소나기에 폭 140m의 강폭을 꽉 채워 물이 흐르고 있었다.

"홍수 때 농구 골대까지 물에 잠기는 곳"


그런데 공사장 바로 아래 천 바닥에 낯익은 철 구조물이 반쯤 물에 잠긴 채 거꾸로 박혀 있다. 마침, 지나가는 주민에게 물었다.

이 주민은 "올해 농구장과 바로 옆 축구장이 물에 잠겼는데 그때 떠내려간 것"이라며 "비가 많이 안 와도 대청댐에서 방류를 많이 하면 농구 골대까지 물에 잠긴다"고 말했다. 그는 공사 중인 인조 잔디 야구장을 가리키며 "지난 7월 초 수해 때도 침수됐던 곳"이라고 귀띔했다.


대전시가 지난해와 올해 홍수 때 철 구조물이 쓸려 나갈 만큼 피해를 본 것을 알면서도 이곳에 인조 잔디 야구장 조성 공사를 벌였다는 얘기다.

a  인조 잔디야구장 공사장에서 갑천을 사이에 두고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갑천 야구 공원(대덕구 문평동, 븕은 색 네모부분)이다. 대전시가 지난 2017년 조성한 야구 공원에는 갑천변을 따라 약 1km 구간에 8면의 야구장을 갖췄다. 하지만 수해로 망가져 경기장이 있어야 할 곳에 잡풀이 빼곡히 덮여 있다.

인조 잔디야구장 공사장에서 갑천을 사이에 두고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갑천 야구 공원(대덕구 문평동, 븕은 색 네모부분)이다. 대전시가 지난 2017년 조성한 야구 공원에는 갑천변을 따라 약 1km 구간에 8면의 야구장을 갖췄다. 하지만 수해로 망가져 경기장이 있어야 할 곳에 잡풀이 빼곡히 덮여 있다. ⓒ 심규상


이곳이 상습 침수지역이고 홍수 때마다 복구가 어려울 만큼 큰 피해가 발생하는 곳임을 알려주는 사례는 또 있다. 바로 인조 잔디 야구장 공사장에서 갑천을 사이에 두고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갑천 야구공원(대덕구 문평동)이다. 직선으로 불과 150m 남짓 거리다.

대전시가 2017년 조성한 야구공원은 갑천변을 따라 약 1km 구간에 8면의 야구장을 갖췄다. 공사장을 등지고 맞은편을 건너다 보자, 야구 공원 내 큰 시설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야구 경기장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경기장이 있어야 할 곳에 잡풀이 빼곡히 덮여 있다.

강을 건너 갑천야구공원으로 향했다. 천변은 7월 홍수 때 입은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난간 철 구조물이 폭격을 입은 듯 휘어져 누워있다. 나머지는 쓸려 사라졌다. 야구 경기장이 있던 곳으로 들어서자, 잡풀이 허리까지 덮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짓단에 풀씨가 덕지덕지 붙었다.

a  공사장 바로 아래 천 바닥에 낯익은 철 구조물이 반쯤 물에 잠긴 채 거꾸로 박혀 있다(빨간 원). 지난해 농구장과 바로 옆 축구장이 물에 잠겼을 때 떠내려간 경기장 구조물로 보인다. 천변 앞이 대전시가 조성중인 인조잔디 야구장이다.

공사장 바로 아래 천 바닥에 낯익은 철 구조물이 반쯤 물에 잠긴 채 거꾸로 박혀 있다(빨간 원). 지난해 농구장과 바로 옆 축구장이 물에 잠겼을 때 떠내려간 경기장 구조물로 보인다. 천변 앞이 대전시가 조성중인 인조잔디 야구장이다. ⓒ 심규상


풀숲을 헤치고 한참을 걸었지만, 야구장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대부분 잡풀에 덮였거나 잡풀이 없는 곳은 바닥이 움푹 패여 물웅덩이로 변했다.

곳곳에 키 높이로 자란 쑥대도 보였다. 말 그대로 '쑥대밭'. 홈베이스로 보이는 낡은 시설물과 풀숲 곳곳에 박혀 있는 깃발이 이곳이 야구장이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a  갑천야구공원. 풀숲 곳곳에 박혀 있는 깃발이 이곳이 야구장이었음을 짐작케 한다(빨간 원). 대전시가 지난 2017년 조성한 야구 공원은 갑천변을 따라 약 1km 구간에 8면의 야구장을 갖췄다.

갑천야구공원. 풀숲 곳곳에 박혀 있는 깃발이 이곳이 야구장이었음을 짐작케 한다(빨간 원). 대전시가 지난 2017년 조성한 야구 공원은 갑천변을 따라 약 1km 구간에 8면의 야구장을 갖췄다. ⓒ 심규상


a  갑천야구공원. 망가진 시설물이 이곳이 야구장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갑천야구공원. 망가진 시설물이 이곳이 야구장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 심규상


빠른 걸음으로 1km 구간을 둘러봤지만, 온전한 곳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야구장 8면 전체가 폐허가 된 것이다. 그나마 곳곳에 고라니 발자국과 배설물이 보였다. 홍수 피해로 사람들이 차지하던 땅이 야생동물에게 되돌아간 셈이다.

주변을 지나는 한 주민은 "지난해 여름 홍수 때 큰 피해를 당했는데 복구도 하기 전 올해 또다시 피해를 입어 (복구를) 포기한 것 같다"라며 "피해가 반복되는데 복구하는 게 이상하지 않겠냐"고 답했다. 그는 "애초 (침수가 잦은 이곳에) 야구 공원을 만든 게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a  갑천야구공원. 야구경기장이 물덩이로 변했다.

갑천야구공원. 야구경기장이 물덩이로 변했다. ⓒ 심규상


a  갑천야구공원. 홈베이스로 보이는 시설물이 이곳이 야구장이었음을 짐작케 했다. 대전시가 2017년 조성한 야구 공원엔 갑천변을 따라 약 1km 구간에 8면의 야구장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 7월 수해로 모두 망가졌다.

갑천야구공원. 홈베이스로 보이는 시설물이 이곳이 야구장이었음을 짐작케 했다. 대전시가 2017년 조성한 야구 공원엔 갑천변을 따라 약 1km 구간에 8면의 야구장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 7월 수해로 모두 망가졌다. ⓒ 심규상


기자가 해당 주민에게 맞은편 천변을 가리키며 '붉은색 띠를 두른 저곳에 대전시가 인조 잔디 야구장 공사를 하고 있다'고 말하자 "설마 바로 눈앞에 수해로 엉망이 된 야구장을 보고서 또 야구장을 만들리 있겠냐"라며 "잘못 알고 계신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현장을 둘러보며 대전시가 '침수 피해가 예상되는 곳에 왜 인조 잔디 야구장을 건립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더 커졌다.

앞서 대전시 관계자는 지난 23일 기자의 질문에 "여건이 좋지 않지만, 다른 지자체에서도 천변에 조성하는 곳이 있고 홍수에도 쓸려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려 한다"고 답변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도 "(늦었지만) 현장을 다시 둘러 보고 주민들과 협의 후 불가피한 경우 공사 중단도 감안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a  갑천야구공원. 곳곳에 보이는 깃발이 이곳이 야구장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갑천야구공원. 곳곳에 보이는 깃발이 이곳이 야구장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 심규상


실제 대전시 관계자는 지난 26일 현장을 다시 둘러 보고 지역 주민들과 뒤늦게 첫 논의를 벌였다. 하지만 이날 대전시의 답변은 '윗분들께 보고하고, 세밀히 검토하겠다'는 의례적인 선에 그쳤다.

대전시 '윗분'들은 왜 폐허가 된 야구 공원을 눈앞에서 보고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 것일까. 대전시 '윗분'들은 '두 번 실수하지 말라'며 백지화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목소리에 왜 시간을 끄는 걸까.

대전시 윗분들에게는 두 번 실수도, 세 번 실수도 다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 일상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는 의미)인 걸까.

a  갑천 야구공원 앞 천변 난간대가 지난 7월 수해로 망가져 있다.

갑천 야구공원 앞 천변 난간대가 지난 7월 수해로 망가져 있다. ⓒ 심규상


#대전시 #천변인조잔디야구장 #갑천 #갑천야구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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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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