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전남 신안군 흑산도의 흑산도아가씨 노래비. 흑산도아가씨는 가수 이미자씨의 대표곡이다.
소중한
흑산도는 가요의 여왕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로도 유명하다. '물결은 천번 만번 밀려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만재도와 하의도
TV 연예 프로 '삼시 세끼'로 유명해진 만재도의 주상절리(柱狀節理). 화산 활동 중 지하에 남은 마그마가 식는 과정에서 수축하고 갈라지면서, 화산암 기둥들을 세웠고, 그것이 주상절리 비경이다. 제주도나 한탄강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신비스러운 미를 뽐낸다.
국내 최초로 섬에서 발견된 산정 습지도 있다. 흑산군도 대장도 이야기다. 그 바다의 안개(海霧)와 화강암, 이탄층(泥炭層, 식물이 죽어 수백년 썩지 않고 쌓여, 물을 흡수 보전하는 층)은 섬 꼭대기에 람사르 습지를 만들었다. 2003년 조류보호협회 회원들이 발견한, 해발 273m 정상에 2만7천 평의 습지. 실로 고개 갸웃해지는 천지 조화가 아닌가.
신안 해저 보물 발굴 스토리는 그 자체가 극적이다. 1975년 증도 방축리 앞바다에서 어부의 그물에 도자기 몇 개 걸려 나오고, 가치를 모르니 지인에게 선물로 갔다. 어부의 동생인 초등학교 교사는 그 심상치 않은 물건들을 문화재관리국에 넘겨 심의를 받게 했고, 마침내 600여 년 전, 중국 원(元)나라 도자기로 판명되었다.
수중 발굴 경험이 전혀 없던 시절이었다. 해군 해난구조대를 앞세워 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발굴해낸 신안 보물선은 28.4m 폭 6.6m. 원나라 때인 1323년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일본의 후쿠오카, 교토로 향해 보물들을 싣고 가다 난파했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 안에서 중국 도자기 2만여 점, 금속공예, 목칠기, 향신료, 후추, 차와 약재, 과일 씨앗이 나왔다. 중국 동전 28t 800만 개와 화물표에 해당하는 목찰 360여 점도 나왔다. 일본 거래처 이름도 적혀 있었다.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한 이광표 저자는 유홍준 버금가는 전문성과 깊이로, 유려하게, 그 답사기를 적고 있다.
김대중을 배출한 하의도도 섬 전체가 일본인 소작지였다. 조선 인조가 공주를 홍씨 집안에 시집보내면서 섬 농지를 하사했고,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일본인에게 팔렸다. 농민들의 끈질긴 권리회복 투쟁은 1956년에야 비로소 국회의 유상(有償)반환 결정으로 열매를 맺었다.
하의도 DJ 생가는 풍수지리의 배산임수(背山臨水) 명택과는 거리가 멀다. 갯벌을 메운 섬 간척지에 무슨 좌청룡 우백호가 있을 리 없다. 김대중은 회고록에서 자신이 서자임을 아프게 밝혔다. 황호택 저자는 이를 인용하면서, "생모 장수금이 팔자가 셌지만, 생활력 강하고 자녀 교육에 열성"이라고 평했다.
한국 정치에서 치명적 핸디캡인 서자, 고졸, 지역 3가지 굴레를 쓴 약자. 손에 쥔 거라고는 없이 팔자만 거칠어, 사형장 문턱에서 울먹이던 김대중. 그 빈털터리가 극소의 가용자원(可用資源)을 이리저리 변통해서 기어이 뜻을 이루었다. 그의 성공은 동서고금의 유례없는 이적(異蹟)이다.
장산도는 근 100년 동안 5명의 장관과 국회의원을 배출한 속칭 '5 장관의 집'이 세일즈 포인트이다. 상하이 임시정부 의원인 애국지사 장병준, 그의 동생 홍염(제헌, 2대 국회의원) 그리고, 그들 조카인 재식(3선 국회의원, 산자부 장관), 재식의 형인 충식의 딸 하진(여성부 장관]) 아들 하성(전 청와대 정책실장, 중국주재 대사)이 그 집안이다.
장재식의 장남 하준은 30년 넘게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를 하다 런던대로 갔다. 차남 하석도 케임브리지대학 교수. 신안군은 인동 장씨 신흥 명문가의 고택을 '허니문 하우스'로 단장했다. 천재 명문가의 기를 받고, 머리 좋은 애를 낳고 싶은 신혼부부에게 5만 원에 예약을 받는다. 기발한 상술이다.
비금도와 팔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