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고춧가루를 받아들고 기뻐하는 낭만 어르신고급진 카페다.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참 통화를 하시더니만 고춧가루가 배송되었다. 테이블 위에 포도도 한 상자 같이 말이다. 목소리가 하도 커서 그냥 귀에 쏙쏙 들린다. 아는 사람이면 얼마에 어디서 샀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다.
김은아
도시에서는 직장인과 학생들로 가득 차 있는데 이곳은 어르신들과 밭에서 일하다 잠깐 커피 한 잔 하러 오신 분들도 보인다. 대도시와 소도시를 차림새로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비교적 편안한 옷차림과 작업복이다.
어르신들은 귀가 잘 안 들리시는지 목소리가 참으로 크시다. 가만히 있어도 대화 내용이 귀에 쏙쏙 들린다. 명절에 햇고추를 빻아서 김치를 담았는데 맛이 좋아서 애들한테 몇 근씩 나눠줬단다가 시작이었다. 어르신은 휴대전화를 들더니 통화를 상당히 오래 걸쭉하게 하신다.
"고추 한 근에 월매지? 올해 많이 수확했다면서"
"응 추석에 먹을 것만 조금 빻았는데 이제 빻아야지. 얼마나 필요햐?"
어떤 사이인지는 몰라도 고추 수확과 빻은 고춧가루 이야기로 한참 동안 통화를 하신다. 일부러 들으려고 한 것이 아닌데 전화를 하는 사람이나 휴대전화 너머 어르신 목소리까지 아주 또이또이 들린다. 그러더니 한참 있다 고춧가루라면서 검정 비닐봉지를 한 어르신이 가져다주고 사라지신다. 두 어르신이 양 많다고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예상치 못한 광경이다.
한편에선 할아버지가 아이스크림과 샌드위치를 주문하시고 오니, 할머니 얼굴에 웃음이 펴진다.
"내가 해장국 한 턱 쏠게."
다른 편에서 들리는 소리다.
"워찌, 이제 왔어? 배추 모종 심었어?"
"아이고 뭔 모종이여. 농사 그만해야지."
그렇다. 장소를 만들어가는 것은 사람이다. 그 도시에 맞는 장소성과 아우라가 우러나는 법이다. 같은 인테리어, 같은 공간, 같은 음료다. 그런데 느낌이 이리도 다르다. 도시의 공간은 그 사용자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호텔에 입점해 있는 카페라면 왠지 밭에서 입던 작업복 차림으로 가기가 망설여질 것이다. 큰 소리로 떠들거나 있는 대로 볼륨을 높여 통화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관점에 따라 매너없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여기는 누구도 인상 쓰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손님이 많지도 않지만,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프로토콜이자 문화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귀는 어두워지고 목청은 커진다. 젊은 사람들은 싫어할지도 모른다. 시끄럽다고. 그러나 이들에게는 그저 일상의 대화일 뿐이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받아들이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