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시위 돌입청주산선에서 중앙여고 앞을 지나 시내로 가두시위하는 모습
청주도시산업선교회
"목사님" 하며 입을 연 김종우는 밀실 협상의 전말을 이야기했다. 청주시 법인택시의 공동 임금 교섭은 애초에 순조로웠다. 당시 원일교통 노조위원장이던 김종우도 협상 테이블에 참석했다. 그런데 협상이 마무리되던 즈음에 노조 측 대표자가 김종우에게 엉뚱한 주문을 했다. "바로 끝날 거니까 나오지 마라"고 한 것이다.
교섭위원회 간사인 자기가 문화동에 있던 노동위원회 사무실의 협상테이블에 들어오지 말라는 것이 이상했으나 '별일 있으려구' 하는 생각에 노조 측 대표자의 말을 따랐다. 집에 와 무심코 튼 라디오에서 청천벽력 같은 뉴스가 나왔다. 완전월급제를 파기하고 일당제로 전환한다는 것이었다. 1988년 6월 2일이었다.
벽돌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바지를 추스려 입고 회사로 향했다. 노동조합 사무실에는 조합원들이 입에 거품을 물며 목청을 키우고 있었다. 김종우는 사무칠 칠판에 87년도 기존 협상안과 88년도 협상안을 메모하며 조목조목 설명했다.
"완전월급제를 똥통에 팽개쳐 버렸구만!" "아파서 병원에 가도 월급에서 깐다네." "근속수당도 없어졌어."
개정이 아니라 개악이었다. "88 임금협상 무효다" "임금협상 재개하라"며 원일교통 전체 조합원이 회사 앞에서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사장과 관리자들은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답답한 이가 우물 판다고 조합원들은 택시 충북도지부 사무실과 노동위원회 사무실을 찾아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문이 굳게 닫혀 사람 얼굴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며칠 후 김종우를 포함한 조합원들이 근무지 이탈로 모두 해고 당했다. 회사 문을 잡아당겼지만 굳게 닫힌 철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시 택시 충북도지부, 노동부 청주지방사무소, 택시 근무 교대지 등에 가서 공무원과 다른 회사 택시 기사들에게 하소연했다. 하지만 속시원한 답변은 아예 없었다.
그는 영진택시 조병완 등을 포함해, 다른 택시 회사 노조위원장들과 함께 6월 4일부터 7일까지 총파업을 감행했다. 파업에는 택시 노동자 1500명이 참여했고, 하루 100~200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그렇게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김종우가 찾은 곳이 청주산선이었다. 김종우가 울끈거리며, 때로는 비장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는 내내 정진동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정진동은 "종우씨가 마음 고생이 많았겠네"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 말 한 마디에 김종우는 10년 묵은 체증이 가시는 듯했다. 김종우가 다녀간 후에 영진교통, 신안교통 등의 노조위원장과 간부들이 청주산선의 문턱을 밟았다.
그러다가 청주시 법인택시 17개 노조위원장들이 한꺼번에 정진동을 찾았다. "목사님. 청주산선을 농성장으로 이용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하세요." 정진동은 잠시도 고민하지 않았다. 교회는 양떼들의 안식처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100여 명의 택시 노동자가 청주산선을 농성장으로 쓰기로 한 날은 1988년 6월 8일이었다.
난닝구 차림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