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별초군의 최후 저항 거점이던 항파두리 토성 안에는 건물 주춧돌과 축대 등이 남아있다
이종원
제주 백성에게 고려와 원나라는 모두 '외세'
제주도는 헌법에 한반도의 '부속도서'로 표현돼 있고, 학교에서는 제주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육지 교과서를 그대로 배워야 했다. 탐라사는 가르치지도 않았고, 음악 시간에는 '기찻길 옆 오막살이'나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로 시작되는 '설날' 같은 동요를 배웠는데, 제주 아이들에게 무슨 감동을 줬을까? 제주에는 기차는 물론 까치도 없었다. <일간스포츠>가 1989년 까치 보내기 운동을 벌여서 들여온 46마리가 엄청나게 번식하면서 생태계 교란과 정전 사고를 일으키는 골칫덩어리가 됐다.
제주 백성에게 고려와 원나라는 모두 외세였으니 수탈을 덜 하는 쪽에 호감이 갈 수밖에 없었다. 고려에 편입된 뒤 제주로 파견된 목민관은 감시의 눈도 없으니 가렴주구를 일삼는 이들이 너무나 많았고 어느 곳보다 잦은 민란의 요인이 됐다. 제주민은 삼별초가 들어온 뒤 육지의 억압에서 해방될 수 있었으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삼별초의 축성 작업 등을 도왔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몽연합군이 삼별초를 토벌할 움직임을 보인데 다가, 항파두리성 말고도 제주도 해안 전체를 둘러싸는 환해장성 구축에 가혹하게 동원되고 먹을 것도 부족해지자 갈등이 생겼다. 전세가 불리해 보이자 토벌군 쪽에 붙는 이도 있었을 터이다. 아기업개의 변절은 개인 사정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그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도 있다.
세한도에 그려진 것은 무슨 나무일까?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대정읍의 추사 김정희 유배지. 당시 대정현은 특히 중죄인들이 많이 유배된 곳이다. 추사는 절도안치에 위리안치가 가중될만큼 중형을 받았으나 여기서 추사체를 완성하고 세한도를 그렸다.
세한도는 제자인 이상적이 책을 보내준 보답으로 그려준 건데, '추운 겨울이 돼서야 송백이 시들지 않음을 안다'는 발문 때문에 생긴 오해가 하나 있어 보인다. 송백(松柏)은 '소나무 송'에 '측백 백'이지만 '백'(柏)은 잣나무를 뜻하기도 하는데, 발문과 달리 세한도에는 엉뚱한 나무가 그려져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