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택배일기 - 택배 상자 들고 가리봉동을 누빕니다, 구교형 (지은이)
산지니
돌아보면 그때 내가 택배로 나오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나는 더 깊은 나락에 떨어져 어쩌면 인생을 완전히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만나본 모든 택배 동료들도 그랬다. 그들 중 누구도 이 일을 처음부터 기쁘게 선택한 사람은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성공하고 편안한 인생을 꿈꾸지만, 살다 보면 누구나 뜻밖의 위기를 만난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그때 그저 살려는 욕구만으로 선택하는 일 중 하나가 택배다. 그래서 신종 인생막장이다.
그런데 인생의 밑바닥에서는 '내가 왕년에 누구였는데' 하는 거품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빨리 걷어낼수록 좋다. 내가 노숙인 쉼터 시설장 시절(2017~19년), 입소인 중에는 '왕년에' 학원장, 큰 식당 사장, 총학생회장, 명문대 출신, 육사 교관 등 다양한 모습으로 한가락 했던 분도 많았다. 대부분 이제 '왕년에'를 잊고, 현재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게 살았지만, 그들 중에는 노숙인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스스로 외톨이로 사는 분도 있었다.
나 역시 택배 초년병 시절, 퇴근 후 고객과 불편하게 통화하는 걸 옆에서 듣던 딸이 내가 전화를 끊자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고객과 전화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목사인데' 하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 나는 아빠가 목사일 때도 좋았지만 지금 택배기사로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가족들 부양하는 모습도 굉장히 멋진데." 그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부끄럽다.
그러나 바닥을 살수록 삶의 의미와 목표를 다시 찾는 건 매우 중요한 것 같다. 그때 가족은 우선적일 것이다. 우리 동료들도 대개 그렇다. 매일 400여 개를 배송하며 우리 터미널에서도 늘 배송순위 5위 안에 드는 50대 동료는 늘 끙끙대면서도 배운 게 없어 고생한 자신과 다르게 외아들만은 잘 길러보겠다고 1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킨다.
그러나 힘들 때는, 그저 지금을 잘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나도 그랬다. 그때 나는 몸도, 마음도 죽을 만큼 힘들었다. 다른 데도 아니고 하필 가리봉동에 배치되었을 때, 마치 보이지 않는 손(내겐 하나님)이 일부러 더 깊은 벼랑으로 끌고 가는 듯했다. 그때 나는 매일 그날만 버텨내는 걸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수개월이 지나니 일도 수월해지고 어느새 마음에 넉넉한 여유와 서서히 차오르는 힘을 느꼈다. 그래서 인생이 막막하고, 힘든 분을 만나면, 나는 이제 아무 생각 없이 힘든 육체노동을 해보도록 진심으로 권한다. 벼랑 끝 외길에서 만나 뜻밖의 고난은 인생이 주는 뜻하지 않은 기회일 수도 있다고 믿게 되었다.
"혹시 지금 인생 막장을 경험하고 있는가? … 내 경험을 들어 말한다면, 인생의 위기가 닥치고 의욕이 떨어지고 길이 안 보일 때 육체노동을 권한다."(215쪽)
둘째는 아무래도 내가 목사라는 것과의 관련성이다. 신문사에서 내게 요청한 것도 택배 일의 소개를 넘어 목사로서 택배를 하며 느끼는 조금 다른 시선을 소개하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연재 제목도 <목사가 쓰는 택배 이야기>로 정해주었고, 이번에 나온 책 제목도 <목사님의 택배일기>(산지니)가 되었다.
투잡, 쓰리잡이 낯설지 않은 시대에 목사가 택배하는 게 무슨 특별한 일인지 싶지만,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의미일 수 있겠다는 걸 일하면서 실감했다. 기왕에 택배 일을 시작했으니 내겐 돈 버는 것 외에 나만의 역할과 의미를 스스로 부여해 보았다. 그것은 '주변 기사들에게 조금이나마 기쁨이 되는 좋은 동료가 되자'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우리는 배송 나가기 전 3~4시간 가량을 함께 물품 정리하며 어울린다. 우리는 서로의 물건을 찾아 던져주며 이런, 저런 농담을 하고, 전날 진상 고객 욕도 하고, 괜히 가서 어깨를 탁치며 장난도 친다.
그리고 나는 누구에게나 먼저 인사하고, 가끔 밤빵, 호빵, 건빵 등을 잔뜩 사서 나눠주거나, 2~3주일마다 100원짜리 동전을 바꿔 놓고 누구나 가져가, 자판기 커피를 맘대로 먹도록 했다. 가끔 식사하러 가면 일부러 밥값을 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