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걸 좋아하는 아이의 눈을 사로잡은 다양한 군것질거리
김아영
계산대에 계시던 분은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천 원도 안 되는 걸 파는데 얼마나 우리가 귀찮았을까 죄송한 마음에 눈치를 봤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분의 얼굴엔 짜증은커녕 인자한 미소만 있었다. 아이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는 눈빛에 마음이 놓이면서도 내심 부끄러웠다.
내가 편의점에서 일할 땐 이렇게 시간을 끄는 아이들을 좀 귀찮아했기 때문이다. 내 눈에 초등학생은 통제가 힘들고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모르는 요주의 손님이었지만, 그 계산원의 눈에는 먹고 싶은 게 많아서 눈이 총총 빛나는 사랑스러운 손주뻘 아이였을 것이다.
다른 아이들과 같이 근처의 다른 편의점을 갔을 때도 반응은 비슷했다. 공교롭게도 대표 편의점 브랜드 세 곳이 근방에 다 몰려 있는데 우연히도 세 곳 다 중년 이상의 계산원이 근무했다. 그리고 그분들 모두가 아이가 들어오면 "안녕, 오늘은 뭐 먹고 싶어서 왔어?" 하고 살갑게 아는 척을 해주셨다.
행여나 아이가 젤리 매대를 두리번거리면 척하면 척이라는 듯 "XX젤리는 신상이라서 아직 없어. 내일 들어올 것 같은데 어떡하지?" 하고 안타까워하셨다. 참고로 내가 초등학교 근처 편의점에서 근무할 땐 초등학생 손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한다거나 소비 취향을 알아준다거나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혹시나 계산원이 적성에 안 맞는다고 아니면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을 읽고 조금이나마 용기를 내길 바란다. 나처럼 계산이 느리고 덤벙대는 사람도 이럭저럭 잘 해내가고 있다.
잘 웃는 습관은 누구와도 싸우기 싫다는 소극적인 방어기제인데, 가끔은 내가 왜 웃었나 싶을 정도로 반사적으로 웃음이 튀어나와 자신이 싫어지기도 하는데, 계산대에 서 있을 때만큼은 장점으로 작용해서 톡톡히 덕을 보고 있다.
당신의 MBTI가 무엇이든, 나이가 몇이든 상관없다. 이 사회가 어떤 계산원을 이상형으로 세우든 크게 신경 쓰지 마시라. 당신은 좋은 계산원이 아니라 당신다운 계산원이 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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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해지고 싶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달라지는 것에 겁을 먹는 이중 심리 때문에 매일 시름 겨운 거사(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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