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1월 25일 만선일보. 간도특설대 근무 중 만주군관학교에 합격한 조선인 3명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일제는 여러 기회를 제공한다는 구실로 조선인 청년들을 간도특설대로 유혹했다.
국립중앙도서관
일제는 조선인 청년들을 유혹하기 위한 당근도 제시했는데요. 만주군 군관학교와 일본육군사관학교 유학을 내걸기도 했습니다. 대학 수준의 고등 교육 제공과 능력에 따라 군관으로서 승진과 출세를 보장한 것인데요. 이런 신분 상승 유혹에 현혹된 조선인 청년들이 간도특설대에 자원 입대합니다.
간도특설대는 1938년 12월 1기 200명을 시작으로 1940년 3월 2기 100명, 1941년 6월 3기 80명 등 이후 매년 80명씩 인원을 선발했습니다. 1945년 4월 1일 7기 선발을 마지막으로 간도특설대는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유지됐고, 전체 690여 명의 조선인이 복무했습니다. 퇴역이나 전직 등이 이유로 평상시 부대 인원은 300명 정도였습니다.
간도특설대의 역사가 기록돼 있는 <만주국군지>에 따르면 이들의 군사적 실력이 대단했던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사격과 총검술은 간도성이 속한 만주국군 제6관구와 전군대회에서 항상 우승'을 했으며, '야간 기동은 부대가 부락 부근을 통과해도 그 촌락의 개가 짖지 않을 정도'였다고 자화자찬을 늘어놨습니다.
이들은 정신적으로도 완전한 일본군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었는데요.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한 백선엽의 회고록에 따르면 "어느 날 밤 보초가 근무 중 졸았다가 이 사실을 당직사관에게 지적받자, 그를 지도할 책임이 있던 위병장이 다음날 아침 권총으로 자결하였다"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완전하게 일본 군국주의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간도특설대의 부대가에는 "건군은 짧아도 전투에서 용맹을 떨쳐 야마토혼(大和魂)은 우리를 고무한다. 천황의 뜻을 받든 특설부대 천황은 특설부대를 사랑한다"라며 일본 왕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간도특설대의 잔혹함
간도특설대의 군사적 재능이 뛰어났을지는 모르나, 그들은 우리 독립 운동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간도특설대가 부여받은 주된 임무는 항일무장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과 그를 위한 정보활동이었습니다. 이들은 농민으로 변장한 채 조선인 마을에 잠입해 정보를 수집하고 민심을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끔찍한 학살과 보복을 병행했으며, 특히 여성에 대한 만행은 인간으로서 저지를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1944년 2월 간도특설대 김송 중위는 한 소대를 거느리고 이영자(李營子)에 와서 독립군과의 관계를 캐물었고, 그곳 담당자 고준산을 살해했습니다. 유수림자(楡樹林子)의 조선인 김동근 역시 독립군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물고문으로 살해했습니다. 독립군과 내통했다는 혐의를 씌워 손요종, 손국동, 조청산을 권총으로 살해했고, 사람을 칼로 베어 살해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