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마주이 체험넝마주이를 체험하는 정진동(좌)과 인명진(우)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정 목사. 청주 OO교회로 가시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도시산업선교회를 그만두고 OO교회로 가서 목회 활동을 하란 말이오."
"..."
충북노회 아무개 목사의 통보에 정진동은 황당했다.
1974년 3월 16일 충북노회가 열렸다. 이날의 모임은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실무자 정진동 목사 성토 자리였다. 지난 연말 충북노회가 청주시장을 만나 청소부 문제를 합의한 것에 대해 정진동이 공개적으로 반박했기 때문이다. 사실 충북노회로서는 청소부 문제 합의를 지역의 현안 문제에 대해 적극 발언해 소기의 성과까지 얻은 것이라고 자평했었다.
결국 선교회를 없애버리는 노회
그런데 정진동은 충북노회가 임금 몇 푼과 휴일 문제만 합의해 놓고 청소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선언한 것에 분개했다. 사실 노동자 정운탁의 경우 19년을 근무하고도 퇴직금제도가 없어서 돈 한 푼 받을 수 없는 처지였다. 수년부터 십수 년 근무한 다른 이들도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해고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해고자들의 복직 여부가 전혀 명시되지 않아, 충북노회 목사들과 청주시장이 합의했다는 내용은 빈 껍데기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청소부 문제를 청소 노동자 없이 합의했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정진동의 공개적인 항의에 충북노회는 뻘쭘했다. 사실 반박할 명분과 논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1974년 2~3월에 해고자들이 복직되고 퇴직금제도가 도입됐다. 청소 노동자들에게는 무척이나 환영할 일이었지만 충북노회는 얼굴이 구겨지는 일이었다.
충북노회는 청주산선 실무자를 갈아치우지 않으면 이후에는 더 크게 망신살이 뻗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 이유로 정진동에게 '실무자를 그만두라'고 한 것이다. 충북노회의 제안에 정진동은 "내가 진짜 예수를 봤다. 그게 노동자들이다. 나는 그 예수를 떠날 수 없다"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아무리 경찰의 압력이 있었다지만 정진동은 노회의 입장을 순순히 따를 수 없었다.
정진동의 반박에 충북노회로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다시 한번 정 목사한테 청주산선 실무자를 그만두라고 권고하는 게 어떨까요?" "그건 안 돼요!" "그 양반 고집이 황소 저리 가라입니다." 정진동 목사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자는 발언에 대다수 목사들이 고개를 저었다.
"자 그러면 원래의 안건 심의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청주도시산업선교회를 폐쇄하는 건(件)입니다. 다른 의견이 없으면 거수로 표결하겠습니다."
표결 결과 원안 통과였다. 즉 청주도시산업선교회를 폐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1974년 4월 18일 벌어진 일이다. 충북노회가 청주에 도시산업선교회를 설치하기로 결정한 지 채 2년도 안 돼서였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나 진배없는 일이다.
이러한 황당한 결정에 정진동은 승복할 수 없었다. 그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을 때 충북노회 몇몇 목사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5월 26일 정진동이 그 목사들을 만났을 때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정 목사. 교회(충북노회) 말 들어. 안 들으면 구속한대." 자신의 안위를 생각해서 해주는 이 말에 정진동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폭탄 발언이 이어졌다. "정 목사. 노동자는 버려도 교회는 버리면 안 돼."
정진동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자기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긴 하지만, 목사라는 이들이 '노동자를 버려도 된다'는 말을 하다니 기가 막혔다. 자신에게 예수를 버리라는 말과 같았다. 당시 정진동은 '노동자가 예수다'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