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을 살다
@Unsplash / Marcelo Leal
의사를 만나기까지 2주가 걸렸고, 그 사이 시간의 속도는 0에 가까워졌다. 그 속도의 삶 속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때마침 한국의 7월은 역대급 더위로 밤에도 뜨거웠다. 내 삶 중 2024년 7월이 불타오르는 지구에서 삶아지고 있었다. 좋아하는 책 보기, 영화 관람, 글쓰기, 걷기 모두 불가능했다. 눈을 뜨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24시간이 떠억 버티고 있었고, 그 하루를 인지하는 매일은 공포에 가까웠다. 그저 숨 쉬고 살아 있으면서 시간이 소진되기만을 기다렸다.
지옥 같은 2주의 시간을 지나 의사를 만났고 2주 뒤 수술했다. 조직검사 결과 다행히 악성이 아니어서 2박 3일 입원 후 퇴원했다. 환자복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으며 생각했다. '수술은 끝났고, 별일 없었어.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거야.' 무기력했던 지난 한 달은 떠올리기도 싫었다. 그 기간을 통째로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기대와 달리, 내 몸은 수술 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에 걸렸다. 코로나는 몸의 가장 약한 고리를 건드린다고 하는데, 내 코로나 후유증은 감당할 수 없는 무기력증과 피로감이다. 아침부터 눈 아래 다크 서클이 걸린다. 하루 종일 피곤하고 졸리고 우울하다. 바닥에 붙어 버린 내 몸을 겨우 끌고 다니는 느낌이다. 당연히 심리적, 정신적으로도 가라앉는다. 보는 사람마다 얼굴이 상했다, 어디 아프냐는 말을 건넨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뒤늦은 갱년기일까,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일까?
도무지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끌고 가 체육관을 등록하고, 트레이너와 약속을 잡고, 공진단, 발포 비타민, 홍삼을 챙겨 먹으며 회복과 극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내 몸은 수술 전, 코로나 확진 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건강한 것도 아픈 것도 아닌 낯설고 불편하고 짜증 나고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잉여의 시간'이 한 달에서 두 달, 두 달에서 석 달로 늘어났다.
힘이 된 이야기, 위로의 언어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 도서관 북토크에서 K 작가를 만났다. 강연의 제목은 <삶을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글쓰기>. K 작가는 독자들 앞에서 자신의 유방암 수술과 투병의 경험을 나눴다. 수술 전, 누우면 사라지는 A컵의 가슴이 복원 수술 후 B컵이 되었다고 말했다. 글쓰기가 커다란 슬픔이나 고통에서 벗어날 힘, 세상을 훨씬 재미있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준다면서. 그 말에 나는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터트렸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난 3개월 동안 나는 글을 쓸 수 없었다. 타인에 의해 읽히고자 하는 글에는 반드시 공적인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데, 나의 경험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올해 안에 마무리해야 할 원고가 줄을 서 있는데, "유방암 의심 사건"의 경험이 "나부터 해결하시지"라며 끊임없이 방해했다. "상대적으로" 덜 치명적일지라도, 오픈하기 어려운 사적인 것일지라도, 그 경험이 나의 일상을 무너트린다면 "그 경험"부터 글로 마주해야 했다.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내면의 감정들이 몸 구석구석에서 썩어 문드러졌다. 쿨 한 적, 별일 아닌 척 행동했지만 꽤 힘들었다고 얘기하고 싶었고, 없던 일처럼 지웠다고 했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따뜻한 위로를 원했다. 혹시 우울증 아닐까, 수십 번 생각하면서도 그런 내가 더 한심하고 나약해 보여 아닌 척했다. 그러는 사이 내 심신은 철저히 왜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