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인디언 움막 안에서 친구들과 피운 모닥불
김나라
자리에 앉자 누군가 샤먼 북을 내 손에 넘겨주었다. 모닥불에 둘러앉은 우리 여섯은 각자 힐링 악기나 풍물 악기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즉흥연주가 시작되었다. 저마다 깔깔거리며 아무렇게나 악기를 치기 시작했는데 자연스레 박자가 생겨났다. 박자가 일정해지자 분위기가 차분해졌다. 어느 부족의 전통 의식인 양 각자 연주에 몰입해 갔다.
불길은 계속 일렁였고 장작을 맡은 친구가 숲에서 구해온 나뭇가지들을 쉬지 않고 부러뜨려 집어넣었다. 둥 두둥 둥 두둥. 나는 북을 연주하며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에 내 마음을 부러뜨려 던져넣는 상상을 했다. 던져넣고, 던져넣고, 던져넣었다. 이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부 태우고 아무것도 남지 않기를 빌고 빌었다.
다음 날 우리는 아침을 먹고 빙 둘러앉아 소감을 나누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두려웠지만 솔직하게 말을 꺼냈다. 사실은 지금 힘든 시간이라서. 말을 맺지도 못하고 눈물이 쏟아져 고개를 숙였다.
그런 나를 보고 다른 친구들이 엄마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게 흐린 시야에 들어왔다. 부끄러워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머리와 어깨와 등으로 부드럽게 쏟아지는 일곱 명의 손길은 마치 태어나 처음 받아보는 것처럼 놀랍고 따뜻했다.
차에 타자 터미널까지 나를 태워다주는 '모아(필명)'가 나를 바라봤다. 혹시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해? 나는 아직도 흘러넘치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날 겨우 두 번째 만남이었던 모아는 가는 동안 가만히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많이 울어야 돼. 나도 힘들 때마다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많이 울었어. 그러고 나면 조금씩 나아지더라. 나는 끄덕였다. 터미널에서 내린 뒤 인사를 나눌 때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쩐지 그 말이 촌스럽게 느껴져서다.
파랑이 한 종류가 아닌 것처럼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아주 긴 카톡 메시지를 한 통 받았다. 활기가 넘치고 장난스러워 늘 친구들을 웃게 하는 '소피'였다. 마치 손편지처럼 느껴지는 그 메시지의 뒷부분을 나는 여러 번 읽었다.
'나는 너를 보면 엄청 청량한 푸른색이 떠올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내뿜는 기운이 맑고 좋아서일 거라고 생각해. 정말 힘들 때는 사실 다른 사람의 위로도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아.
그렇지만 너를 걱정하고 응원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거 잊지 마! 내가 원래는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요즘 잘 못 했거든. 그치만 온 마음을 다해서 기도할게! 네가 힘든 일을 잘 이겨낼 수 있기를, 이겨내지 못하더라도 괜찮아질 수 있기를,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나는 진지한 내가 밤바다 같은 색이라 생각했다. 어딘가 그림자가 드리운, 즐거울 때도 맑게 갠 하늘처럼 환하지는 않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더구나 슬픔과 우울을 이고 있는 지금의 나를 보고 청량한 푸른색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그보다 놀라웠던 건 깊은 얘길 나눠본 적 없는 사람을 위해 진심 어린 편지를 써주는 이의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