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24 06:02최종 업데이트 23.10.24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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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롱궁을 설명하는 강우현 대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재료가 된다고 믿는 강우현 대표는 '재활용'이 습관이 됐다고 한다. 업사이클 공간인 호롱궁은 재활용의 진수를 보여준다. ⓒ 황의봉

 
하늘에 등대를 세워 나의 이름과 사진과 목소리 작품 등을 저장해 놓고,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라도 자식들이 언제든 나를 불러내 공중에서 영상으로 혹은 모바일로 만날 수 있다면? 상상 속에서나 있을법한 일이 실제로 진행 중이다.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에 자리를 잡은 탐나라공화국의 하늘등대 이야기다. 지금은 하늘등대 전광판에 등대지기(분양자)의 하늘주소와 이름이 흐르고 있으나, 향후 첨단 과학기술을 적용해 홀로그램과 같은 가상 현실을 구현해 분양자의 체취를 실감나게 느껴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하늘등대는 공중에 마련된 추모공간인 셈이다. 18m 높이의 하늘등대는 360개의 주소를 분양해 현재 1차분 120명의 등대지기를 모집했다. 이곳의 분양 가격은 120만 원으로,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남에게 양도할 수도 있다. '하늘에 기억의 공간을 만들겠다는 허무맹랑한 상상'으로 시작해 성공적으로 하늘을 판 발상과 추진력이 놀랍다.


제주도에 널려 있는 현무암도 탐나라공화국에선 특별한 기념품으로 변신한다. 용암이 굳어 현무암이 된 것에 착안해 거꾸로 현무암을 녹여 용암 상태로 만든 뒤 다시 가공하면 작품을 얻을 수 있지 않겠냐는 발상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이다. 유리를 녹이는 유리용해로에 현무암을 채운 뒤 열을 가하면 24시간 정도 지나 섭씨 1300도에서 녹는다고 한다. 이걸 800도로 낮춘 가마에서 서서히 식히면서 원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현무암으로 만든 액세서리나 액자 연필꽂이 등 제주 특색의 기념품은 현장에서 판매 중이다. 현무암을 녹이는 과정은 '라바 홀 용암 공방'에서 볼 수 있다.

'국가개념 테마파크'로 조성한 탐나라공화국은 '상상을 현실로 이루어 가는 제주 상상 나라'를 표방하고 있다. 정물오름, 당오름, 도너리오름, 금오름 등이 인접한 국토면적 3만여 평의 이 나라는 모든 시설과 전시물, 자연 조경에 이르기까지 예외 없이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하늘등대나 현무암을 녹여 만든 기념품처럼 곳곳에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숨어 있다.

남이섬 성공신화 쓴 디자이너, 그가 제주도에서 한 일 
 

하늘등대 망가진 풍력발전기 몸통을 재활용한 하늘등대는 공중에 조성한 추모공간으로, 첨단 과학기술을 적용해 가상현실을 구현할 계획이다. ⓒ 황의봉

 
탐나라공화국 강우현 대표는 홍익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하고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 낸 디자인 전문가다. 하지만 그보다는 춘천 남이섬 유원지를 2000년대 한국 최고의 한류 관광명소로 만든 성공 신화의 주인공으로 많이 알려졌다.

제주도에 탐나라공화국이 들어서게 된 배경을 이해하려면 남이섬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가 2006년 3월 1일 남이섬을 나미나라공화국으로 독립선언(?)하면서 성공적인 운영을 해온 게 오늘날 탐나라공화국의 모델이 되었기 때문이다. 강우현 대표는 어떻게 남이섬을 인기 관광지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을까.

"제가 남이섬 전문경영인으로 취임한 게 2001년인데, 그때 맡으면서 오너에게 내건 조건이 1년간 월급을 100원만 받겠으니 나에게 전권을 달라, 다 바꾸겠다, 1년 내 입장객을 2배로 올리겠다고 호기를 부렸어요. 이렇게 큰소리치니까 도대체 어떻게 할 거냐고 하길래, 그것도 묻지 말라고 했지요. 1년 만에 입장객이 27만 5천 명에서 65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당시 <겨울연가> 윤석호 감독을 만났거든요. 남이섬이 드라마 촬영지가 되면서 확 뜬 겁니다. 그다음 해엔 85만 명, 그리고 3년 만에 100만 명이 넘어버렸습니다.

남이섬 경영을 맡으면서 3가지를 내걸었습니다. 시끌벅적하고 고성방가에 쓰레기가 넘치던 남이섬을 '소음은 리듬으로, 유원지는 관광지로, 경치는 운치 있게' 탈바꿈하겠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처음 한 일이 텐트 치고 스피커 틀어놓고 노래 부르는 행락객들 대신에 시민단체 분들과 예술가 교육자들을 무료로 초대해 손님을 바꾸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리고 낙엽이나 빈 깡통, 버려진 나무토막, 깨진 항아리와 건축폐기물까지 모두 관광자원과 각종 조형물의 재료로 활용했습니다.

당시 (서울) 송파에 살고 있었는데, 가을이면 수북이 떨어지는 은행잎을 김포매립지에 갖다버린다고 하길래 구청장을 만나 남이섬에 버리라고 했어요. 그걸로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운치 있는 '송파 은행나무길'이 생겨난 것이지요. 남이섬이 국제적으로 유명 관광지가 된 것이 드라마 <겨울연가>의 성공으로 대만과 일본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기 때문이라고들 말하지만, 제 생각엔 그에 더해 만국기와 (이슬람) 기도실을 설치한 게 적중한 겁니다.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되듯이 국기를 보면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돌기도 하거든요. 애국심과 신앙심도 콘텐츠가 됩니다."


여권 혹은 비자를 발급받는 테마파크라니...
 

탐나라공화국 여권과 비자 '국가개념 테마파크' 탐나라공화국에 들어가려면 입장권 구입 대신 여권이나 비자를 받아야 한다. ⓒ 황의봉

 
남이섬의 성공비결을 듣자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다. 다시 탐나라공화국으로 돌아와 이 나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살펴보자.

관람객은 탐나라공화국에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국가를 표방한 만큼 입장권 구입 대신에 여권과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1일 비자 1만 원(당일 입장료), 여권은 2만 원이다. 여권을 만들면 탐나라공화국 국민 자격을 얻어 1년간 언제든지 출입이 가능하고, 와서 뭐든지 할 수 있다. 장사를 해도 좋고 회의나 모임을 열 수도 있다. 또 이 나라는 국기와 애국가도 만들었고, 관광청장·문화청장·기상청장에, 국립중앙도서관장과 정신문화원장도 임명했다. 물론 명예직이다.

헌책도서관은 기증 도서 30만 권으로 꾸몄다. 미래에는 책이 점점 사라져 귀중한 문화유산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도서관을 지었다고 한다. 헌책 페어를 한 달 동안 열어 누구나 헌책을 들고 오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도록 했다. 출판사로부터 기증도 받았다. 도서관 건물을 짓다가 거대한 암반을 만나게 됐는데,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살렸다.

그러다 보니 도서관 건물 모양도 변형됐고 내부로도 바위 언덕이 지나가게 됐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온 바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디언 추장의 모습이다. 이 형상으로 리더십 상징 로고를 디자인하여 다양한 리더십 프로그램에 활용하고 있다. 헌책도서관 서가 옆에는 여러 개의 침대가 놓여 있다. 책을 읽다가 졸리면 눈을 붙이라는 배려다.

업사이클 공간이자 작은 공연장으로 조성한 호롱궁을 보자. 쓸모가 없는 작은 돌산의 중앙을 파내고 폐자재를 활용해 만들었다. 벽을 장식한 모자이크는 모두 깨진 도자나 유리병 등으로 붙이고 바닥 장식재는 당구공, 볼링공과 핀, 몽골텐트 문살, 행사장에서 폐기한 송판 등을 재활용했다. 이곳은 도시재생사업 담당자들의 필수 견학코스가 됐다.
 

와룡 돌산에 길을 내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바위의 흙을 걷어낸 뒤 눈을 그려 넣고 맞은편 바위에 비늘을 새겼더니 누워 있는 거대한 용의 모습이 나타났다. ⓒ 황의봉

 
자연 지형을 이용한 볼거리도 많다. 와룡(臥龍, 엎드린 용)도 발상이 재미있다. 돌산에 길을 내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바위를 상하지 않게 하려고 호미로 흙을 걷어낸 뒤 눈을 그려 넣었더니 용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맞은 편 바위에 비늘을 새겼더니 200m가 넘는 거대한 와룡이 되었다.

마그마 캐년도 기발한 발상이 돋보인다. 수만 년 동안 바위에 생긴 균열을 따라 돌을 들어내면서 길을 만들었다. 여기서 나온 돌로 담을 쌓고, 안쪽으로는 빗물을 모아 연못을 만들고, 이 물을 끌어 올려 폭포를 만들었다. 그랜드캐니언을 본떠 마그마 캐년이라 부르고, 폭포는 '나이야 가라'로 작명을 했다.  

탐나라공화국에선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재료가 된다. 그리고 상상을 실제로 구현해낸다. '무에서 유가 나온다. 땅을 파다 보니 길(道)이 생겼다. 길에서 노자(老子)의 도덕경을 떠올렸다'고 한다. 노자예술관과 노자서원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노자예술관은 중국 낙양사범대학 노자연구원 양중유 원장의 주선으로 하남성 문화청으로부터 노자 도서 500권을 기증받아 문을 열었다. 하남성 문화청과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한중 국제 노자학술대회를 세 차례 개최하기도 했다.
 

노자예술관 '무에서 유가 나온다. 땅을 파다 보니 길이 생겼다. 길에서 노자의 도덕경을 떠올렸다.' 노자예술관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 황의봉

 
"남이섬이 처음부터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곳은 아니었고, 직원들에게 환경마인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돈이 없어서 버려지는 것들을 재활용한 겁니다. 그래서 '쓰레기는 쓸 애기다'라는 궤변 같은 구호도 내걸었지요. 돈이 없어 재활용한 것인데 그것이 습관이 된 것일 뿐입니다."

강우현 대표가 남이섬에서 습관이 되었다고 한 '재활용'은 탐나라공화국 건설 과정에서 대원칙으로 굳어졌다. 앞에서 언급한 하늘등대는 중문관광단지에 있었던 제주도 최초의 풍력발전기가 2019년 태풍으로 망가져 철거한 것을 기증받아 재활용했다. 풍력발전기의 몸통은 하늘등대로 재탄생했고, 날개는 소망이 이루어지는 바람탑으로 명명해 탐나라공화국 입구에 상징물로 세웠다. 주요 통로에 깔린 보도블록도 대부분 경기도 안산시와 서울 인사동 등 여러 지역에서 보도블록 교체 작업을 하면서 뜯어낸 것들을 기증받아 사용했다.

이곳에 심은 각종 나무의 절반은 기증받은 것이고, 핑크뮬리는 하동군에서 기증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만감류 비닐하우스에 사용한 파이프를 잘라서 그늘막을 만들었고, 돼지 죽통을 활용해 디자인이 돋보이는 전등을 만들어 달기도 하는 등 곳곳에 재활용의 지혜가 숨어 있다. 전체적으로 탐나라공화국 각종 시설의 70%는 기부를 받거나 재활용으로 이루어졌다.

강우현식 발상법
 

용암으로 되돌아간 현무암 현무암을 섭씨 1300도로 가열하면 본래의 용암 상태로 변하고, 이를 서서히 식히면 제주 특유의 기념품을 만들 수 있다. ⓒ 황의봉

 
건물이나 시설뿐 아니라 탐나라공화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행사에도 기발한 아이디어가 넘친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은 '수눌음(품앗이) 데이'로 제주도민에게 무료로 개방하되, 뭔가 나눌 수 있는 것을 가져오도록 하고 있다. 장난감, 책, 학용품, 스카프, 잡곡 등등을 가져와 물물교환도 하고, 텃밭에서 가꾼 농산물을 팔 수도 있다. 뭔가를 알리고 싶다면 홍보부스를 빌려준다. 이날 주민들은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제주 현무암 소재로 만든 작품을 야외무대에서 펼쳐 보인 현무암 디자인 패션쇼와, 각국 도예가를 초청해 현무암 돌가루와 점토를 혼합해 도자의 새로운 세계를 모색하는 국제 도자 워크숍도 열렸다. 중국 음악가 류홍쥔 선생의 소리 체험공간인 '류홍쥔 음악정원'에서는 공연은 물론 자연 재료를 이용한 악기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여기서 공연을 하고 싶다고 하면 무대를 그냥 빌려준다.

탐나라공화국을 둘러보고 나면 누구나 강우현식 발상법에 관심을 갖게 된다. 자유로운 상상력과 이를 현실로 구현해내는 과정이 깊은 인상을 준다. 강우현 대표가 펴낸 책을 보면 그의 독특한 발상법을 엿볼 수 있는 표현들이 자주 눈에 띈다.

'고정관념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려라' '안 되는 일을 생각하면 되는 일이 없다. 되는 일만 생각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있는 대로 써먹고 가진 걸로 승부한다' '낡은 집은 전시관, 빈터는 공연장' '팔리면 상품, 안 팔리면 작품' '마스터플랜은 60%만 짜라' '낮은 지식 높이 쓰고 없는 지식 섞어 쓴다' '왜 안 되는지를 가지고 시간 끌 필요 없다. 지금 되는 것부터 먼저 하라' '끝말잇기 하듯, 상상으로 상상을 낳고 상상을 만든다'.

남이섬 성공 신화를 써나가던 강우현 대표가 제주도로 온 것은 2014년. 남이섬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을 무렵 연간 입장객 300만 명을 훌쩍 웃돌았으니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리고 박수 칠 때 떠나온 것이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다시 새로운 상상 나라를 만들겠다는 '두 번째 건국'을 꿈꿨다. 제주도에 땅을 사고 개발을 시작했을 무렵의 상황을 들어보자.

"2009년에 어떤 분이 '여성 테마파크를 만들려고 땅을 사서 허가까지 받았는데, 투자를 받지 못해 포기하게 됐다'라며, '당신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인수하라'고 꼬드긴 겁니다. 제가 귀가 얇아 보지도 않은 채 덜컥 사고 말았지요. 3만 평을 26억에 샀는데, 막상 부지에 와보니 나무 한 그루 없고, 온통 돌투성이었어요. 물도 한 방울 안 나오고. 그래서 원금에 되팔아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팔리지 않는 겁니다.

그러다가 2013년 후반이 되니까 중국인들이 몰려오면서 제주 땅 매입 바람이 불더라고요. 이 땅도 50억을 줄 테니 팔라는 거예요. 5년 동안 못 판 땅인데 원금의 2배를 준다니까 얼마나 솔깃했겠습니까. 그런데 순간적으로 '이거 중국인에게 팔면 중국 땅 되는 것 아닌가?' '나는 물론 자식들까지도 쪽팔리는 짓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차라리 내가 해보자' 하는 쪽으로 마음먹고 남이섬 대표직을 내려놓은 겁니다. 그때 제가 환갑이 넘은 나이였어요. 주위 사람들이 모두 의아해했지요."


"돈보다 사람을 버는 게 중요하다"
 

도서관으로 들어온 바위언덕 건축과정에서 만난 거대한 암반을 그대로 살렸다. 30만 권의 장서는 헌책 페어를 통해 모으거나 기증을 받았다. ⓒ 황의봉

 
이렇게 시작한 제주에서의 새로운 상상 나라 만들기는 한마디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나 다름없었다. 지난해 4월 정식으로 문을 열기까지 무려 8년간이나 준비작업을 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강 대표는 정부 지원도 은행융자도 외부 투자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표현대로 '10년 동안 망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저는 돈벌이보다는 이 땅을 잘 살리자는 데에 관심이 있었으니까, 주민들에게 마음을 열었고 주민들도 저에게 마음을 열어준 것 같습니다. 이 땅에 심은 나무가 5만 주가 넘는데, 절반 이상은 지역주민들이 보태준 것이에요. 최근에도 신서란이라는 제주 고유의 풀을 갖다줘서 몇백 주 심었습니다. 신서란은 잎에서 실을 뽑을 수 있어서 선박용 밧줄 등을 만드는데, 이걸로 제주 한지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제가 지금 사는 집도 지역주민이 그냥 쓰라고 한 겁니다.

저희도 고마우니까 지역주민들에게 한 달에 하루는 무료 개방을 합니다. 그러면 주민들도 그냥 오지 않고 뭐라도 들고 옵니다. 이 안에서 텃밭을 가꾸는 '국민'도 있어요. 착공식 날도 마을 이장과 청년회장 딱 두 분만 초대했어요. 이분들이 저에겐 최고의 VIP였거든요. 저는 제주에 와서 텃세라는 걸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정부 지원이나 외부 투자 혹은 은행융자를 받으려면 계획서를 내야 하잖아요. 그런데 계획서를 내면 세월이 지나 상황이 바뀌더라도 그대로 해야만 해서 받지 않은 겁니다. 우리는 뭐든 좋은 구상이 떠오르면 '즉흥 즉행 속전속결'로 바로 해버리거든요. 간섭받고 허가받고 짜여진 계획대로 하려면 상상이 멈춘다는 게 저의 믿음입니다. 융자는 작년에야 처음으로 받았어요. 도로포장을 해야 하는데 재활용으로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죠. 돈이란 게 있으면 좋고 없으면 불편하고 쓰려면 모자라는 것이거든요. 돈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강우현 대표의 돈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니 그가 남이섬 시절 "돈이 없어 재활용하다가 그것이 습관이 된 것"이라고 한 말이 새삼 떠올랐다. 돈이 없으면 돈 안 드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게 강우현식 역발상 경영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난관에 봉착해도 긍정적 마인드로 유연하게 대처하는 자세 역시 오늘날 탐나라공화국을 일으킨 또 다른 원동력일 듯하다.

"처음 금악리 땅의 현장 상황을 제가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비는 많고 물은 없다. 찔레는 많고 나무는 없다. 돌은 많고 흙은 적다. 바람은 많고 그늘은 없다.' 그래서 '나무가 없으면 심고, 물이 없으면 빗물을 쓰고, 돌이 많으면 많이 쓰고, 흙이 부족하면 적게 쓴다'라는 원칙을 세웠지요. 또 '아무것도 없으니 아무것이나 해도 되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지금 탐나라공화국 부지에 80개의 연못이 있습니다. 마을에서 물을 끌어오려니 거리도 멀고 돈이 너무 많이 들겠고 해서 포기하고 빗물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구덩이를 파고 비닐을 깐 다음 화산송이를 뿌려 놓으니 물이 정화돼 썩지 않더라고요. 지금 물고기들도 살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많이 사용한 재료는 돌이고 그 다음이 재활용입니다. 저희는 마스터플랜 같은 건 없이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만들고 고쳐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탐나라공화국에 마스터 플랜은 없다고 하지만 강우현 대표가 그리는 미래상이 궁금하다.

"대부분 이런 사업을 하면 돈부터 벌려고 하지만 저는 돈보다 사람을 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여기를 개발하면서 바이오 투어리즘 즉, 생명 관광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의 여행지는 손님이, 여행자가 즐길 권리를 주장하는 곳이 아니라 의무감을 지니고 여행지를 함께 가꾸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은 꽃씨라도 가지고 와서 같이 뿌리고, 나무도 함께 심는 식으로 말입니다.

지역주민들이 나무를 갖다주고 일을 도와주시고 하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선생님 돌아가시면 이곳이 우리 유산이 되는 것 아닙니까. 우리 대신 가꿔줘서 고맙습니다, 하는 거예요. 저는 이곳을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7년 전에 탐나라공화국 국민들에게 부탁하는 유언을 새긴 비석을 세워 놓았어요. '이 땅을 잘 보존해라. 영원히 팔아먹지 말고'라는 내용이에요.

저는 이 탐나라공화국을 상상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상상 마당으로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나라를 만든 것까지는 제 역할이고, 뭔가 상상하는 바를 이루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지 와서 자유롭게 활용하라는 겁니다. 임대료도 안 받고 보증금도 안 받을 테니 말이죠. 기자님도 여기서 '오마이신문' 같은 언론사를 차려보세요."


탐나라공화국은 최근 제주대와 MOU를 체결해 앞으로 제주대 상상캠퍼스로도 활용하게 된다. 이제 본격적으로 나라 문을 연 지 1년여 밖에 안돼 아직은 제주 사람에게도 생소한 탐나라공화국의 상상력 혁명이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궁금하다. 강우현 대표의 두 번째 건국이 순항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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