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원탁회의선흘1리 주민들이 둘러앉아 아이디어를 내고, 토론하고, 투표로 결정하는 원탁회의가 생태관광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동백동산 습지센터
원탁회의를 통해 선흘리 주민들이 생태관광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면서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동백동산 주민 모니터링단을 꾸려 자신들이 이용했던 습지를 조사하고, 전문가들과 함께 식물들을 관찰해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펴냈다. '동백동산에서 습지와 마주하다', '나무와 마주하다', '풀꽃과 마주하다', '고사리와 마주하다' 등 생태도감이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왔다.
또 '꼬마 해설사'와 '삼촌 해설사'를 양성해 주민들 스스로가 동백동산 안내자로 나섰다. 어르신들이 자신의 삶을 그린 15권의 그림책을 발간하는가 하면, <선흘곶에 물이 어서시민 어떵 살아시코>, <선흘의 요리를 담다>, <선흘 기억저장소>와 같은 마을문고 책도 펴냈다. 이렇게 펴낸 책과 자료들은 생태관광 프로그램이나 학생들의 생태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동백동산 생태관광사업이 본격화하면서 가장 큰 변화는 인구가 늘어나고 분교였던 초등학교가 본교로 승격한 일이다. 김호선 팀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선흘초등학교가 1990년대 중반에 학생이 줄어 함덕초등학교 분교가 됐습니다. 가장 학생이 적었을 때는 12명까지 내려갔거든요. 저도 이 학교 졸업생이라 마음이 아팠지요. 한때는 교육 당국과 폐교 여부를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생태관광지로 떠오르면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겁니다. 학생들에게 방과후수업으로 생태체험 교육을 하게 되자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한 거예요.
2014년 건강생태학교로 지정되고 학생이 계속 늘어나자 2022년 3월에 다시 정식 초등학교로 승격했습니다. 작년 말 기준으로 정확히 102명입니다. 저희가 학교로 생태교육을 나가고 동백동산에서 생태 놀이 프로그램도 하니까 학부모들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매월 한차례 3시간씩 창체(창의적 체험활동) 수업으로 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동백나무 친구 찾기, 곤충도감 만들기, 나뭇잎 전시회에서 과자 따먹기 등등 학년별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또 습지탐험대도 운영하고 있고요. 어떤 아이들은 생태교육 하는 날만 기다린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인기가 많습니다.
이런 생태교육과 체험활동을 통해 어린이들의 생태 감수성이 발달하고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더라, 하는 소문이 학부모들 사이에 퍼진 것이지요. 제주도 다른 지역에서도 오고, 육지에서도 이주해오는 사람이 많아진 겁니다. 아이 교육 때문에 이곳에 온 사람 중 30% 정도는 아예 제주에 정착하겠다고 합니다. 작년 12월 말 기준으로 선흘1리 인구가 1009명이에요. 원탁회의 처음 시작했을 때는 600∼700명 수준이었습니다."

▲주말 장터동백동산 습지센터에서는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과 자체 개발 디자인한 제품을 팔고 있으며, 매월 셋째주 토·일요일에는 직거래 장터가 열린다.
동백동산 습지센터
선흘리 생태관광사업의 거점은 환경부와 제주도가 함께 만든 동백동산 습지센터다. 선흘리 주민들은 습지센터 설계단계에서부터 생태환경교육을 할 수 있는 시설뿐 아니라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 등을 판매할 장소를 마련토록 했다. 생태관광이 지역주민의 소득증대로도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실제로 주민들의 소득에 어떤 도움이 됐을까.
"어르신들이 겨우내 도토리 주워다가 가루를 만들어오면 습지센터에 마련한 선흘장터에서 팔아드립니다. 봄철 고사리를 비롯해 참깨 무말랭이 콩가루 등등 계절마다 나오는 것들을 모두 수매하고요. 양봉 농가에서는 꿀도 가져옵니다. 그리고 동백동산을 디자인에 활용해 에코백이나 손수건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동백기름이며 생태 그림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품목을 팔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동백동산의 가시나무 도토리로 만든 도토리 가루를 반죽하고 국수를 끓여 먹어보는 음식문화 체험 프로그램 같은 부대사업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모두 합치면 연간 1억3000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니까 주민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에서는 주민들이 가져오는 물품에 약간의 이윤을 붙여 판매하니까 조합에도 수익금이 발생합니다. 이 수익금은 주민복지에 사용하는데, 첫 번째로 한 일이 80세 이상 어르신들께 생신 선물을 드린 것이었어요. 엄청나게 좋아하시더라고요. 저희도 뿌듯하고요. 어르신 생신 선물 증정 행사는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겁니다.
원탁회의를 할 때 이런 일도 있었어요. 생태관광으로 수익금이 생기면 뭘 했으면 좋을까 하는 이야기가 나오자, 한 분이 마을에 노인복지시설 하나 마련해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을 모셔다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뭉클해지더라고요. 주민들이 원하는 게 이거였구나, 나도 늙으면 먼 데 가지 말고 여기서 같이 살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제주도, 질적관광으로 전환해야"

▲세계 습지의 날 행사2월 2일 세계 습지의 날을 맞아 진행한 동백동산 투어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먼물깍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황의봉
동백동산 생태관광은 전국적으로도 성공 사례로 꼽힌다. 동백동산 자체가 매력 있는 숲이고 볼거리도 많은 데다가 초등학생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참여하기에 적당한 각종 프로그램이 잘 짜여 있기 때문이다.
"동백동산의 가장 큰 특징은 이곳이 세계적으로도 인정하는 습지라는 점입니다. 습지 생태계는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제공합니다. 이곳에 무려 1500여 종의 동물과 식물이 살아가고 있어요. 팔색조, 비바리뱀, 제주고사리삼 등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이 16종이나 서식하고 있는 것도 이 지역이 생태계의 보고라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무엇보다도 생태를 관찰하고 교육하는 데는 최고의 장소라 할 수 있고, 따라서 생태관광의 최적지인 셈입니다.
저희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만 보아도 '눈 내리고 동백꽃 피다', '동백동산 물·숲·새', '동백동산 에코 파티, 이야기가 있는 숲', '먼물깍 습지! 생명을 쿰다' 등 동식물의 생태를 살펴볼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물론 울창한 상록수림 사이에 조성한 5㎞ 탐방로를 걷기만 해도 힐링이 되고, 4·3 당시 피난했던 굴이라든가 숯을 구었던 숯막, 용암언덕 등 볼거리도 산재해 있고요.
작년에 5만 9000여 명이 동백동산을 찾았는데, 학생들 체험학습으로 많이 오고 있고, 협동조합을 만들어 생태관광 사업을 하려는 지역에서도 벤치마킹하러 자주 옵니다. 환경교육 프로그램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살피기 위해 교육청이나 학교 선생님들도 많이 찾고 있어요. 동백동산이 대표적인 생태관광지로 알려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동백동산이 생태관광의 최적지로 소문이 나면서 그동안 난개발과 대량관광에 따른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아왔을 뿐 아니라, 관광수익이 지역주민에게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온 제주 관광의 대안적 모델로 주목받기도 했다. 생태관광의 최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김호선 팀장은 제주 관광산업의 방향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태·환경교육 프로그램동백동산의 철새와 텃새를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소리를 들으며 탐조하는 어린이들.
동백동산 습지센터
"제주 관광의 문제점은 저의 개인적 고민이기도 합니다. 동백동산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선흘리 인구가 늘어나서 좋기는 하지만,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기 위해선 풀어야 할 문제들이 많기 때문이죠. 이른바 오버투어리즘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관광 전문가도 초청해서 국제세미나를 열기도 했습니다.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인해 현지 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바르셀로나 사정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졌어요.
제주도를 찾는 많은 관광객은 결국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보러 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자연이 다 망가지고 나면 뭐 하러 제주에 오겠냐는 겁니다. 곶자왈 같은 천혜의 숲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건물들이 마구 들어선다면 제주의 장래는 어둡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제2공항을 지어 관광객을 더 많이 받아들이자는 발상은 위험하다고 봅니다. 전반적으로 개발에 대한 인허가 절차도 더욱 엄격해져야 할 것이고요.
대량관광의 부작용을 줄이는 방편으로 요즘 한라산 하루 탐방 인원을 제한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걸 더 확대해서 성산일출봉 같은 주요 관광지에도 입장객 총량제를 적용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환경부에 내기도 했습니다. 동백동산의 경우, 예를 들어 수학여행 버스가 10대씩 들어오겠다고 하면, 그런 대규모 인원은 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무조건 많은 사람을 유치하는 데서 벗어나 질적 관광으로 전환해야 할 때입니다."
김호선 팀장은 2022년 제주 곶자왈 공유화재단이 제정한 제1회 곶자왈 대상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곶자왈 보전을 위한 교육과 홍보활동에 헌신해 온 노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지난 2월 2일 세계 습지의 날을 맞아 동백동산에서도 습지 투어를 비롯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탐방객들을 인솔해 해설에 나선 김호선 팀장에게 동백동산 생태관광을 이끌면서 느낀 그동안의 소회를 물었다. 결론은 '행복'이었다.
"협동조합을 만드는 과정에서 갈등도 있었고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선흘 주민들이 힘을 합쳐 생태관광의 바람직한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현재 환경부에서 생태관광 마을로 지정한 곳이 제주도 내에 선흘1리 말고도 하례리, 저지리, 평대리로 점차 확대되고 있어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들고요.
선흘 주민들 사이에서도 처음엔 생태관광을 한다니까 우리 마을에 뭐 볼 게 있냐며 의구심을 보이던 분들이 계셨는데, 이제는 많이 달라지셨어요. 동백동산 같은 곳이 우리 미래세대에게 훼손하지 말고 그대로 물려줘야 할 소중한 자산이었구나 하는 인식을 다들 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민들이 직접 생태관광사업에 참여하면서 환경보존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이지요.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서 동백동산을 알리고 마을주민들과 함께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이 일이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성취감도 느꼈고 저의 자존감도 높아졌어요. 돌이켜 보면 거의 미친 것처럼 이 일에 푹 빠졌던 것 같아요. 집에서 쉬는 날에도 온통 여기 생각밖에 안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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