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24 07:07최종 업데이트 24.01.24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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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농부’ 윤순자 대표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환경오염을 방지하는 유기농을 살리기 위해서는 학교 급식에서 유기농 우선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황의봉

 
'귀한 농부' 윤순자 대표와의 인터뷰는 껍질째 먹는 감귤 이야기로 시작했다. 유기농으로 생산한 감귤은 껍질째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떡이나 전 등으로 만들어도 훌륭한 식재료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였다. 껍질 이야기를 꺼내자 직접 체험해 보라며 감귤을 내밀었다.

껍질째 먹는 감귤은 신맛과 단맛이 적당히 어우러져 맛있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도 식감이 훌륭했다. 사각사각 경쾌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윤 대표의 껍질 예찬론이 이어졌다.


"유기농 감귤은 퇴비의 힘으로 자연의 양분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맛이 순하고 껍질이 두껍지 않아요. 이 귤껍질을 썰어서 차를 끓여 마시는 것은 물론이고, 전으로 부쳐 먹으면 노릇노릇하니 달콤하고 향도 좋고 정말 맛이 있습니다. 말린 귤껍질을 가루를 내서 송편도 만들고, 가래떡으로 만들 수도 있고요. 멸치볶음 만들 때도 이걸 넣으면 비린내를 없애주기도 합니다.

심지어 한의원에서도 유기농 감귤 껍질을 사서 약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1㎏에 2만 원이 넘어요. 농약을 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지요.

감귤뿐 아니라 모든 농산물은 통째로 먹는 게 가장 좋아요. 맛과 양분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거든요. 백미보다 현미가 몸에 좋듯이 통째로 섭취했을 때 장기도 튼튼해지고 우리 몸의 조화를 깨뜨리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저희 농장에서 생산하는 모든 농산물은 다 껍질째 혹은 통째 먹으라고 권합니다."


'귀한 농부'는 윤순자 대표를 상징하는 브랜드다. 친환경제주귀한농부영농조합법인 대표이자 다음카페 '친환경 제주 귀한 농부'의 카페지기이다 보니 귀한 농부는 그의 이름이자, 농장이고, 영농조합법인을 가리키기도 한다.

윤순자 대표는 서귀포시 도순동의 감귤농장 1만여 평을 비롯해 모두 3만여 평의 땅에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노지감귤과 한라봉 레드향 천혜향 등 만감류, 로즈마리 스피아민트와 같은 허브류, 당근 콜라비 밤호박 브로콜리에 이르기까지 20여 종의 농산물이 그의 밭에서 나온다.

2003년 제주도에 정착한 이래 유기농이 아닌 농사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는 '귀한 농부'.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면 힘도 덜 들고 경제적으로도 훨씬 유리한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유기농을 신앙처럼 여기게 된 사연이 궁금하다. 무엇이 윤순자 대표를 유기농의 길로 이끌었을까.

"20대 시절, 우연히 종로5가를 지나다가 삼양사 소작답 투쟁을 하러 올라온 전북 고창 농민들과 전주 가톨릭농민회 사람들을 만나게 됐어요. 그게 인연이 돼 농민회 일을 하던 남편도 만났지요. 그 후 결혼하고 전주로 내려가 밭농사와 양봉을 하면서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하게 됐죠. 그러던 중 7박 8일간 열린 야마기시 농법 특별 연찬회에서 '야마기시'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야마기시는 지금은 돌아가신 일본의 농부로, 무소유를 주장하신 분입니다. 단지 물질만 소유하지 않는 게 아니고 생각과 의식까지도 소유하지 않는 무아집(無我執)을 추구했어요. 이분은 특히 양계를 하면서 농사의 지혜를 터득하셨어요. 한번은 태풍이 와서 농작물이 다 쓰러졌다고 합니다. 어떤 벼농사를 하는 곳엘 갔는데, 하나도 쓰러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벼 주인에게 물어보니 작물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토대를 튼튼하게 하는 농법을 쓰고 있더라는 겁니다. 이때 농사의 기본은 토대를 튼튼히 만드는 것이라는 원리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경기도 화성에 야마기시생활실현지라는 공동체 마을이 있습니다. 제 가족이 1993년에 야마기시 공동체에 들어가서 7년을 살다가 나왔어요. 그곳에서 농사일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유기농이라고 하지 않고 순환농법이라고 했어요. 밭에서 나는 것을 사람이나 동물이 먹고 배출하면, 다시 이걸 퇴비나 거름으로 밭에 되돌려준다는 의미죠. 유기적인 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유기농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요."


"서귀포에서 1만 평 빌려 2004년부터 감귤 농사 시작"
 

방송팀 방문 '귀한 농부' 농장을 찾은 카페 회원들과 방송국 촬영팀이 만나 함께 어울리고 있다. 맨 오른쪽이 방송인 최주봉씨. ⓒ 윤순자

 
가톨릭농민회와 야마기시 공동체 생활을 통해 농촌 현장과 유기농법을 체험한 윤순자 대표는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야마기시 공동체를 나온 후에는 명동성당에서 직원으로 근무하게 됐어요. 강우일 주교님이 주임신부로 계셨던 우리농촌 살리기 운동본부에서 조직과 교육을 담당했습니다. 그 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로 가 에미서리(Emissaries) 영성 공동체로 들어갔지요. 에너지를 조율하고 영성을 채우며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으로, 개인의 수련에 초점을 두는 공동체였어요. 여기서 한 1년 6개월을 살았지요."

야마기시 공동체에서 유기농의 기본을 익혔다면 에미서리에서는 생태 영성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체화한 셈이다. 이러한 경험이 오늘날 '귀한 농부'의 길을 걷게 한 준비과정이었을까. 윤 대표는 미국에서 귀국 후 전혀 예상치 못한 일로 제주도로 와서 농부가 된다.

"에미서리 공동체에 있을 때인데, 비자가 잘못돼 체류 연장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돌아와야 했는데 마침 대학 때 지도교수님이 은퇴하시고 제주에 와 계셨어요. 그분이 집도 넓고 하니까 와서 있으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가방 2개만 달랑 들고 아이 둘을 데리고 제주로 오게 됐어요.

2003년 제주에 왔을 때 막 유기농이 태동하고 있었어요. 제주 유기농의 원조 격인 이영민 선생께서 유용한 미생물을 이용한 EM 농법을 시작하셨고, 친환경 농산물이 제도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지요. 제주에 와서 처음엔 농사지을 생각이 없었죠. 땅도 없었고 아무런 인프라가 없었으니까요. 야마기시 공동체에서 나온 이래 한 5년 정도는 농사도 짓지 않았고요.

당시 아는 선배가 제주에서 유기농 영농조합법인을 하나 꾸렸는데, 저보고 사무국장을 맡아달라는 겁니다. 제가 우리농촌 살리기 운동본부 일을 하면서 유기농산물과 식자재 다루는 일을 했으니까요. 이렇게 영농조합 일을 밤낮없이 하다 보니까 언제부터인가 저도 직접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서귀포에서 1만 평의 땅을 빌려 2004년부터 감귤 농사를 처음 시작하게 됐습니다."


제주도에서 본격적인 농부의 길을 걷게 된 윤순자 대표는 유기농이 아닌 농사는 경험이 없었고, 농약을 칠 줄도 몰랐으니 당연히 유기농을 택했다. 당시의 각오는 어땠을까.

"야마기시 공동체나 가톨릭농민회에서 어떤 농법이 하느님의 뜻으로 보아도 좋고, 또 사람에게도 좋은 것인지에 관해 공부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생명농법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사람과 땅과 작물이 함께 공생하는, 서로가 살려주는 농법이죠. 이런 원리를 하나의 이치로 배워왔기 때문에 제가 농사를 짓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제대로 한번 구현해보고 싶었던 것이지요."

이제 귀한 농부의 유기농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들어볼 차례다. 윤 대표는 유기농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무농약과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유기농은 물론 '무농약'도 포괄해서 '친환경'이라고 하는데, 농가에선 유기농보다는 무농약을 훨씬 많이 하고 있죠. 그런데 이게 농법이 완전히 다릅니다. 무농약은 농약을 안 칠 뿐이지 화학비료는 칠 수가 있죠. 이건 엄청난 차이입니다.

유기농은 농약을 쓰지 않는 것은 물론, 화학비료나 항생제가 들어간 동물성 퇴비를 쓸 수가 없어요. 소나 닭을 기르는 축사에서 나오는 부산물에는 어마어마한 항생제들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동물성 퇴비를 줘서 기른 농산물을 먹으면 우리 인체에도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 무농약은 농약만 안 칠 뿐 이런 동물성 비료나 화학비료를 쓰거든요."


"점점 무농약 많아지고 유기농 쪼그라들어 유통체계 왜곡"

윤 대표의 말을 들으면 '유기농'과 '무농약'은 모두 '친환경'으로 분류하므로 비슷해 보이지만, 매우 큰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무농약이 유기농보다 더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농법에 어떤 관련성이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초창기에는 무농약은 유기농으로 가기 위한 농법이었어요. 지향점이 유기농이었고, 무농약은 그리로 가기 위한 중간 과정이었을 뿐입니다. 유기농 인증을 받으려면 5년간 검증을 통과해야 합니다. 첫해에 농약을 안 쓰고, 화학비료를 3분의 1만 사용하면 무농약 인증이 나옵니다. 이후 3년을 무농약, 무화학비료로 하면 5년째에 유기농 인증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14~15년 전부터 지자체들에서 친환경 무상급식 정책을 확대하면서 유기농 농산물이 모자라니까 무농약을 받아들인 것이에요. 이때부터 무농약도 친환경이라고 해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반면, 오히려 유기농을 아예 안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농산물을 사들여 학교에 넘기는 중간 유통업자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무농약 농산물을 공급하면 이윤이 더 크니까요. 또 유기농이 모양도 안 이쁘고 하니까 아이들도 꺼리는 경향이 있었고요.

외국에서는 오가닉(organic)이라고 하면 무농약은 해당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무농약이 유기농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었으나 이게 변질해 그냥 유기농 따로 무농약 따로 장르가 설정돼 버린 겁니다. 일반 소비자들도 '친환경'이라고 하니까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어요. 마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처럼 점점 무농약은 많아지고 유기농은 쪼그라들어 유통체계가 왜곡돼 버린 것입니다."


윤순자 대표는 유기농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퇴비를 들고 있다. 화학비료나 동물성 비료를 대신해서 땅과 작물에 이로운 유기농 퇴비를 잘 만들어 뿌려주는 게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라는 것이다. 그가 실제로 활용하는 유기농 퇴비의 사례를 들어보자.

"제가 하는 유기농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방식으로 퇴비를 직접 만들어 쓴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청귤청을 담가서 청귤 엑기스를 먹는 것은 물론이고 이걸 작물에 액비로 주기도 합니다. 또 청귤 엑기스 외에 찌꺼기가 나오는데, 이걸로 퇴비를 만듭니다. 청귤청을 만들 때 유기농 설탕이 들어가므로 이 찌꺼기가 발효하는데 매우 용이합니다.

또 밭에서 나는 여러 가지 부산물들, 예를 들어 상품성이 떨어지는 호박이나 호박잎, 당근 등을 청귤 찌꺼기와 함께 퇴비 구덩이에 집어넣고, 토착 미생물을 배양해 함께 섞어주는 겁니다. EM을 섞어주기도 하고요. 이렇게 형편에 맞게 퇴비를 만들어 충분히 주면 농약 없이도 병해를 이겨낼 힘이 생깁니다.

바다에서 나오는 것들도 훌륭한 식물성 퇴비가 됩니다. 태풍이 지나간 뒤 바다에 가면 감태가 어마어마하게 몰려와 있어요. 이걸 말려서 가져다가 그대로 밭에 주거나, 가루로 만들어 찌꺼기를 모아 놓은 퇴비장에 뿌리기도 합니다. 감태뿐 아니라 미역 다시마 쌀겨 등도 모두 훌륭한 식물성 퇴비로 만들어 씁니다."


농사를 지으려면 비료도 중요하지만, 병충해를 방지하거나 구제하기 위해 농약을 많이 쓰고 있다. 윤 대표는 어떤 방법으로 병충해에 대비할까.

"저는 농사를 지을 때 약 치는 것을 배우지 못했어요. 그래서 좋은 방법이 있다면 시도를 해보고 하는데요. 경험 많은 어르신들이 어떤 게 효과가 있더라, 하면 그걸 따라 해봅니다. 예를 들어 자리공이라는 식물이 벌레 퇴치에 최고라는 말을 듣고는 들에 나가 자리공을 꺾어옵니다. 그리고는 이걸 분쇄해 끓이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써보고 하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지요.

자리공도 그렇고 천남성 같은 식물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독성을 많이 품고 있어요. 이걸 잘 활용하면 일반 화학농약이 아닌 천연의 농약이 되는 셈이죠. 저희 농법은 있는 것을 없애자는 게 아니라 해충이 생겨도 견뎌낼 수 있게 하자는 게 기본입니다. 병충해가 발생했을 때 이겨낼 수 있도록 땅심을 굳게 해주자는 것이고, 그 핵심은 퇴비를 많이 주는 겁니다."


"농산물 팔려고 서울 왔다 갔다... 안타까운 항공사 최우수회원"
 

풀과의 전쟁 유기농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직접 풀을 제거해야 한다. 비가 내린 뒤 풀이 무성해진 당근밭에 인력을 동원해 풀 매기 작업을 하고 있다. ⓒ 윤순자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누구나 풀이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를 실감하기 마련이다. 유기농법을 채택하면 이 '풀과의 전쟁'이 말 그대로 전쟁이 된다. 제초제를 뿌려 손쉽게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 대표의 풀과의 전쟁 이야기다.

"밭에 무성한 풀을 제거하기 위해 제초제를 많이 쓰지만, 저희는 다 예초기로 깎아냅니다. 비옥한 땅이다 보니 잡초도 엄청 무성하게 잘 자라납니다. 이 풀들을 예초기로 깎으려면 5명이 3~4일을 해야 합니다. 저희 밭들을 한 바퀴 풀을 베면서 돌고 오면 그사이에 풀들이 많이 자라 다시 해야 할 정도입니다. 한 해에 최소 6~7번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지난해에 비가 많이 왔잖아요. 당근밭에 풀이 엄청나게 자라 완전히 융단이 됐어요. 당근과 풀이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하는 수 없어 사람을 사서 풀을 제거했는데 1300만 원이 들었어요. 제초제로 하면 5만 원이면 충분한데 말이죠. 이렇게 돈을 들였다니까 저보고 제정신 이냐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1만 원 안팎 하는 제초제 10병이면 여기 농장에 다 치고도 남아요. 그렇지만 제초제는 사용하면 안 됩니다. 유기농 인증을 받으려면 5년이 걸린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만약 제초제를 쓰게 되면 다시 인증을 받기까지 5년이 걸리니까 치고 싶어도 못 치는 거예요. 유기농을 포기하지 않는 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겁니다.

반면에 무농약 농법을 한다면, 비가 많이 오거나 해서 병해가 발생하면 올해는 친환경 농사 안 하겠다, 하고 손들어버립니다. 그리고 약을 치고 생산물을 일반 농산물로 파는 겁니다. 실패할 일이 없는 거지요. 다음 해에 다시 무농약을 하면 되니까요."


이렇게 힘들여 유기농법으로 생산한 농산물은 소비자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객관적 자료로 보면 친환경으로 재배하고, 특히 풀이 함께 자라는 밭에서 나는 감귤은 일반 감귤보다 당도가 2∼3브릭스 정도 더 높습니다. 일반 감귤은 9∼10브릭스가 되면 출하를 하는데, 저희가 수확해서 당도를 측정해 보면 12∼13브릭스는 무난히 넘더라고요. 일반 감귤은 한해가 맛있으면 다음 해에는 맛이 없다는 해거리 현상이 있다고들 하는데, 저희 것은 그런 현상도 없어요.

반면에 유기농 감귤은 표면이 매끄럽지 않고 모양도 못생긴 편이어서 사람들이 꺼린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일반 감귤의 경우, 표면에 착색제나 왁스 같은 걸 발라서 색깔도 아름답고 매끈하게 만드는 것과 비교하면 더욱 외양에 차이가 납니다. 아무리 영양가가 높고 건강에 좋다고 해도 못생긴 유기농 감귤보다는 보기에 좋은 일반 감귤을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많은 게 현실이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아마 전체 감귤 중에서는 유기농 감귤은 5% 미만일 겁니다.

감귤뿐 아니라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농산물은 농약이나 항생제 등에 오염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고유의 영양소를 온전하게 섭취할 수 있어요. 질병 예방과 치유에 효과를 발휘하기도 하고요. 저희 귀한 농부 카페 회원들 중에는 암 환자도 많습니다. 유기농으로 재배한 당근 양배추 콜라비 비트 등을 열심히 구입해 드십니다. 요즘 말하는 슈퍼푸드인 셈이죠. 제가 20여 가지가 넘는 다품종 소량 생산을 고수하는 것은 이런 분들이 꾸준히 찾기 때문입니다."

 

카페 회원들 카페 '친환경제주귀한농부'의 1만1300여명의 회원들이 유기농을 지지하고 소비해주는 든든한 후원자들이다. 카페 회원들이 감귤 수확 체험을 위해 비닐하우스를 찾았다. ⓒ 윤순자

  
윤순자 대표는 유기농산물이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판매'라고 말한다. 소비자가 그 가치를 잘 몰라주는 데다가 값도 일반 농산물에 비해 비싼 편이어서 모든 유기농 농부들의 최대 난제라는 것이다. 그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카페라든지 SNS를 이용해 판매에 큰 도움을 받고 있어요. 저희 카페 회원들이 1만1000여 명입니다. 이 카페에 들어오신 분들은 거의 저희 유기농을 찾는다고 보면 됩니다. 저희가 수확을 할 때마다 게시글을 올려놓으면 그걸 보고 꾸준히 주문해 주시죠. 급할 때 가장 큰 도움을 주는 분들이 카페 회원들입니다.

그러나 이분들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제가 농사지은 것뿐 아니라 우리 영농조합원이 의뢰한 것까지 팔고 있거든요. 한살림처럼 규모가 큰 유기농 전문 판매점은 이미 고정적으로 계약한 법인들이 있어서 진입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저희는 일반 개인 소비자들과 직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바로마켓이라고 연중무휴로 화요일 수요일마다 직거래 장터가 열려요. 또 마르쉐 농부시장이라고 한 달에 4~5번 오픈 마켓이 열립니다. 장소는 계속 바뀌고요. 여기에 가서 저희 유기농산물을 직접 팝니다.

판매할 곳이 마땅치 않으니 수시로 서울에 가서 장터를 기웃거려야 합니다. 요즘 감귤 수확철이 가장 바쁜 시기인데, 농산물 팔려고 서울 왔다 갔다 하고 있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죠. 제가 항공사 최우수회원입니다."


"유기농 실천한다는 건 일종의 먹거리 혁명"
 

초등학생 감귤 체험 '귀한 농부' 농장에서는 카페회원, 농민, 회사원, 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와 체험행사를 한다. 사진은 제주 조천읍 선흘초등학교 어린이들이 귤을 직접 따서 먹어보는 체험활동 모습 ⓒ 윤순자

    
이야기가 유기농산물 판로에 이르자 윤순자 대표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유기농을 살릴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당국이 손 놓고 있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유기농을 살려야 땅도 살리고 사람도 살릴 수 있다며 강조하는 그의 근본적인 해법은 무엇일까.

"학교 급식에서 유기농 우선제를 하면 됩니다. 지금 무상급식을 하고 있잖아요. 지자체 예산으로 유기농산물을 먼저 아이들에게 먹이라는 겁니다. 땅을 살리고, 국민건강을 살릴 수 있잖아요. 친환경 농산물 시장에서 유기농의 비중은 30% 수준이에요. 학교 급식에서 유기농을 먼저 사용하고 모자랄 때 무농약 농산물을 쓰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무농약으로 하던 농부들도 유기농으로 전환하려고 하겠지요.

땅 살리는 문제는 정말 심각해요. 지금 제주도 바닷속은 백화현상으로 해조류가 사라지고 있어요. 한림 같은 곳은 토양이 오염돼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할 수 없잖아요. 이게 다 화학비료, 동물성 비료를 사정없이 뿌리고 축사에서 제대로 정화하지 않은 채 오물을 흘려보내서 생긴 현상입니다. 유기농업과 유기축산을 해서 땅과 바다를 살려야 합니다.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데 있어 유기농산물 우선제보다 더 구체적인 정책은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환경운동 역사도 꽤 연륜이 쌓였고, 유기농산물에 대한 인식도 향상됐을 것 같은데, 윤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가 실제 소비자들과 만나면서 느끼는 점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소비자 교육이 안 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농산물 표시를 보면 유기농 무농약 GAP(농산물우수관리) 등이 있는데, 많은 분이 GAP가 가장 좋은 건 줄 알아요. 이게 일반 농산물이거든요. 장터에 만난 사람들에게 유기농산물의 장점을 아무리 설명해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해요. 그냥 커 보이는 게 좋은 줄만 압니다. 유기농 과일을 고르면서 왜 이렇게 작냐, 모양이 안 예쁘냐, 이런 말만 합니다. 유기농산물을 구입하는 한살림 회원들도 정확한 개념을 잘 모릅니다. 제가 교육하면서 질문도 해보고 퀴즈를 내기도 하거든요. 친환경 농산물 개념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어요."
 

제주흥사단 활동 고교시절부터 흥사단에 가입해 활동해온 윤순자 대표는 제주에서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제주도 문화유산 답사에 나선 제주흥사단 ⓒ 윤순자

  
고교생 때 흥사단 활동을 시작한 이래 여성운동 농민운동에도 관심을 쏟아온 윤순자 대표는 제주도에서도 다양한 시민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가 요즘 관심 갖고 하는 일이 궁금하다.

"환경운동연합에도 함께하고 있고, 얼마 전에는 기후평화행진에도 참여했어요. 저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들에 대해서 관심과 애정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희 농장에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농민 학생 회사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와 귤도 따고 단호박도 따보고, 그걸로 요리도 해 먹고, 허브로 스머지스틱도 만들어 보고 합니다. 가끔 콘서트를 열기도 하고요."

윤순자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 사회에서 유기농은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비자들의 인식도 낮고 판로도 마땅치 않아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무엇보다도 유기농은 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존하지 않으니 농부의 손길이 많이 갈 수밖에 없다. 온몸에 진드기에 물린 상처를 안고 산다는 그는 어떤 소망을 갖고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제가 거의 3만 평이나 되는 넓은 농장을 가족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 3명과 함께 일하면서 연간 몇천만 원 수익을 낸다는 건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거든요. 일반 관행농으로 하는 분들은 시설하우스 천 평에서도 저희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내고 있어요. 저희는 그분들에 비하면 사실상 마이너스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내 땅에서 내가 노동력 들여서 하니까 그래도 먹고는 살지요.

저는 땅에서 돈을 뽑아낸다는 개념보다는, 이 땅에서 사람이나 동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좋은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을 지켜내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기 위해 무언가 신성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늘 스스로 질문을 하곤 합니다.

유기농을 실천한다는 건 일종의 먹거리 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하게 먹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라고 믿고 있거든요. 이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만은 없어요. 다만 유기농을 하는 사람들이 이 일을 지속해 나갈 수 있도록 사회적 시스템이 마련됐으면 하는 게 저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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