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교토에서 온 편지> 스틸컷
판씨네마
넷플릭스에 올라온 영화 <교토에서 온 편지>(이하 <교토에서>)를 봤다. 이 영화가 좋다는 말은 들었는데 극장에 찾아가 보지는 못했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는 일본영화라고 착각했는데, 한국영화다. 넷플릭스에서 이런 영화도 보게 되니, 그건 좋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스트리밍 서비스에 올라오지만, 솔직히 볼거리는 많지 않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무슨 얘기인가? 언뜻 보기에는 <교토에서>는 가족의 이야기,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다.
엄마 화자(차미경)는 부산 영도에서만 수십 년을 살아왔다. 그녀에게는 세 딸이 있다. 서울에서 방송 작가로 일하는 혜영(한선화), 부산의 회사에서 일하는 언니 혜진(한채아), 아이돌을 꿈꾸는 동생 혜주(송지현). 이들은 아버지의 제사를 계기로 만나고 각자의 생각, 욕망을 드러낸다.
이런 부류의 영화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엄마는 딸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딸들은 각자의 길을 간다. 누군가는 집을 떠나고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온다.
식민주의의 상처를 치유하는 관계
내가 주목한 건 제목 '교토에서 온 편지'와 관련된 화자의 숨은 사연이다. 세 딸에게 화자가 엄마이듯이, 화자에게도 엄마가 있었다. 화자는 조선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뒀다. 영화에서 명확히 그 이유가 나오지는 않지만, 화자와 그녀의 아버지는 일본인 어머니를 일본 교토에 남겨둔 채 영도로 돌아왔다.
그 뒤에 화자는 엄마를 한 번도 보지 못한다. 엄마가 보낸 편지만 드문드문 받는다. 화자의 나이를 짐작해 보면 화자의 아버지가 일본에 건너간 건 일제강점기의 강제징용과 관련이 될 듯하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에서 혹은 한국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이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 일이 적지 않았다. 통상적인 국사 교과서에서는 다루지 않는 내용이다.
우연히 읽게 된 역사학자 박찬승 한양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해방 직후 남한 지역에는 약 27만, 북한 지역에는 50만 명 정도의 일본인이 있었다. 만주에서 내려온 일본인 피난민도 약 12만 명이 있었다. 합해서 90만 명 정도의 일본인이 한반도에 남아 있었다. 해방 이후 1945년 말 남한의 일본인은 2만 8000명으로 줄었다. 1947년에 이르러 일본인들은 거의 모두 일본으로 돌아갔다. 미군정에서는 한국인과 결혼한 일본인 여성은 한국에 남을 수 있도록 했다. 한국인 남편들이 일본인 아내와 이혼하는 사례가 계속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돌아가는 일본인 여성들을 위한 조치가 이뤄졌다.
1948년 가을 남한에는 일본인 여성 2000여 명이 남아 있다가, 1949년에 1000여 명이 돌아갔다. 한국인 여성과 결혼한 일본인 남성도 일부 남아 있었다. 그 이후에도 일본인 여성들의 귀국은 계속 이뤄졌다. 이런 양상과 비슷하게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갔던 조선인 남성이 일본 여성을 만나 가정을 이루는 일도 있었다.
<교토에서>의 화자가 그런 사례다. 화자는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돌아온 뒤 자신의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는 걸 숨기고 살았다. 왜? 일본인의 피가 있다고 손가락질당할까 두려워서다. 영화는 그걸 이해해 주는 화자의 친구 숙자(최현정)와 화자가 맺어온 오랜 우정이 그려지는데, 나는 그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사람을 살려주는 건 작은 관계다.
한국과 일본의 국가 관계 문제와는 별개로 식민주의는 보통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어떻게든 사람들은 그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하려고 한다. 화자가 수십 년 동안 잊고 지냈던 일본인 엄마를 찾아 교토를 찾아가듯이. 화자에게 보낸 어머니의 편지는 뭉클하다. 그 편지에는 딸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마음과 함께 시대의 상처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운 하나코에게, 날이 상당히 추워져서 걱정이다. 눈이 많이 오지만 하나코는 눈 오는 걸 좋아해서 걱정되면서도 마음이 놓인다. 거기서도 온천을 즐길 수 있는지 궁금하구나. 보드라운 하나코의 살결이 그립고 우유 같은 하나코의 냄새가 그립다."
교토에서 뒤늦게 화자는 "오카상(엄마)"을 길게 부른다.
우리가 몰랐던 착잡한 진실을 알려주는 영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