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2월 24일 토요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컬럼비아의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박람회장에서 열린 예비선거 전야 파티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견해를 이렇게 추론한다. 폭군의 통치가 작동하려면 폭군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동조와 묵인을 끌어내야 한다. 폭군은 조력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셰익스피어 시대보다 훨씬 복잡한 국내외 관계가 작동하는 우리 시대에는 그런 조력자는 국내만이 아니라 국외에서도 찾아야 한다. 이런 조력자들이 폭군을 도우면 영국이든 어떤 나라든 패망에 처한다.
그린블랫은 <리처드 3세>를 분석하면서 독재의 조력자를 여섯 그룹으로 나눈다. 역시 우리 시대에도 발견하는 모습이다. 첫 번째 그룹은 리처드에게 진짜로 속은 이들이다. 리처드 3세의 주장을 정당하다고 여기고, 약속을 믿었고, 리처드 3세의 감정 표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따지지 않겠어. 그러면 나는 그 의미로부터 책임이 없게 될 테니까." (<리처드 3세>, 1막 4장) 이런 무책임과 수수방관하는 태도가 독재자의 횡포를 도와준다.
두 번째 조력자는 리처드가 행사하는 괴롭힘과 위협 앞에서 겁을 먹고 무기력해진 이들이다. 리처드가 미친 듯이 위협하자 저항도 점점 시들해진다. 세 번째 그룹은 리처드가 사실은 사악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리처드가 병적인 거짓말쟁이고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지만, 그런 사례를 애써 잊는다.
네 번째 조력자는 리처드가 형편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국가 운영은 굴러간다고 믿는다. 다섯 번째 그룹은 가장 음흉한 조력자인데, 리처드가 권좌에 오르면 자신들도 이익을 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적극적으로 돕는다. 여섯 번째 그룹은 리처드의 명령을 아무 생각 없이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권력의 명령을 이행하면서 사소한 떡고물이라도 챙기려 한다.
<맥베스>는 좀 더 심층적으로 독재자의 감춰진 불안감을 파고든다. 셰익스피어는 심리적 불안감과 폭군다운 행동 사이의 관계를 탐색한다. 독재자의 불안감의 원인은 남자다움을 증명하려는 욕구, 성적 불능에 대한 두려움, 자신이 충분히 강한 남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우려, 실패에 대한 공포 등이다. 이런 불안감을 억누르려고 나타나는 반작용이 남을 괴롭히기, 여성 혐오증, 잔인한 폭력 등이다.
<코리올라누스>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발견한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권력자가 보여주는 유아적 나르시시즘, 불안정함, 잔인함을 만난다. 어린아이를 성숙한 성인으로 키워내야 하는 성인이 처음부터 폭군 주위에 없었다. 설령 있다고 해도 아이의 나쁜 성질을 더욱 부추기는 쪽으로 키웠다. 폭군은 정신분석에 따르면 심리적 유아 상태에 머물러 있다.
셰익스피어는 폭군과 추종자들은 결국에는 실패한다고 보았다. <리어왕>이 보여주듯이 그들 자신의 사악함, 어리석음과 민중의 인간적 감정에 의해 파멸한다. 셰익스피어가 보기에 난세를 바로 잡는 힘은 평범한 시민의 정치적 행동에서 나온다.
셰익스피어는 사람들의 세세한 움직임을 포착하고 자세히 묘사한다. 셰익스피어의 드라마에서 보통 사람들은 독재자를 지지하는 함성을 외쳐 달라고 재촉받을 때 침묵한다. <리어왕>처럼 사악한 주인이 죄수를 고문할 때 그 악랄함에 저항하는 하인도 있다. 경제적 정의를 요구하는 배고픈 시민들도 있다. "불을 피우려는 것은 이단자이지 그 안에서 타는 여자가 아닙니다."(<겨울이야기> 2막 3장)
독재의 효과는 권위의 전반적 구조를 뒤집는다. 적법성은 더는 권력에 있지 않다. 오히려 국가 폭력의 희생자, "타는 여자"에게 있다. 셰익스피어가 다룬 왕정 국가에서조차도, 특히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는 사람들이 한 사람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길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 공학만으로는 계산하기 어려운 요소가 작용하여 브루투스나 맥베스 같은 이상주의자나 독재자는 사태의 진행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
독재 체제를 묘사한 셰익스피어 드라마는 공동체의 소생과 합법적 질서의 회복을 기대하면서 마무리된다. 세계 곳곳에서 목격하는 우리 시대의 폭군들이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길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고전이 말해주는 조언에 귀 기울이길 바란다.
폭군 - 셰익스피어에게 배우는 권력의 원리
스티븐 그린블랫 (지은이), 이종인 (옮긴이), 비잉(Being)(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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