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진씨와 세연씨는 '국내 첫 임신 레즈비언 부부'이자 '국내 첫 출산 레즈비언 부부'다.
연합뉴스
유리 천장, 성별 임금격차, 경력 단절 등 여성들만 차별적으로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지난 기사에서도 언급했다. 이들은 여성들의 출산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들이다. 그렇다면 더욱 적극적 차원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아이를 낳는 것일까. 어떤 마음이 있어야 아이를 '낳을 결심'에까지 이르는 것일까.
힌트는 지난해 8월, 출산 소식을 알려온 레즈비언 부부에게서 얻을 수 있다. 국내 최초로 레즈비언 부부로서 아기를 출산한 김규진‧김세연 씨. 규진씨는 임신 당시 <한겨레> 인터뷰에서 임신을 결정하는 데 가장 지대했던 요인으로 '행복감'을 꼽았다. "불행은 내 대에서 끊어야 한다"고 수많은 비출산인처럼 생각했다던 그는 자신이 선택한 가정에서 행복감을 느꼈다. 그래서 "내가 행복하니, 자녀도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아이를 낳을 결심이란 이렇듯 지금의 내가 행복하고 이 행복이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믿음에서 온다. 행복을 결정짓는 중대한 요소 중의 하나는 가족이다. 무릇 아이도 가족이라는 토양 위에서 자란다. 그러나 한국에서 법이 포괄하는 가족의 범위는 혼인‧혈연‧입양이 전부다. 김씨 부부처럼 동성의 부부나 혹은 결혼은 원치 않으나 아이는 갖고 싶은 동성‧이성의 커플 또는 친구, 같이 살지는 않더라도 서로를 돌보는 느슨한 네트워크 등은 현존하지만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여성가족부는 2021년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을 수립하며 법률혼‧혼인 중심으로 한정된 가족 개념을 넘어 다양한 가족 구성을 인정하고,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금지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여가부는 가족의 법적 정의를 삭제하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에 대해 '원안 유지'로 입장을 선회했다.
이는 실존하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법이 따라잡지 못하는 행태다. 비친족 가구는 2022년에 50만 가구를 돌파했으며, 가구원 수만 109만 명에 이른다. 그새 사람들의 인식도 크게 바뀌었다. 지난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저출산 인식 조사'를 보면 '사실혼 등 결혼제도의 다양한 형태를 인정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10명 중 8명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성별에 상관없는 프랑스의 등록 동거혼 제도인 팍스(PACS‧시민연대계약)의 도입이 저출생 문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응답도 이들 중 76.8%에 달했다.
실제 프랑스는 팍스 도입 후 출산율, 비혼 출산율이 동시에 제고됐다. 프랑스에서 팍스를 맺은 커플만 2022년 한 해 역대 최대치인 20만 9827쌍이었으며, 같은 해 전체 출산율은 1.80명이었다. 비혼 출산율은 2020년 기준 62.2%나 된다. 같은 해 기준 한국은 2.5%에 그쳤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부터 달라
지난해 7월에 열린 김씨 부부 베이비 샤워에 달린 제목은 '대한민국 저출생 대책 간담회'였다. 그들 부부의 출산은 "레즈비언은 저출생 문제에 도움이 안 된다"던 항간의 통념을 날려버린 일이었다.
아이를 낳아 키울 가족의 형태에서부터 제약을 두면서, 아이는 바라는 심보가 현 정부의 '스탠스'다. 정확히 정부가 바라는 것은 '인구'이자 '노동력'이겠지만, 개인에겐 '가족'일 생명이다. 출산율을 높이고 싶으면, 앞서 행복한 가족을 구성할 권리부터 줘야 한다. 사람은 전적으로 '행복감으로' 아이를 낳아 키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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