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24 06:44최종 업데이트 24.07.24 06:44
  • 본문듣기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우리 사회는 노인학대에 매우 둔감하다. 아동학대는 심각하게 여기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반면 노인학대는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 셔터스톡

 
노인학대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노인학대 신고접수 건수가 2019년 1만 6071건에서 2023년 2만 1936건으로 급격히 늘었다. 이중에서 실제 학대로 판정된 건수는 2019년 5243건에서 2023년 7025건으로 증가했다. 대부분의 학대는 가정에서 발생하지만 중증의 노인이 거주하는 시설의 학대는 그 양상이 매우 심각해서 언론의 주목을 자주 받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노인학대에 매우 둔감하다. 아동학대는 심각하게 여기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반면 노인학대는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이를 학계에서는 '연령차별주의'(ageism)라고 비판한다.


특히 경제성장에 집착하는 한국 사회는 미래 경제 생산인구인 아동에 대한 학대는 심각하게 바라보지만 노인학대는 언론의 관심거리로 소모할 뿐 해결 의지가 약하다. 단적으로 중앙정부의 아동학대 예산(1008억 원)과 노인학대 예산(123억 원)의 차이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물론 아동학대 예산도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지만 노인학대 예산은 아동학대 예산과 비교해 고작 10분의 1 수준이다.

"불과 123억 원으로 정부는 노인학대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가" 묻고 싶다. 전국에 불과 38개의 노인보호전문기관이 어떻게 240개가 넘는 기초지자체에서 발생하는 학대 사건을 조사하고 적발할 수 있는가? 노인보호전문기관은 만성적인 상담 인력 부족과 잦은 이직 등으로 조사의 공적인 전문성을 쌓기도 어렵다.

노인이 되면 점차 신체적·정신적 기능이 저하하면서 다른 사람의 '돌봄'이 필요하게 된다. 학자들은 '존엄한 노후'를 강조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우리나라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요양보호사 중심의 아주 기본적인 일상 돌봄만을 제공한다. 따라서 노인의 신체적·정신적 기능이 빠르게 퇴화하면서 학대 행위자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은 약화하고 점점 더 학대에 노출된다.

노인복지학계는 노인이 최대한 집과 지역사회에서 살아야 한다(aging in place)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제공되는 돌봄 서비스가 미흡한 데다 자녀들의 부양의지마저 약화함에 따라 노인은 조기에 요양원이나 요양병원과 같은 시설에서 노후를 보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시설은 과연 믿을 만한 곳인가? 2023년에 요양원과 같은 생활시설의 학대는 571건, 요양병원의 학대는 115건으로 조사됐지만 실제는 훨씬 많을 것이다. 지금 체계에서는 찾아내지 못하는 '학대의 제도적 사각지대'가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노인학대의 제도적 사각지대, 적극 관리해야
     

요양병원 등의 시설은 그 자체의 엄격한 폐쇄성으로 인해 학대가 잘 적발되지 않는다. ⓒ unsplash

 
첫째, 상당수의 시설은 노인이 처음 입소할 때부터 잠을 자지 않거나 치매 증상이 나타나면 약물을 투입해서 노인을 제지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는 보호자의 사인을 받고 있다. 이를 근거로 공식·비공식적으로 수면제나 신경안정제를 투여해서 노인을 약물로 통제하고 있다.

특히 요양원은 약물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요양병원은 약물의 처방 및 투입이 너무 용이해서 '약물에 의한 학대'가 만연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학계에서도 실태조사나 대응 정책 연구가 별로 없을 정도로 약물 학대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다.

둘째, 시설은 서비스와 인력 등이 구조적으로 미흡하기 때문에 노인은 실제 거동능력에 비해 빨리 침대에 누워만 있는 와상상태가 된다. 그래서 음식 제공과 대소변 관리 등의 기본적인 서비스만을 겨우 받으면서 사실상 '방임 학대'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상당수의 요양병원은 의료적 치료에 치중하다 보니 노인을 위한 사회적 활동 프로그램은 별로 없다. 대부분의 요양원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상근 의사가 부재하고 간호사를 구하기도 어려워서 간호조무사나 요양보호사가 주로 업무를 한다. 그러다 보니 간호인력과 요양보호사들이 콧줄 교체와 같은 각종 불법 의료행위를 할 수밖에 없다.

셋째, 요양병원은 완벽한 제도적 사각지대다. 시설은 그 자체의 엄격한 폐쇄성으로 인해 학대가 잘 적발되지 않는다. 내부인력의 고발이 있거나 보호자가 자주 시설을 방문해서 감시기능을 해야 하는데, 코로나 이후 감염을 핑계로 보호자의 면회를 엄격하게 통제하는 시설이 많다.

그나마 요양원에 대해서는 노인보호전문기관에서 학대 조사를 하고 기초지자체에서 행정처분을 할 수 있지만 요양병원은 법적으로 행정처분 권한을 가진 행정기관이 없다. 면허가 없는 간병인이 사적으로 채용되어 근무하면서 학대 발생 가능성이 높지만, 조사권한을 가진 보건소는 매우 소극적이다. 설령 조사를 해도 행정조치를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도대체 왜 이런 제도적 공백을 방치하고 있는가?

넷째, 서구에서는 경제적 학대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경제적 학대가 2023년에 352건으로 3.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의 재산이나 현금 등을 가져가는 경제적 학대는 노인의 기본적인 삶을 빼앗아 가지만 대응체계가 거의 없고 드러나지 않은 사례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시설에 있는 치매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생활수급비나 기초연금 등을 요양원 직원이 몰래 가져가는 일도 일어난다. 특히 요양원은 노인의 자금관리를 시설장이나 부장 등의 관리직이 직접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낮은 직급의 요양보호사들이 발견해서 신고하기도 어렵다. 노인들은 현금이 있으면 베개 속이나 사물함에 넣어두는 경우가 많아서 경제적 학대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고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노인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체계 마련에 소극적이다.

요컨대 정부가 발표하는 노인학대 통계는 실제 현장에서 발생하는 노인학대의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높다. 노인학대의 제도적 사각지대인 '약물 학대, 방임 학대, 병원 학대, 경제적 학대' 등에 대한 실태를 체계적으로 조사해서 학대로 포함시키고 적극 관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인학대 예산을 대폭 증액해서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을 비롯한 전국의 노인보호전문기관의 인력과 예산을 확실히 늘려줘야 한다. 이러한 조처는 노인의 존엄한 노후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일 것이다.
 

전용호 /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소셜 코리아 편집위원) ⓒ 전용호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셜 코리아> 편집위원이며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노인복지정책, 노인돌봄, 장기요양, 사회서비스 전달체계 등입니다. 저서로 <영국의 사회보장제도>(공저), <복지국가 쟁점 2>(공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