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1일 오후 경기아트센터에서 열린 ‘2023 기회소득 예술인 페스티벌’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도자물레 체험을 하고 있다.
경기도
서구적 전통의 복지국가는 자연 정복에 바탕을 둔 생산주의에 치우쳐, 가정의 재생산 노동이나 자연에 대한 돌봄에 비해 노동시장의 교환가치, 임금계약 등을 더 중시해왔다. 그러나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포스트성장이라는 새로운 전망은 시민 욕구의 존엄성을 확보하는 사회적 기초와 지구라는 행성의 경계 안에서 안전한 생태계 모두에 초점을 맞추는 '생태복지국가'로 집약되어야 한다.
현 단계에서 생태복지국가 전환은 기존의 복지국가체제에 기후위기 극복에 필요한 생태 서비스를 접합하는 국가역량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기업, 시민사회 등의 역량도 결집하는 다양한 노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 동안 생태복지사회를 향한 제도화 시도로, 부유세, 탄소세, 녹색 에너지 및 탄소포집에 대한 공공투자 등을 이뤄왔다. 유의할 것은 생태복지국가로의 전환은 위의 시도들이나 이 글에서 다루는 참여소득 도입 같은 것들보다 훨씬 근본적이고 급진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국가를 둘러싼 갈등은 대개 효율성이 인간의 사회적 삶을 얼마나 지배하는가라는 문제와 관련된다. 생태복지사회로 가는 길은 계약보다 도덕에 근거한 사회관계, 자신보다 타인에 대한 책임, 개인적 자원주의(voluntarism)보다 집합적 의무, 개별 효용극대화에 대립하는 신성한 것에 대한 존중 등을 얼마만큼 현실화하는가에 달려 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체감한다 하더라도, 합리주의, 개인주의, 소비 및 경쟁 등 자본주의의 지배적 가치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그리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메리 P. 머피는 <생태사회적 복지의 미래 창조>(2023년)에서 "생태복지국가에 대한 상상이 규범, 행위 및 태도를 조정하는 것은 물론, 돌봄, 일, 소득, 서비스 등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는 것에 근거한다"고 밝힌다. 이와 함께 피오나 듀크로우 등은 "생태복지사회가 '노동과 돌봄에 걸친 시간의 재분배'를 주된 쟁점으로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유럽노조회의가 제안한 '더 짧게 일하고 더 길게 살자'라는 구호는 젠더 간 돌봄 재분배와 여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자는 간명한 요구다. 나아가 돌봄은 '종의 활동'으로, 복합적 삶을 지탱하는 자신, 타인 및 자연환경에 대한 보살핌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물론 OECD 가입국의 공통 관심사인 연금 수급연령 문제 또한 '삶의 시간 상품화'를 둘러싼 의제이며 생태복지제도의 구상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변수다.
사회보장체제는 한번 확립되고 외부의 정치사회적 충격이 없다면 스스로 강화,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 양재진 연세대 교수는 작년에 발표한 논문 '발전국가, 수출지향 산업화, 한국의 사회보장체제'에서 "발전국가 맥락에 있는 한국의 수출지향 산업화가 서구적 의미의 복지국가 형성을 제약해왔다"고 언급한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수출 일변도 정치경제 구조 때문에 국제경쟁력을 저해할 노동비용 상승을 우려해 사회보장체제의 범위, 급여를 미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1987년 이후의 노동조합운동 역시 대기업 분배수요를 초점으로 함으로써 사회복지의 요구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조직화된 노동자'의 실제적 인센티브를 잠식해 왔다"고도 파악한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생산적 복지'를 주창하며 복지국가의 세계적 추세인 근로연계복지의 방향에 처음으로 동참했다. 생산적 복지는 당시 저소득층에 대한 소득 지원의 대가로 취창업에 대한 참여를 의무화하는 자활사업의 이념이기도 했다. 즉 복지국가 경험이 전혀 없었던 한국에서는 소득을 보조하는 일자리에 대한 재원 확보를 위해 복지의 생산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후 정부들에 이어온 신자유주의적 관점의 소득지지는 재생산 노동을 징벌화하고 수급자에게 유급노동을 의무화함으로써 오히려 생태사회적 활동에 대한 참여를 저해해왔다. 이에 반해 기후위기 시대 생태복지국가의 제도 설계는 노동에 대해 생산주의적 고용에 국한하지 않고 생태사회적 재생산으로 포괄적으로 접근하는 발상의 전환을 요청한다.
기본소득제도는 근로연계복지와 달리 일에 대한 강제성이 없는 특성이 있다. 이 제도는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노동을 거절할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돌봄 노동처럼 낮은 보수의 일도 긍정적으로 유도하는 이점을 지닌다. 그리하여 보편적 기본소득은 사회적으로 유용하게 노동하는 능력과 노동조건 개선 둘 모두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참여소득제도 당장이라도 실행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