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센 강을 질주하는 은색 기계 말
로이터/연합뉴스
'연대'를 표현하는 장에서는, 올림픽기를 든 기수가 은색 말을 타고 센 강을 질주하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이 선보인다. 개막식 가운데 가장 시적인 순간이기도 했던 이 장면은 낭트의 건축 디자인 연구소 아틀리에 블램(Atelier Blam)에서 제작된 은빛 기계 말을 통해 실현될 수 있었다. 말은 강의 여신 세카나를 상징하며 동시에 우정과 연대의 정신으로 하나 된 올림픽 정신을 의미한다는 것이 연출가 토마 졸리의 설명이다.
칼 루이스, 라파엘 나달, 나디아 코마네치, 세레나 윌리엄스 등 각국의 전설적 올림픽 스타들이 함께한 성화 봉송의 마지막 주자는 프랑스의 스포츠 스타 마리 조제 페레크(올림픽 3관왕의 육상선수)과 테디 리네르(올림픽 3관왕의 유도선수)였다. 두 사람의 점화로 공중에 떠오른 기구는 1783년 인류 최초로 기구를 하늘에 띄운 프랑스의 몽골피에르 형제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했다. 점화된 성화를 품은 기구는 1783년 처음 그것이 선보였던 파리 튀일리 공원 안에 머물며 올림픽 기간 동안 관람객들을 만난다.
프랑스가 인류에게 선사한 예술적, 문화적 성과들과 멈추지 않았던 혁명의 역사를 대담한 톤으로 변주해 내는데 개막식은 온전히 바쳐졌다. 그리고 언제나 최초의 것들이 그러하듯, 연출가의 과감한 대담성은 그 대가를 요구받기도 했다.
최초의 남녀 동수 올림픽
파리는 19세기와, 20세기, 21세기에 각각 한 번씩 올림픽을 치른 도시이기도 하다.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와 함께 열린 올림픽이 최초로,여성들이 참여했던 올림픽이었다면, 이번 파리올림픽은 남녀 동수가 참여한 올림픽이다. 단순히 기계적인 남녀 동수를 실현해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여성이 함께하는 역사의 진보를 위해 활약한 여성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동상을 등장시켰다. 이들의 동상들은 올림픽 개막식이 끝난 후에도 도시 곳곳에 남겨지게 된다.
그 10인의 여성 가운데 첫 주자가 올랭프 드 구주(1748-1793)다. 프랑스대혁명이 말한 평등에서 여성이 배제되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1791년 여성시민인권헌장을 직접 작성, 발표한 프랑스의 문인이자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기록되는 인물이다. 마루 앙투아네트가 남편 루이 16세와 함께 처형된 것을 두고, "여성이 단두대에 끌려가 처형될 권리가 있다면, 연단에 올라 목소리를 낼 권리도 있다"라며 명징하게, 혁명이 잊고 있던 절반의 '시민의 권리'를 역설하다가, 그 역시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파리 코뮌(1871)의 한 주역이었으며, 노동자 계급의 지위 향상과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웠고, 누벨칼레도니로 귀향을 가서도 프랑스의 식민지 정책에 반한 투쟁을 지속했던 아나키스트 투사 루이즈 미셸(1830-1905)도 10인 중 한 사람이다.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 낙태 비범죄화의 시발점이 된 법조인 지젤 알리미,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알리스 기, 여성의 스포츠 참여권을 위해 평생 헌신해온 수영선수 알리스 밀리아 등이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모든 혁명의 역사 속엔 반혁명과 혁명의 모순도 함께 존재한다. 올랭프 드 구주는 혁명을 국가적 자산으로 삼는 나라에서 어쩌면 감추어야 할 인물일 수도 있으며, 파리시를 노동자 서민들의 독립적 자치 구역으로 만들어 버렸던 파리 코뮌의 주역은 여전히 제도권 권력의 눈엔 간담이 서늘한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혁명의 모순을 저격한 인물, 실패한 아나키스트 혁명의 투사를 역사속 영웅으로 새겨 넣는 일이야말로, 혁명을 단순한 관광상품이 아니라 사회 속에 살아 숨쉬는 불가역적 세포로 각인시킨다는 사실을 연출가는 행동으로 웅변하고 있었다.
신성 모독 시비에 휩싸인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