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21일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의 피어 70에서 열린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SF 2015'에서 텔레그램의 공동 창립자이자 CEO인 파벨 두로프가 연설하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표현의 자유와 사회의 안전은 언제나 공존이 힘든 열린 사회의 딜레마다. 텔레그램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가 지난 8월 24일 파리 외곽 부르제 공항에서 체포되어 지난 8월 28일 밤 조건부 석방됐다. 그에게 프랑스 당국이 취한 행동은 프랑스가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잡기를 포기하고, 경찰국가로 직행하기로 한 것 같은 인상을 줄 만큼 충격적이고 도발적이다.
500만 유로(약 74억 원)의 보증금 예치와 일주일에 두 번 경찰 출석, 프랑스 영토를 벗어나지 말 것이 석방을 위해 제시된 조건이다. 2021년 프랑스 국적을 획득한 그는 프랑스 시민권자이기도 하다.
나흘 간의 조사를 마친 파리 검찰청이 그에게 부여한 혐의는 '프랑스 정보기관의 감청에 필요한 정보 전달 거부', 텔레그램 플랫폼에서 진행되는 각종 조직 범죄(마약 밀매, 아동 포르노 조직 범죄, 사기, 조직적 자금 세탁 등 12가지)공모 혐의, 사용자의 기밀을 보장하는 암호화 서비스 제공' 등이라고 밝혔다. 또한 스위스에 거주하는 전처가 2023년에 고발한 자녀 폭행 혐의도 뒤늦게 추가됐다.
파벨 두로프에게 제기된 죄목들은 인터넷 플랫폼에서 일어날 수 있는 광범위한 각종 범죄들을 총망라하고 있으나, 실제로 그에게 묻는 구체적인 혐의는 텔레그램에서 활약하는 범죄조직에 대해 당국이 요구하는 감찰·검열에 대한 협조 거부로 집약된다. 그러나 한국에서 한창 제기되고 있는 딥페이크 성범죄와 같이 실질적 사례로 프랑스에서 지목되는 사건은 현재로선 전무한 상태다.
암호화된 메시지로 철통 보안을 자랑하고, 검열 없는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으로 알려진 텔레그램이 이처럼 수사기관으로부터 수난을 겪었던 것은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2014년 파벨 두로프는 우크라이나 집회 사태와 러시아의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 관련 계정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검열 요청을 공개적으로 거부하면서, 러시아와 불편한 관계에 들어갔다. 이후, 그는 러시아의 과도한 규제와 관료주의가 자신과 맞지 않다고 판단해서 조국인 러시아를 떠나 두바이에 정착하여 거주해 왔다.
2018년에는 메신저 암호 해독 키를 공개하라는 러시아연방보안국(FSB)의 요구를 텔레그램이 거부하자, 러시아 정부는 자국 내에서 텔레그램을 중지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 텔레그램 측이 테러와 극단주의에 맞서는 러시아 정부의 입장에 협조하기로 하면서, 텔레그램 서비스가 재개됐다.
2015년 파리 테러 이후 여러 이슬람 테러 조직이 텔레그램에 방을 두고 있던 것으로 밝혀지고, 텔레그램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졌다. 이때 텔레그램 측은 78개에 이르는 지하디스트 조직의 방들을 폐쇄하는 등, 테러 조직과 관련해선 제재에 협조해 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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