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게 마치 제3자가 관망하듯 이야기한 까닭은 처음부터 '그들만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정책 추진과 저항 과정에서 사람들이 입게 될 건강 피해에 무감했다는 점에서 양측 모두 사람 중심 관점이 결여돼 있기는 매한가지다. 더 큰 문제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며 의대 정원을 늘리더라도 보건의료체계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 '필수·지역의료 공백' 문제 해결을 장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한 의사 집단의 대응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안타깝게도 처음부터 시민들에게는 의사 증원 찬반이라는 양자택일의 선택지만 주어졌을 뿐이다. 그 결과 시민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한 소용돌이에 휩싸여 큰 고통과 불편을 겪으면서도 정작 정부와 의사들 사이에서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물론 둘 다 나쁘다고 비난하고 욕하기는 쉽다. 하지만 이 위기를 더 좋은 보건의료체계를 만들기 위한 기회를 바꿀 수 있으려면 양비론을 넘어 사태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이번 의사 증원 정책을 철저히 정치적 산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의사 수가 얼마나 부족한지, 미래 의사 인력 수급을 추계한 연구 결과가 얼마나 정확한지 묻는 것을 부차적 문제로 보자는 것이다. 정부와 의사 집단은 자꾸 사람들의 시선을 미시적인 정책기술적 논의에 가두려고 하지만, 우리는 어떤 이해관계와 권력관계 속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정책 결정이 이루어졌는지에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과정에 주목한다는 건 결과적으로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는지 따지는 차원 역시 넘어서야 함을 의미한다. 영국의 건강정책학자 길 월트에 따르면, "정책결정에서 권력과 과정은 겉보기보다 더 '복잡하게 얽혀 있고, 직관적이며, 무의식적인 것'이므로 항상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좀 더 질서 있고 심층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도대체 대통령이 무슨 연유로 대혼란을 야기할 위험이 큰데도 예상을 뛰어넘는 대규모 의사 증원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그 정책 결정 과정에 여러 복합적 요인들이 영향을 미쳤겠지만, 대통령이 유독 '신념 정치(conviction politics)'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건의료와 관련해 그의 신념을 형성하고 있는 담론이 무엇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때 담론이란 사회 내 다양한 행위자들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표를 정당화하기 위해 창출하는 논리성을 갖는 언술 체계 혹은 넓은 의미에서의 지식체계"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담론은 이처럼 특정 관점과 의도에 따라 구성되는 것이면서, 동시에 사회 현상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틀로 작동하며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지난해 우리는 '지역 응급실 문을 닫는다', '대형 병원 간호사도 수술받지 못해 죽었다', '소아과 진료 받기 너무 어렵다' 등의 뉴스를 접했다. 다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의사가 없거나 부족해서 생긴 문제였다.
그런데 대통령과 정부는 이 문제의 원인으로 인력의 왜곡된 분포보다는 공급 부족에 방점을 찍었다. 전자에 더 주목하거나 아니면 둘 다 균형있게 고려할 수 있었음에도 말이다. 대안이 더 직관적이고 단순하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정책결정자들의 이러한 판단마저 보건의료와 관련된 특정 담론을 수용한 결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는 보건의료(체계)에 관한 몇 가지 주요 담론이 존재한다. 각 담론은 보건의료체계의 현 상황이 어떠한지(표상), 미래 보건의료체계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비전), 그리고 이렇게 상상된 보건의료체계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지(과정)에 대해 서로 다른 가치·지식 체계를 갖추고 있다. 사회적 담론의 장에서 이들 담론들은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서로 경합하는 가운데 영향을 주고받기도 한다.
담론 간 일정한 유사성이 존재하고 중첩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큰 틀에서 나눠 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의료를 '상품'으로 보는지에 따라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극단적인 자유지상주의 입장을 제외하면 보건의료가 가진 공공재, 가치재로서의 특성을 전면 부정하는 담론은 드물다.
다만 '의료=상품' 담론은 이 재화(서비스)의 분배가 시장 거래의 원리와 기전을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가정한다. 국가는 구매 능력이 부족한 이들을 일정 부분 지원해 주면서, 낮은 수익성 등의 이유로 서비스 공급이 원활치 않은 특정 분야와 지역에 대한 서비스 제공을 책임지는 역할만 하면 된다. 이 담론의 핵심 가치와 목표는 의료를 통해 이윤 창출을 극대화하는 시장 행위를 긍정하고 장려하는 것이다.
이 말이 너무 당연하게 들리는 까닭은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지배담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지배담론으로서 '의료는 본질적으로 상품이다'라는 명제에 대한 사회적 동의와 수용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현재 치열하게 힘 겨루기를 하고 있는 정부와 의사 집단 모두 이 지배담론을 전제로 행동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강화하고 확산, 유통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또한 보다 시장친화적인 보건의료체계를 미래 비전으로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역설적이지만 이번에 충돌하게 된 까닭도 둘 다 이 지배담론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경쟁' 강화라는 가장 이상적인 시장 원리에 따라 공급 확대를 선택했고, 의사들은 시장의 상품 판매자로서 '이익 극대화'라고 하는 어쩌면 본능에 가까운 목표에 따라 독점력을 지키고자 했을 뿐이다.
의사 증원이라는 시장친화적 대안, 그게 최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