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프리, 영국 초등학교 교실한창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 스마트폰은 교무실 캐비넷에 보관되어 있다.
김명주
영국 어느 평범한 아침, 초등학생들이 하나둘 등교를 시작한다. 아이들은 교실에 들어서는 순서대로 선생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파란 플라스틱 통에 개인 휴대폰을 넣는다. 그렇게 모인 전화기들은 교무실 캐비닛에 하교시간까지 보관된다.
이날은 학교 강당에서 뮤지컬 <신데렐라> 공연이 있는 날이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무대를 바라본다. 공연 중 주인공 신데렐라가 관중석을 가로지르며 춤을 추자, 우리 반 남자아이 서너 명이 연기자 뒤에서 성적인 제스처를 보이며 키득키득 웃기 시작한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아이들이 대부분인 것 같지만, 알아보고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아이들도 여럿 있다. 해당 학급 보조 교사인 나는 바로 그 상황을 학교운영팀에 보고한다.
담임교사와 안전 교육팀이 학생들과 개인면담을 진행한다. 이제 열 살인 아이들 모두 핸드폰을 소유하고 있고 SNS(사회관계망서비스) 계정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두 명은 나이 제한 없이 모든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었는데, 가학적, 성적 콘텐츠를 시청한 기록도 있다.
학부모 면담이 이어진다. 부모들은 앞으로 아이들의 소셜미디어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다. 학교에서는 모든 휴대폰을 수거해서 학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바른 휴대폰 사용에 대해 가르친다. 하지만 방과 후 가정이나 사회가 그와 함께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건전하게 유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만 14세 될 때까지 휴대폰을 주지 말자'는 마을
이에 대해 실질적인 개선 방향을 고민하고 행동에 들어간 학교와 커뮤니티가 있어 화제다.
9월 25일 자 BBC 기사에 따르면 영국 남동부 허트로드셔주에 위치한 윌리엄 랜슨 초등학교는 주변 25개의 초등학교에 공문을 보내 '아이들이 만 14세가 되는 9학년까지 휴대폰을 주지 말자'는 운동에 학부모와 보호자들의 동의를 구하고 나섰다. 개인이나 해당 학교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의 변화를 도모하는 점이 흥미롭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두 엄마들을 소개한다. 친구사이인 클레어와 데이지는 일곱 살과 아홉 살,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이들이 11살이 되면 자연히 스마트폰을 갖는 사회 분위기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동의한다.
두 사람은 지난 2월, '스마트폰에서 자유로운 어린시절(Smartphone Free Childhood)'이라는 이름으로 소셜그룹을 만든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최소 14세까지 스마트폰 주는 것을 미루고, 16세까지는 소셜 미디어 접근을 허용하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서로 소통하자는 취지였다.
둘 중 한 사람인 데이지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이 운동에 동참을 호소하는 글과 링크를 올렸다. 포스팅 하루 만에 1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해당 소셜 그룹에 가입해 정원을 꽉 채웠고, 현재는 30여 개 주 4500명이 활동 중이다. BBC 뉴스에 언급된 윌리엄 랜슨 초등학교의 지역 활동도 실은 '스마트폰에서 자유로운 어린시절' 운동에 공감한 한 학부모가 학교에 참여를 건의한 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과연 가능할까? 내가 사는 지역에는 아직 이런 움직임이 없다. 이와 관련한 학부모들의 반응이 궁금해 나는 인터넷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연령에 따른 스마트폰 금지에 대한 엇갈린 반응들
지난 5월 23일 자 영국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성 알반스시의 초등학교 운영 재단 (St Albans Primary Schools Consortium)은 지역 내 24개의 초등학교 학부모들에게 '14세 이하 스마트폰 프리' 운동 동참을 호소하는 편지를 발송했고, 이에 대한 학부모와 보호자들의 의견을 묻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학생의 엄마인 아리아나 스탄치우(33)씨는 14세 이하 스마트폰 금지에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다.
"요즘 아이들은 휴대폰 바깥세상에 관심을 두지 않아요. 의사소통이 적어지고 함께 협력하는 일에 관심이 없지요. 휴대폰 사용을 제지하려 하면 과격하게 반응하기도 합니다. 이대로 성인이 된다면 여러 가지 정신적인 문제를 유발하게 될 거예요. 적절한 나이에 사용을 권장해야 합니다."
초등학생의 할머니인 시안 제이(61), 다른 조부모인 카렌(64)과 스티브 미첼(65) 부부는 요즘 세상에 14살까지 휴대폰을 주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의구심을 가진다. 그러면서도 최근 온라인 세상에서 아이들이 경험하는 끔찍한 사례들을 보면 소셜미디어 사용 연령 제한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한다. 다만 스마트폰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혼자 등교를 시작하는 중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연락 가능한 휴대폰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학부모인 아쉬(33), 세인 카남(32) 부부는 관련 아이디어는 좋지만 현실에 반영하기는 쉽지 않다는 반응이다. 한창 독립심을 기르는 청소년기에 휴대폰 없이 학교나 부모에 도움을 구해야 하는 상황을 아이들이 받아들일리 없다는 것이다. 정보기술이 온 세상을 잠식한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그저 쓰지 말라고 한다고 해결이 될 것인가 하는 원론적 한계를 지적하기도 한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엑스(구 트위터), 유튜브 등 주요 소셜 미디어 기업에서 프로그램을 이끌었던 전직 직원들의 인터뷰로 구성된, 다큐멘터리 < 사회적 딜레마 the social dilemma>가 있다. 프로그램 내용 중에 아이들이 SNS를 사용할 때 지킬 몇 가지 주의사항이 언급된다.
부모는 패밀리 링크를 설치해 아이들이 다운로드하는 앱은 무엇인지, 사용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모니터링하기. 잠자리 들기 전 적어도 30분 전에는 스마트폰 접근 차단하기. 무엇보다 소셜네트워크 기능 중 '실시간 업데이트 알림'을 꺼서 무작위 알림에 따른 반사적 반응을 줄이고, 아이가 정한 인터넷 사용시간을 준수하면서 스스로 조절하도록 도우라는 조언이다.
다큐멘터리 말미, 알고리즘과 소셜네트워크의 생태계를 조성한 이 전문가들 모두, 자신의 아이에게는 스마트폰을 절대 주지 않는다는 말에 아연실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