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6월 13일 자 <매일경제신문> 기사 "미국이 핵우산 걷는다면 한국 핵무기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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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장에 관한 사회적 논의의 토대가 취약한 현실을 반영하는 이 연구 결과와 함께 살펴볼 것은 핵무장에 대한 보수세력의 태도다. 박정희 정권의 행보에서 나타났듯이, 보수세력은 독자 핵무장을 한미동맹 강화나 주한미군 지속 주둔 등과 맞바꿀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는 핵무장 목소리의 진원지인 보수세력의 의지가 실상은 그리 강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해석될 수 있다.
1975년 6월 13일 자 <매일경제>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박정희는 그달 12일 <워싱턴포스트>에 보도된 미국 언론인들과의 회견에서 "한국은 미국의 핵우산이 철거될 경우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며 또 개발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것이 한국 최초의 핵무장 선언이라고 전했다.
박 정권에 대한 전면적 분석을 담은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국제기구소위원회의 <프레이저 보고서>는 1970년대 초에 박정희 정부 내의 무기개발위원회가 "만장일치로 핵무기 개발에 착수하기로 결정"한 일이 있다고 한 뒤, 이 프로그램이 1975년경에 전부 취소됐다면서 "한국의 핵정책이 명백해짐에 따라 미국은 한국의 원자력 프로그램 확장에 적극 협력했다"고 설명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 개발에 대해 채찍과 당근을 함께 제시했다. 1978년 11월 5일 자 <조선일보> 기사 '한국 핵무기 개발 미(美) 압력으로 중지'에 따르면, 그달 4일 발행된 <LA 타임스>는 1975년에 미국은 박 정권을 압박해 핵 개발을 포기시키는 한편, 핵발전장비를 지속적으로 공급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보도했다.
박정희의 핵 개발 시도는 주한미군이 감축되고 미국의 안전보장이 약해지는 상황에서 튀어나왔다. 그의 핵 개발 추진은 주한미군을 묶어두는 측면도 다분했다. 지금의 보수세력도 크게 다르다고 보기는 힘들다. 북한의 핵전력이 강화되기 때문에 핵무장 목소리를 내는 측면도 있지만, 미국의 안전보장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측면도 크다. 이는 보수정권이 지금 당장은 핵무장 목소리를 키운다 해도, 미국의 반응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후퇴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핵무장을 지지하는 찬성 여론이 새로운 정보나 지식과의 접촉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점, 핵 개발 목소리를 주도하는 보수정권이나 보수세력이 미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있으며 그런 선례도 있다는 점은 지금 한국에서 제기되는 핵무장론이 그리 견고하지 않다고 판단하게 만든다.
핵무장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주한미군을 묶어두거나 미국의 핵우산이나 확장억제자산(전략폭격기·전략핵잠수함·핵추진항공모함)을 좀 더 많이 활용할 의도로도 핵무장을 주장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은 한국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안보 장사에 휘둘릴 여지도 있음을 경고한다.
한국 보수세력이 독자 핵무장을 한미동맹 공고화와 맞바꿀 수도 있음을 잘 아는 트럼프가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확장억제 자산의 배치 비용 증가를 목적으로 독자 핵무장 목소리를 역이용하려 들 가능성에도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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