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남녀공학 전환 움직임에 반대하며 학생들이 시위중인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교정의 모습.
권우성
주요 구성원인 학생들을 배제하는 비민주적인 방식의 동덕여대 공학 전환에 반대한다. 이는 '여성 교육'이라는 학교의 취지에 동참해 입학을 결정한 학생들과, 동덕여대 입학을 목표로 준비 중인 수험생들을 기만하는 행위다. 학생들에게 '폭력 사태'의 책임을 묻겠다면서 "외부 단체와 연계되어 피해를 입지 않도록"이라는 말로 집회에 나선 학생들의 주체성을 부정하는 학교 측 발언도 문제적이다.
'여성의 교육권 신장'을 위해 태동한 여대라는 공간의 취지는 아직 유효하다. 여대의 존재 의의는 여성의 대학 진학률만 놓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 공학 대학 다수에서 백래시에 직면해 '페미니즘', '여성학'이라는 이름의 과목들이 폐강되는 가운데 그나마 여대에서 명맥을 이어오는 현실을 놓고 보면 그렇다. 여성이 여성만으로 꾸려가는 자기 주도적 공간의 의의와 '4B'와 비슷하게 남자 없는 삶도 상상 가능한 공간으로서의 의의도 크다.
그렇다고 여대가 '완전무결한 안전 공간'이라는 것은 아니다. 여성들 사이에도 다툼은 나타나고, 차별도 발생하며, 성범죄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남성과 함께 있는 공간 대비 젠더 기반 폭력이나 성적 차별이 일어날 가능성이 현저히 적은 것은 맞다. 이러한 환경이 불러일으키는 기대 심리는 '백래시'가 직접적인 폭력으로 발현되리라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 상시적일 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나 같은 경우는 여대에는 적어도 '구조적 성차별은 있다'는데 동의하는 성원들이 모여 있을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보다 안전하다는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지난여름, 여대에서 소규모 강의를 할 때 내가 느낀 감각이 그랬다. 일간지와 공중파 라디오 등에서 주로 발화를 하던 나는 항상 내 글과 말의 수용자가 어떤 이들일지 잘 가늠이 안 갔다. 때문에 가급적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발화를 하려고 애썼다. 페미니즘에 도통 관심 없는 이들도 들을 거라는 전제하에.
그러나 여대에서 강의할 때는 달랐다. 페미니즘적 대전제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라는 나만의 가설 하에 강의를 했고, 그러한 감각 덕에 나는 다른 자리에서보다 확연히 더 진전된 논의를 할 수 있었다. 성차별을 '젠더갈등'이라며 피곤해하는 이들을 포섭하기 위한 전략을 구상하는 일도,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가능했다. 이 모든 일들은 바로 내가 그 대학의 구성원들이 남긴 수많은 여성학 논문들을 레퍼런스 삼아 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 수강생들 중 상당수는 내 전제에 동의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사상적으로 안전하다'는 감각 덕에, 나는 그 공간에서 보다 용감할 수 있었다.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수고로움을 감내하지 않아도 됐고, 그로 인해 남은 힘을 비축할 수 있었다.
'안전 공간'으로서의 여대란 바로 이런 지점이다. 생존과 성적 위협으로부터의 완벽한 안전을 보장받는 요새나 방공호가 아니라, 생명력이 약동하는 공간. 그리하여 여성대학이 사회에 내놓은 수많은 페미니즘적 레퍼런스, 거리 집회를 포함한 공동행동을 조직하는 힘이 여기서 나왔다고 본다. 지금 '공학 전환'에 반대하는 동덕여대 학생들과 다른 여대 학생들, 이를 지지하는 페미니스트의 행보는 일련의 전제에 동의한 이들의 연대다.
4B와 여대라는 남성 보이콧, 선택지의 문제
결국 '4B'도 여대도 선택지의 문제다. 남성과의 연애‧결혼‧출산이 여성의 인생에 전부인 줄만 알던 세계에서 '4B' 또한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음을, 여성의 대학 진학 과정에서 여대 또한 하나의 선택지로 존속할 수 있음을 아는 것. 모쪼록 여성들에게 더 많은 선택지가 주어지는 세상이야말로, 페미니스트들이 바라는 세상이다.
소셜 미디어 상에서 나타나는 운동으로서의 4B를 '올려 치려다' 4B 아닌 페미니스트를 '후려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안전 공간'에 대한 희구를 또 다른 약자인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한 혐오로 전이시키는 일도 마찬가지다. 지지를 표명하면서도 또다른 혐오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에 가하는 '한가한 소리'라는 힐난도 그렇다. 누구도 한가하지 않다. "해일 오는 데 조개 줍는 얘기"라는 비아냥을 늘 들었던 게 페미니즘의 본령이지만, 언제고 '조개 줍는 얘기'는 한가한 얘기가 아니었다. 또 하나의 생존에 관한 얘기였다.
페미니스트들이 자기 본위대로 행복하길 빈다. 또 내가 사랑한 여대가 존속하기를. 동덕여대 본관 앞에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을 학생들을, 굳건히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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