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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라칼라 목욕장
ⓒ 한길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정치체제든 새롭게 집권하는 정권은 기존정치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신념에 따라 새로운 개혁을 이루려고 한다.

과거 영국의 대처정부에는 오일쇼크와 복지병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노쇠해진 영국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주려는 신공공관리론적인 신념이 있었다. 또 최근 프랑스의 사르코지 집권과 지난해에 있었던 스웨덴 총선의 결과는 오랫동안 유지되어왔던 사민주의식의 복지모델에 약간의 수정이 필요함을 시대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수정하려는 그 국가 나름의 개혁의 시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김영삼 문민정부 시절에는 과거 군사독재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시각이 강조되었고, 김대중 정권의 경우에는 문민정부의 부정과 비효율성을 개혁한다는 시각이 강조되었다. 그리고 현 노무현 정권의 경우 우리나라에 여전히 누적되어 있는 보수 편향적인 사회구조적 문제점을 지양하고 좀 더 민중지향적인 정부를 구축하며, 성장과 분배를 모두 강조하는 사민주의 시각이 가미된 정책을 추진하는 '국민 참여의 거버넌스적 비전'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최근 10여 년 사이의 우리정부는 정권초기에 높은 국민의 지지를 받았더라도, 내부적인 비리와 부정부패, 파벌위주의 인사정책, 보수, 진보의 지나친 대립구도의 형성 등으로 국민의 입장에서 투명한 정부를 구축하지 못했다. 또 적재적소의 인재활용을 통한 효율적인 정부도 구축하지 못하였고, 정권말기에는 심각한 레임덕 현상까지 벌어졌다.

현 노무현 정권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그동안 보여준 국정운영의 태도에서 진지함과 공정성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찾을 수 없어 많은 국민들이 실망하였으며 내부적으로도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해 분열이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로마시대의 경우에도 카르타고 전쟁 이전까지의 초창기와 이후 갈리아정복으로 이어지는 고도성장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도자들에 의해 많은 법, 제도적, 사회문화적인 개혁이 시도됐다. 특히 카이사르 시대에 와서는 가장 근본이 되는 공화정체제의 제정체제로의 전환이라는 엄청난 시대적 요청에 직면하게 된다.

단지 지금과 차이가 있다면 카이사르의 개혁은 반대하는 사람도 많고 그 자신도 반대파에 의해 살해되었으나, 그의 견해에 대한 대중의 지지와 존경은 여전했으며 결국에는 그가 생각했던 이념으로 시대의 전환이 이뤄졌다.

그에 반해서 우리나라의 현 정권은 많은 국민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으며, '다음 정권이 이러한 진보적 시각의 정권으로 재창출되어 정책운영의 방향이 동일할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대부분 회의적이다.

즉,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도자의 지혜와 지도력, 태도, 인격의 차이가 정권의 성공여부, 나아가서 한 국가의 성쇠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도 오는 12월, 앞으로의 5년을 책임질 최고지도자를 다시 선택하게 되는 대선을 앞두고 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역사적으로 훌륭한 지도자로 꼽히고 있는 카이사르의 행적·정책과 현 노무현 정권의 행정·정책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우선적으로 비교해 보고자 하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과 카이사르가 정치적인 문제, 여론을 대하는 태도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 및 대선 후보자에게 원색적인 비난 등을 했다는 이유로 선관위로부터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하고 있다'는 결정을 받은 바 있다. 정책적인 문제에 관하여는 한미FTA와 관련하여 돌연 이익이 안 되면 체결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해 국민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이러한 정책적인 일관성을 결여한 표현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있다.

물론 대통령의 발언 중에는 언론사 및 상대되는 정치세력에 의해 왜곡, 과장된 면도 있다. 하지만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현대통령의 실언은 너무 빈번히 일어나고 있으며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로서 공정성과 신중성을 국민들은 찾지 못하고 있어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이 가중되고 있다.

반면 카이사르의 경우 적으로 대치하던 폼페이우스에 대해서도 반드시 경의에 찬 어휘를 사용했다. 당시 정치적인 이념에서는 상대편에 섰던 키케로로부터 '카이사르의 진지함과 공정을 기하려는 태도, 그리고 현명한 처신에는 나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는 찬사를 들은 바 있다.

폼페이우스가 죽은 이후 안토니우스가 폼페이우스의 집을 차지하자, 카이사르는 안토니우스에게 폼페이우스의 미망인에게 집값을 지불하라고 한다. 또 안토니우스가 축제 때 왕관과 같은 관을 바치지만, 그것을 거절하고 대리석에 공식적으로 왕관을 거절했음을 기록하게 해 잘못을 바로잡고자 했다.

이는 그의 균형 잡힌 처신의 결과이지만 로마시민으로부터의 신뢰를 이어가기에 충분한 행동이었다. 사적인 인관관계에서도 그렇지만 공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사람들은 일관되고 신중한 사람을 선호한다고 생각한다.

카이사르에게도 분명 자신의 이념과 상반되고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느 누구에게든 항상 공정하고 신중한 표현을 유지하며 사람들의 신망을 받은 반면,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는 원색적인 비난으로 순간순간 인기를 유지하고, 국민들의 관심을 유발하였으나 신뢰감을 주지는 못했다.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반대파에 대한 이분법적인 적대감으로 이어져서 인재운용면에서 탄력성을 잃기도 하며 국회 내에서의 정치적인 협조도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더구나 정치적 신뢰상실과 교육, 부동산정책 등에 대한 정책적 과오 등이 겹치면서 기존의 열린우리당내 정치인들의 탈당이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진보, 보수의 스펙트럼 중 어느 것만이 옳다고 평가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으며 그 시대의 상황에 따라 사안별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지나치게 적과 아군을 분리하고 있어서 정권 운용의 경직성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카이사르의 경우 키케로에게 쓴 답장에서 '내가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내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오, 따라서 남들도 자기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오'라고 말했다. 실제로도 그는 국가 재건을 위해 재능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면 출신 성분에 구애받지 않았고 심지어는 자신에게 칼을 댔던 반대파라 하더라도 모두 중용하였다.

카이사르는 국민의 다양한 시각을 모두 유지한 채, 관용을 베풀면서 앞으로 나가려고 했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반대파는 배제한 채, 나머지 국민의 지지만 있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는 국민들의 분열과 불신만 가중시키게 되고 올바른 방향이더라도 적절한 시기에 효율적으로 개혁을 진행시킬 수 없다. 오히려 반대파를 모두 숙청하고자 했던 술라가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비슷한 면이 많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정책 운영의 면에서 볼 때 국내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민중·대중 지향적인 정책을 추진하며 앞으로의 제도적 효과성을 떠나서 비정규직과 외국인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을 준비하고 상대적으로 복지 등의 분배 문제를 강조하였다.

카이사르 역시 기존의 로마시민권자 뿐만 아니라 갈리아, 게르만 출신의 군단병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하였으며 해방노예를 장려한 점, 심지어는 타민족에게도 원로원의 자리도 부여하는 등 개방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농지법과 소맥법을 법적으로 실행하여 사회적인 약자를 보호하려 한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정책운영에서 형식적인 수치보다는 실제운영상의 내실을 기하고자 한 반면, 노무현 정권은 가시적인 효과를 내는데 급급한 차이가 있다. 카이사르가 당시 방만하게 운영되던 소맥법을 공정한 심사를 바탕으로 한 적정규모의 배급으로 전환시켜 오히려 규모는 줄이면서 표적효율성(target efficiency)을 높였으며, 당시 절실히 요구되던 농지법을 되살리고 실업예비군을 군단으로 흡수시켜 취약계층이 근본적으로 스스로 일어나게 한 반면, 노무현대통령의 정책은 단순히 복지예산의 수치적 증가에 강조점을 둔 나머지, 세부적인 복지산업의 운영에서는 미진한 측면이 있다.

가령, 올해 예산을 검토할 때, 생산적 복지라고 할 수 있는 취약계층의 근로 능력을 향상시키는 보육, 가족, 노동 부분의 지출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 오히려 기초생활수급자 지원 예산이 크게 늘어나는 등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에 대한 전통적 복지사업이 많아지고 있다. 또한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되는 등 저출산고령화사회의 문제가 심각히 부각되는데도 노인복지에 대한 지출은 명목적인 증가수준에 그치고 있다.

카이사르가 합리적인 시각에서 국가의 발전 속도에 맞추기 위한 각종 법, 제도적인 소프트웨어,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초점을 둔 반면, 현 정권은 매년 복지예산을 대폭 증가시키는 등 이 부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실제로는 우선순위 선정과 운영면에서 문제를 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대외적으로도 카이사르는 우호적인 국가는 그대로 유지하되 한 번이라도 로마에게 칼끝을 내민 국가에는 군사적인 조치를 취하는 등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가며 유지하였으나, 노무현 정권은 대북관계와 이라크 파병 문제에 있어서 지나치게 소심하게 대처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북한의 태도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열린 태도를 지향하는 점과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파병문제에 동의한 점 등은 정권의 정체성 문제와도 관련하여 문제가 있다고 본다. 햇볕정책의 효과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도 잘못이나, 적절한 자극이 주어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카이사르가 살던 기원전 45년의 시대와 현재의 21세기는 많은 면에서 다른 시대이기에 일률적으로 현대와 과거의 정치지도자를 재단하여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누구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하며, 특히 공적으로 큰 책임을 부여받은 사람은 그에 걸맞은 신중함과 관용,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하여야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그가 이루려는 것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는 내게 항상 인간관계에서 진리로서 지속될 만한 직관을 역사적 사실로 깨우쳐준 것 같다. 카이사르가 한 말처럼 '나 스스로가 나 자신에게 충실한 것처럼 남들도 자기생각에 충실하게 사는 것'임을 우리의 정치인들도 조금 더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진리는 당파를 떠나서 앞으로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모든 국가지도자들에게 중요한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다.

#로마인이야기#카이사르#노무현#시오노나나미#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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