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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7월부터 1999년 3월까지 이스라엘을 여행하고 키부츠에서 생활한 이야기들을 <샬롬! 이스라엘>을 통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 주)
키부츠에서는 한 달에 3일 휴가를 낼 수가 있다. 보통의 경우 휴가 3일과 안식일 등을 합쳐 4~5일 정도를 여행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예루살렘을 제일 먼저 여행한다.
나 또한 4일 휴가를 내어 예루살렘을 여행하기로 했다. 예루살렘에 하루 정도 짧은 관광을 해 본 적이 있는 제리가 가이드를 한다고 했고 신이 함께 가기로 했다. 우리는 키리앗 시모나 버스 정류장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약 4시간 정도 걸린다고 해서, 버스에서 여행용 책자를 이리저리 펼쳐 읽어보았다. 그리고 쿨쿨..z.z.z.z...
예루살렘은 국가적 차원에서도 정말 너무도 중요한 곳이며, 전 세계적으로도 유서가 깊은 곳이다. 보통의 경우 이스라엘을 찾는 외국인들은 텔 아비브로 입국하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텔 아비브가 이스라엘의 수도인 줄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텔 아비브는 이스라엘의 상업도시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이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스라엘은 각 도시별로 특성화가 잘 되어 있다. 수도, 상업도시, 공업도시, 관광도시, 농업도시뿐만 아니라 종교별로도 도시가 나누어져 있어 여행을 다니면서 그 특색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 이스라엘을 여행하는 색다른 즐거움이다.
예루살렘은 3대 종교(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가 공존하는 너무나 신비하고 아름다운 도시이다. 그만큼 예루살렘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목소리도 드높다. 예루살렘은 쥬이시들의 땅이니 우리가 계속 주권행사를 하겠다, 혹은 이슬람의 땅이니, 팔레스타인과 함께 공유하자는 목소리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동 예루살렘에 특별한 국제적 지위를 부여해 중립화하자고 주장할 정도이니 말이다.
오죽하면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까지 중재자로 나서서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중동평화협상을 풀어나가려고 할까? (물론 이 협상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결렬되었지만, 나름대로, 예루살렘의 주권문제를 논의했다는 것 자체로 높은 점수를 얻었다.)
아이고, 이렇게 길어지다간 이스라엘 체험기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제기사가 될 것만 같다. 죄송^^;;
하여튼 이 도시는 히브리어로 예루살렘, 영어로는 제리살렘, 아랍어로는 알 쿠츠라고 불리운다. 역사는 4000년도 넘었다고 한다.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그 덕에 볼거리와 갈 곳이 많은 예루살렘은 크게 신 시가지와 구 시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신 시가지는 서 예루살렘으로 불리며, 최근 텔 아비브에 있는 미국대사관을 서 예루살렘으로 옮긴다고 반짝 떠들썩했던 곳이다. 구 시가지는 동 예루살렘으로 불린다.
우리 일행은 5시쯤 예루살렘의 중앙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시골에서 한 달 이상을 생활하고서 예루살렘에 도착하니, 정신이 없다. 벌써 시골여자가 다 되었는지...
싸구려 유스호스텔이 몰려 있는 곳은 동 예루살렘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 날이 안식일이다 보니, 예루살렘의 대중교통수단은 몇몇 택시를 제외하고는 운행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가난한 여행자의 주머니에서 택시를 탈 큰 돈이 나올 리도 없고, 이 때 제리가 "걸어갈 만해요, 저번에 버스 타고 몇 분 안 가서 내린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그 말을 믿을 수밖에! (나한테는 꽤 걸을 만한 거리였지만, 건강이 허약한 사람은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걷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구 시가지까지는 천천히 걸어서 대략 1시간 정도 걸렸다.)
지도를 보면서 야포거리 쪽으로 나아갔다. 키리앗 시모나에선 잘 보이지 않던 정통 쥬이시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종교도시가 맞긴 맞는 것 같다. 한참을 걸었더니 마하네 예후다 시장이 나왔다. 마하네 예후다 시장은 우리나라 남대문시장처럼 왁자지껄하고 물건은 무지무지 싸다. 노천시장과 건물안 곳곳에도 상점이 있는데 싱싱한 과일과 야채, 양고기와 소고기의 탱탱한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가 있다. 또 쥬이시 냄새처럼 느껴졌던 향이 진한 향신료도 싼 가격에 판매된다. 우리는 씨 없는 포도와 콜라, 빵을 산 후,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걷는 동안 이리저리 목을 돌리며 구경을 한 예루살렘도 결국 사람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역사가 깊은 곳이나 성지 주변은 무지 깨끗하지만, 골목골목 좁고 냄새나고, 그냥 우리나라의 변두리 상점 같은 곳도 많고 말이다.
갑자기 깨끗한 거리로 진입을 했다. 동 예루살렘인 구 시가지로 접어드는 모양이다. 걷다 보니 꽤나 경사진 언덕길이고, 드디어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 시가지는 모두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벽은 정말 높고, 성벽 자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예술품을 바라다보는 것만 같다. 성벽에는 모두 8개의 문이 있는데, 황금 문을 제외한 모든 문은 신 시가지로 통해져 있다. 우리는 야포문을 통해서 성벽에 들어갔다.
성안에서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성안은 말 그대로 하나의 도시였다. 식당이 있고, 상점이 있고, 계단이 있고, 집이 있었다. 어릴 적 보아오던, 중세만화에 나오는 성처럼 밖은 웅장하고 거대한 성안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성안에 들어오자마자 장사꾼들이 호객행위를 한다. 어디선가 한국말도 들려오는 것 같다. "코레앙? 싸, 싸, 싸!"
정신 없이 구경을 하고 나니, 성안은 완전히 미로다. 묵을 곳을 정해야 하는데, 키부츠에 있던 영국친구가 칭찬했던 타바스코 유스호스텔은 통 나오지를 않는다. 한참을 더 걸으니 타바스코 소스(피자나 스파게티 먹을 때 뿌려 먹는 매운 소스)병이 그려진 간판이 나온다. 야, 저기인가 보다, 1층은 타바스코에서 하는 바(Bar) 겸 식당이고, 좁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방이 있냐고 물으니, 방이 있단다. 어디냐고 말하니까 옥상이란다. 옥상에 방이 있냐고 하니, 텐트 안에서 자는 거라나?
"너희들은 운이 좋은 거야, 텐트가 얼마나 인기가 많은데, 그리고 마침 3인용 텐트가 비어 있거든..."
안내를 따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설마했는데 진짜 옥상이었고, 몇 개의 텐트가 쳐져 있다. 샤워실과 화장실은 공용이고, 아침은 없다. 하루 묵는 가격은 15셰켈(당시 약 6000원 정도).
나중에 알았는데, 텐트는 인기가 없었다. 키부츠보다 더 심하게 상태가 안 좋은 매트 3개와 이불 3개를 갖다주었다. 아, 이건 또 무슨 냄새일까? 곰팡이 냄새인 것 같았다.
대강 정리를 하고 시장에서 사온 포도와 콜라, 빵을 들고 우리는 성벽을 쭉 돌기로 했다.
성벽 자체가 문화유산이지만, 성안과 바로 밖에 정말 훌륭한 문화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날은 벌써 어두워온다. 씨 없는 포도를 먹으며 저만치 지는 노을을 바라다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돈을 아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먹었던 형편없는 음식이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나 근사한 만찬이었다. 포도에는 씨도 없고, 콜라는 맛이 있고, 빵은 배를 부르게 해주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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