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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7월부터 1999년 3월까지 이스라엘을 여행하고 키부츠에서 생활한 이야기들을 <샬롬! 이스라엘>을 통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 주)
대충 저녁식사를 마치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비닐봉다리(포도 남은 것과 콜라)를 들고 다니기로 했다. 제리가 졌다. 짐꾼 하랴, 가이드 하랴, 그래도 힘들지 않게 씩씩하게 돌아다닌다. 18살 한국청년의 패기가 저런 것일까? 10대의 젊음이 부럽다.
벌써 너무 어두워져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군데군데 서 있는 가로등에 의지해 길을 나섰다. 가끔씩 거리의 부랑자들이 우리를 쳐다보는 퀭한 눈이 너무나 무섭게 느껴졌다. 성을 따라 걷는 시간은 족히 2시간이 넘었던 것 같다. 밤이지만 성벽을 따라서 볼 것들이 너무 많았다. 오죽하면 램퍼트 워크(RAMPART WALK)라고 해서 성벽을 순례하는 투어까지 있을 정도다. 야포문과 다마스쿠스 문의 입구에서 성벽 위를 올라가 한 바퀴를 둘러보는 투어이다. 구 시가지의 전망을 바라다보기에는 최고의 코스라고 한다.
지친 다리를 이끌고 호스텔에 돌아왔다. 제리와 신은 냄새나는 이불을 덮고 잔다지만, 난 도저히 그 이불을 덮을 수가 없었다. 제리와 신의 옷을 죄다 껴입고 잤다. 그래도 새벽은 너무 추웠다. 옥상이라 그런가?
토요일 아침 7시, 여전히 안식일로 인해, 하루를 걸어다닐 생각을 하니 내 무(종아리)가 처량해 보인다. 샤워를 하고, 어제 남은 음식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했다. 예루살렘의 서점은 어떤가.. 한참 둘러보고, 길을 걷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작은 볼일을 해결하기 위해 힐튼호텔에 들어갔다. 아무렇지 않은 척, 그 꾀죄죄한 복장으로 말이다.
처음 도착한 곳은 그레이트 시나고그(Great Synagogue). 시나고그란? 쉽게 생각하자면 쥬이시들의 교회, 성전이라고 보면 된다. 그레이트 시나고그는 성조지 거리, 독립 공원 맞은편에 위치해있다. 이스라엘에서는 최대의 시나고그이다. 여기에는 이탈리아 파드바의 18세기의 아름다운 '계약의 상자'가 보존되어 있는 것 외에 박물관 안에서는 이탈리아 시나고그가 재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남자는 1층, 여자는 2층으로 올라가서 예배를 본다.
이스라엘에는 크고 작은 시나고그가 많이 있는데, 안식일 밤만 되면 쥬이시들로 성황을 이룬다. 또, 근처에는 종교상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에할 슈로모의 시나고그도 있다.
슈퍼마켓에서 초콜릿과 빵을 샀다. 람반거리를 통해 국회 쪽으로 계속해서 걸어갔다. 도로 교차로의 좀 으슥한 곳에 자리를 만들어서 녹은 초콜릿을 빵에 발라먹었다.
한참을 걷다가 길을 잘못 접어든 것을 깨달았다. 거리에는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고, 가끔씩 차 한 대가 지나갔다. 꼭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황량한 들판.... 우우우.. 한참을 더 가서 고가도로 같은 것을 건넜어야 하는데 막상 가보다 보니 이상한 들판을 가로지르게 되었다. 국회를 가리키는 팻말을 보이지 않고, 다 쓰러져가는 보이스카우트 회관 같은 것이 나왔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남자 두 명하고 다니는데, 이런 곳에서 별일이 있을까?
또 한참을 걸었다. 오늘은 무언가를 보는 시간보다 걷는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다. 여행을 하는 사람에게 예루살렘에서 아쉬운 것을 찾으라고 하면 아마 안식일일 것이다. 버스가 운행되지 않으니 걷는 시간에 무리한 투자를 하게 된다. 물론 아랍인들이 경영하는 아랍버스가 운행된다고는 하지만, 운행시간과 목적지를 맞추기는 힘이 든다.
눈앞에 중세시대에나 나올 법한 성이 우뚝 서있다. 이 곳은 십자가 수도원이다. 들어갈 수 있는 곳인지, 아닌지 궁리를 하다가 내가 먼저 성안으로 들어갔다. 성안은 삭막했다. 사람도 보이지 않고, 그 때 어디선가 나타난 수도승이 우리를 안내한다. 성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해도, 성밖은 충분히 둘러보라며 우리의 긴장감을 풀어주었다.
한참을 돌아가니 이스라엘 박물관이 나왔다. 이스라엘 박물관은 본관과 고고학관 사해 사본관등 5개의 주요 전시관과 조각 정원, 어린이 놀이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때때로 박물관에서 야외콘서트도 열린다고 한다. 이 날도 마찬가지로 안식일이라는 이유로 4시에 박물관이 문을 닫기 때문에 우리일행은 사해박물관밖에는 볼 수가 없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3시여서 그런지, 우리가 잘 몰라서 그냥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입장료도 내지 않고(아무도 안 붙잡길래..) 당당히 안으로 들어갔다. 사해박물관은 이스라엘 박물관의 최대 볼거리이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사해 사본관에는 사해에서 발견된 수많은 사본들이 전시되어 있다.
발견 당시에 사본이 들어 있던 단지의 모양을 본떠서 미국의 건축가인 키슬러와 발토스가 설계했다는 이 건물은 양파를 거꾸로 얹어 놓은 듯한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두운 조명이 비춰지는 박물관 내부는 동굴을 연상시켰다. 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두루마리들은 펼치면 7미터나 되는 히브리어 성전이라고 한다. 이 성전은 기원 전 3~2세기경에 베껴 쓴 것으로 오늘날까지 발견된 성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이사야서나 시편 등 600개가 넘는 두루마리가 거의 완벽한 형태로 보관되어 있는 것을 보니 놀라울 뿐이다. 이들 사본은 1947년 여름 독립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에 사해 서북구의 쿰란 동굴에서 베두인 소년이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세계 성서학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20세기 최대의 고고학적 발견이라고 하는데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시원한(거기서 땀을 다 증발시키고 나왔음^^) 박물관은 꽤 인상적이었다. 왠지 내가 대단한 발견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시간에 쫒겨, 다른 박물관은 보지 못하고, 돈을 절약했다며 기뻐했던 우리는 다시 뜨거운 햇살 아래를 걷기 시작했고, 저 멀리서 썰렁한 건물이 눈에 들어오는데, 설마 저게 국회일까 싶었다. 이스라엘의 국회는 크네세트라고 불리우는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리나라 여의도에 있는 국회주변에는 일단 한국의 월스트리트라는 증권가가 있으며, 최신식 빌딩과 정당들이 있어 화려해 보이는 반면, 이스라엘의 국회는 박물관을 따라 난 길을 쭈욱 가면 그리 높지 않은 살색건물로써, 경찰 몇 명이 그 곳을 지키고 있었다. 조금은 실망한, 혹은 속으로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니 꼭 화려한 곳에서 일할 필요는 없겠지 생각하며, 그 앞에서 사진 한 장을 찍으려는 찰나, 경찰이 찍지 말라고 손짓을 했다. 국회는 찍으면 안 된단다.
할 수 없이 조금 돌아가다 경찰이 없는 곳에서 겨우 찍었다. 나중에 현상해보니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창살 때문에 감옥같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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