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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활이나 사회생활의 패턴이 변화하면서 어린들의 비만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어 국민건강의 주요관심사가 되고 있는 가운데에도, 변함없이 ‘밥 안먹는 아이’에 대한 부모의 근심이 줄어드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의 소아 비만 인구는 10∼15% 정도라고도 하고, 서울 일부 지역에서 15세 미만의 소아 인구 중 25%가 비만이었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지만, 아이와 실갱이 할 생각만 하면 끼니가 돌아오는 것이 두려운 부모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수치에 불과할 것이다.
성인이 되면 키나 몸무게가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덜 나가고 작더라도 아무런 문제꺼리가 되지 않는데도 유독 아이들에 대해서 만은 또래의 다른 아이와 비교하고, 키가 안크니, 몸무게가 적니 하면서 걱정을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데, 도대체 먹지를 않으려고 하는 자식을 보는 부모심정은 암담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잘 먹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 가정형편이 어려운 집은 별로 없고 대개가 중류이상의 가정이고, 어린이를 튼튼히 길러 보겠다는 열성적인 어머니들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것은 식욕부진의 가장 흔한 원인이 어머니들이 너무 먹이려는 강요(food forcing) 때문에 오는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잘 먹던 아이가 갑자기 잘 먹지 않으려 할 때는 신체적인 기질적 질병이 없는가를 살피는 것이 우선이다. 특별히 기질적인 원인이 없다면 심인성 원인, 즉 아이를 둘러싼 환경과 아이의 심리적 환경의 변화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모든 급성 또는 만성질환이 식욕감퇴를 가져올 수 있다. 급성질환으로는 열성감기, 간염, 급성위장염, 급성신우염 등이나 입안이 아파서 못먹게 되는 구내염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고, 만성질환으로는 결핵, 간염, 기생충증, 요로감염 등의 감염질환이나 특히 이유기 (6개월∼2년) 에 잘 오는 철결핍성 빈혈, 영양부족 등도 식욕을 감소시킨다. 선천성질환을 앓고 있거나 오랫동안 약을 복용하는 경우도 식욕부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기질적 원인이 없는 경우에는 운동량의 부족하지 않은지, 또는 너무 심하게 뛰어놀아 피로감 때문에 식욕을 잃은 것은 아닌지, 간식을 지나치게 많이 먹거나, 잠자리가 불편해서 수면시간이 불규칙해지고 생활습관이 불규칙해지지는 않았는지, 가족들의 식사환경이 안정적이지 못하고 변화하지는 않았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또 심리적 충격이 될만한 일, 예를 동생의 출생이나 가까운 사람, 동물 등의 죽음, 또는 이사를 가는 등의 일이 생겼을 때 일시적인 충격으로 식욕을 잃을 수도 있다.
가난해서 먹을 것을 서로 다투는 가정보다는 부유한 가정에서 많이 보이는 심인성 식욕부진은 어머니가 어린아이의 영양에 관심이 너무 많은 가정, 너무 애지중지 하게 기르는 가정, 외아들, 장남 또는 장녀 또는 막둥이, 오랫동안 아이를 못낳다가 비로소 난 아이, 부모가 나이가 많아서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경우에 많이 보게 된다.
9개월에서 3세 까지의 아이들은 억지로 먹일 경우, 정상적 반응으로 먹는 것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이는 조건 반사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즉 음식물을 보았을 때 먹고 싶다는 감정보다는 강요로 인한 불쾌감이 앞서게 되어 식사를 실제로 싫어하게 되며 식욕부진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식사시간은 즐거운 시간이 아니라 강요당하는 불쾌한 시간이고 부모와 싸우는 시간이 되어버리며, 끔찍하고 피하고 싶은 시간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유아기나 학동기의 심인성 식욕부진도 식사에 대한 강요가 기본 요인이 되어 있는 수가 많다. 또한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해 밥을 거부하는 경우처럼 부모에 대한 애정요구를 표현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안먹는 아이’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한다면, 부모들은 아이들의 성장 (체중, 키), 식욕, 식사량은 아이들마다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비만아을 보고 건강아라고 생각하는 주변의 잘못된 이야기들도 가려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특별한 원인 질환이 없다면, 부모들은 먹는 것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우선이다. 원인이 무엇이건 간에 강요된 식사는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몰라도 악순환을 만들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지만 인내가 필요하다.
"아무 음식이나 아이 앞에 놓아 주어라. 아무 말도 하지말고 30분가량 두었다가 상을 치우도록 하라. 얼마를 먹었든지 또 먹지 않았든지 상관하지 말라. 다음 식사 때까지 또 먹이려고 애쓰지 말라. 어린이가 1공기 정도를 먹는다고 2공기를 주어서 먹이려고 강요하지 말고 1/2공기를 떠주어 아이가 그것을 다 먹고 모자라서 자기가 더 달래서 먹도록 해라.”
이런 충고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혹시 영양실조라도 걸릴까 불안해서 하루를 못넘기고 만다. 그러나 심리적 요인이 원인인 경우에는 영양실조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또 아이에게 음식을 먹게 하려는 생각으로 식사시간마다 옆에서 이것저것 간섭하게 되면 오히려 아이는 식사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원칙은 있어도 왕도는 없는 것 같다. 식사 분위기를 일정하게, 그러나 즐겁게 만들어 주고 아이가 식욕을 찾을 때까지 애정과 끈기를 가지고 기다리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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