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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은 19일 오전 서영훈 민주당 대표의 사표를 수리하고 새 대표에 김중권 최고위원을 임명했다. 또 서대표와 권고갑 최고위원의 사퇴로 빈 지명직 최고위원에 김원기 고문과 이해찬 정책위의장을 새로 지명했다.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은 김중권 신임 대표는 "지역화합과 풍부한 국정경험을 바탕으로 당정관계를 한단계 발전시키는 등 어려운 시기를 타개해 나갈 수 있는 적합한 인물"이라고 임명 배경을 설명했다.

권노갑 씨의 최고위원직 사퇴에 이어 김중권 대표체제가 확정됨에 따라 이제 여권의 당정개편은 정점을 지나고 있는 듯하다.

지난 이야기이지만, 권노갑 씨의 퇴진은 사실 희생양적 성격이 짙은 것이었다. 그의 최고위원직 사퇴 여부가 당정쇄신의 본질을 이루는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소문으로 돌았다는 비리혐의가 확인된 것도 아니다. 인사개입을 했다고는 하지만, '야당시절 함께 고생한 동지들' 챙겨준 것이 어디 인사개입이냐는 항변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권노갑 씨는 대통령의 명(命)을 받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거기에는 아무런 이유가 따르지 않았다. 그가 져야 할 책임이 무엇이고, 이유가 무엇인지조차 설명되지 않은 채 그는 물러나야 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물러나야 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이미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그 이유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구시대 정치의 긴 터널을 지나온 그에게는 구정치의 어두운 그늘이 너무도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의 몸에는 주군(主君)에게 튀었어야 할 흙탕물까지도 범벅이 되어 묻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가리켜 가신(家臣)정치라 했고, 그것이 불가피했든 아니었든간에 이제는 그 청산이 시대적 요청으로 자리하고 있다. 몇몇 가신들에 의존하는 정치로는 오늘의 난국을 풀어나갈 수 없다는 것이 사회적 공감대와도 같은 것이었다.

권노갑 씨 퇴진 여론에 담겼던 메시지는 분명 여권의 자기개혁, 그리고 쇄신에 대한 요구였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그를 퇴진시켜가면서까지 이루어지는 당정개편이라면, 김 대통령은 그의 희생(?)이 헛되지 않을 만큼의 성의를 보여 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새 대표에 집권 전반기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김중권 씨가 임명되었다는 소식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혼란을 안겨주고 있다. 그의 경력이나 성향을 놓고 보았을 때, 과연 개혁을 내세운 집권당의 얼굴로 적합한가라는 의문이 따른다.

김중권 대표는 6공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낸 대표적인 구여권 인물이다. 6공인물이라는, 겉으로 드러난 경력만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는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 재직중 5-6공 세력과의 부적절한 화해를 도모하는 등, 국정의 방향 설정에 있어 개혁보다는 안정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 개혁을 약속한 청와대의 조타수로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리고 정치권 사정(司正), 동진(東進)정책 추진과 관련하여 야당의 격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 전반기, 그러니까 힘을 갖고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던 시기에 방향설정을 잘못한데 대한 책임의 상당 부분을 그가 져야 한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은 환경에 맞추어 바뀔 수 있는 것이니, 그렇다고 치자. 정작 우려되는 것은 다른 문제에 있다. 김 대통령이 김중권 대표를 기용한 데에는 김심(金心)에 대한 충직성이 높이 평가되었을 것이라는 우려이다. 두 정권의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낸 그인지라,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대통령의 의중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온 것이 그동안 김중권 대표가 보여준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또 다시 대통령의 뜻에 충실한, 청와대만 바라보는 집권당 대표가 생겨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그렇게 될 때 당정쇄신의 구호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고, 집권당의 무기력증은 치유불능 상태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권노갑 씨의 퇴진과 김중권 대표의 기용. 일관되지 못한 이 두 가지 일의 의미를 평범한 머리로 연결시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권노갑 씨를 퇴진시킬 정도의 결단을 새 대표 기용에서도 보이지 못한 점이 못내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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