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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마이뉴스 노순택 | 노무현. 그는 지역주의로 얼룩진 한국정치에서 지역주의와의 싸움을 위해 몸을 던진 보기드문 정치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1992년 이래 노무현 장관은 부산지역에서 지역감정의 벽을 넘기 위한 도전을 거듭했지만, 결과는 매번 참담한 패배였다. 그에게는 DJ 아래에 있다는 꼬리표가 따라다녔고, 부산 민심은 DJ 아래에서 정치를 하는 그에게 어김없이 배패를 안겨주었다. 1996년 노 장관이 DJ를 벗어나 있을 때도 부산의 'YS 바람'은 그의 승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물론 그의 잇달은 도전에는 정치인으로서 부산지역의 대표성을 획득하겠다는 정치적 야심이 깔려 있었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적 성장을 꿈꾸는 것을 탓할 이유는 없는 것이고, 어쨌든 그는 와신상담, 차기 대권도전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한 노무현 장관이 최근 들어 잇달은 파문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민주당의 김중권 대표를 '기회주의자'라고 비판했던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은 23일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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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후퇴'는 문제의 발언 이후 여권내의 기류가 자신에게 부담스럽게 돌아가는 데 대한 진정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아래에서 일하는 현직 장관이 김 대통령이 임명한 당 대표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나선 데 대해 여권 내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민주당 박상규 사무총장은 "공무원 신분으로 있으면서 집권당 대표에 대해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면서 "그것은 임명권자인 김 대통령에 대한 도전행위"라고 노 장관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노 장관 발언 내용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현직 장관의 신분으로 지금과 같이 여권이 어려운 때 그같은 발언을 한 데 대해 여권 내의 비판적 기류가 확산되자, 노 장관은 일단 사과성명을 내며 파문의 진정을 시도한 것이다.
장관직 취임 이후 노 장관의 정치적 발언이 이번만은 아니었다. 얼마전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노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의 당 총재직 사퇴를 촉구한 것으로 보도되었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사태가 진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인터뷰는, 당사자의 의도와 같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노무현의 대권도전 구상'이라는 부제를 달고 기사화되었다.
이 인터뷰 파문이 사실과 다른 보도에 따른 일종의 해프닝이었다면, 김중권 대표에 대한 비난 발언은 작심한 발언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노 장관의 발언이 보도된 이후에도 노 장관의 측근들은 그의 발언이 소신발언임을 강조하기도 하였고, 결코 술에 취해서 한 발언이 아님을 밝혔다. 결국 마음먹고 한 발언이라는 것이었다.
김중권 대표를 비난한 노 장관의 발언에 대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모두가 위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우리 정치풍토에서, 자신의 소신을 거리낌없이 말하는 노 장관이야말로 용기있는 사람이라는 찬사도 분명 이유있는 것이다. 여권 내의 많은 사람들이 여당 대표에 김중권 씨가 임명된 데 대해 못마땅해 하면서도 나서서 뭐라 하지는 못하는 상황에서, 그를 향해 '기회주의자'라는 직설적 비난을 퍼부을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노 장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 아니었던가. '국민의 정부'가 기로에 서 있는 지금의 시기에 굳이 5-6공을 거친 인물이 집권당의 대표가 된 사실을 거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어찌 그만의 생각일까.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노무현 장관이 평범한 정치인이 아니라 이미 대권도전 의사까지 밝혀놓은 정치인인 이상, 그에게는 좀더 넓고 깊은 시야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노무현 장관은 그에 대한 호칭이 말해 주듯이, 정치인이기 이전에 이 나라의 해양수산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이다. 그런데 지금이 어떤 때인가. 경제사정은 나날이 악화되어 가고, 국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우리 해양수산업과 어민들의 생활도 다르지는 않다. 그런 판국에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노 장관이 염불보다는 잿밥에만 관심이 가 있는 것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적절치 않은 일이다.
본인의 의도야 어떠했든간에 노 장관의 최근 언행들은 그가 대권정치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정치인 노무현이 자신의 소신을 말하는 데야 누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겠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한 부처를 책임지고 있는 장관의 몸이다.
저렇게 대권도전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야 어떻게 제대로 국정을 챙기겠는가라는 일각의 우려도 이유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곳저곳 기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대권도전 의사를 밝히는 일 이전에, 자신이 몸담고 있는 '김대중 정부의 위기'를 걱정하는 일이 우선이어야 했다.
그는 혹시 장관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을 오가는 이중적 역할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혹여라도 장관의 자리를 단지 대권경쟁의 발판으로 활용하려는 생각이라면 그것은 전혀 노무현답지 않은 모습이다.
무엇이든지 깨끗하고 분명한 것이 좋다. 노 장관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옳다. 장관으로 일하는 동안은 대권 행보를 자제하든지, 아니면 장관직을 내놓고 대권정치에 나서든지 하는 선택이 그것이다.
노 장관은 이번 사과성명에서 당과 대통령에게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사과해야 할 대상은 국민이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이 정부는 위기에 봉착해 있는데, 현직 장관마저도 대권경쟁에 몰두하고 있는 것같은 모습으로 비쳐졌을 때, 국민들이 갖게 되는 우려가 어떤 것인가를 노 장관은 마땅히 헤아렸어야 했다. 그가 장관직의 정치적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대권도전 선언을 하고 다니는 것이 그렇게 급할 이유는 없지않은가.
이러한 주문이 끝내 부담스럽게 받아들여진다면 노 장관은 지금이라도 장관 자리를 털고 나와야 한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이다. 노 장관의 보다 책임있는 처신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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