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罪)가 있으면 반드시 벌(罰)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해선 안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워할 수밖에 없는 죄와 미워할 수 없는 딱한 죄가 있어, 그 딱함을 헤아려 줄 것을 간청하는 탄원서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평화를 여는 마을〉에 입주한 가정 가운데 너무 딱한 처지의 두 내외분이 계십니다.
5년째 중풍과 천식, 당뇨 등의 합병증을 앓고 있는 김형규(60·경남 하동출신) 씨, 그리고 거동조차 불가능한 남편 병 수발과 가정의 생계를 도맡은 부인 정일순(55) 씨 내외. 시장에서 비닐봉지를 팔아 근근히 생계를 잇던 정씨는 최근 남편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곁을 떠날 수 없어 생계방편마저 끊긴 상태입니다.
이런 와중에 큰아들(31)이 교통사고로 수원교도소에 수감되면서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손녀 지연(8살) 양의 양육마저 떠맡아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손녀 양육이야 밥숟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될 일이지만 추운 겨울 교도소에 갇힌 자식놈의 처지는 밥숟갈 입에 넣어도 넘길 수 없는 눈물 밥인 것입니다.
수소문한 결과 큰아들은 하동고등학교를 전교 수석으로 졸업한 전도가 밝았던 청년이었으나 섣부른 결혼과 함께 아내였던 여자가 세 살 된 지연이를 버리고 달아나는 바람에 인생의 좌절을 겪었다고 합니다.
대개, 불운한 사고로 자식이 구속되면 어머니의 할 일은 피해자를 찾아가 합의를 보고→ 일 잘 보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교도소에 면회가 영치금을 넣어주며 '걱정마라 이 에미가 곧 꺼내주마'라며 자식을 안심시키는 일입니다.
하지만 중풍에 누운 성성치 못한 남편과 어미 없는 손녀를 돌보는 정일순 씨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당장의 끼니 걱정과 남편 병수발 그리고, 교도소에 갇힌 자식걱정에 심장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일 정도에 불과합니다. 다만 다행스러운 것은 큰아들이 일으킨 사고가 큰 인명피해가 아닌 가벼운 부상에 그쳐 피해자와 합의 받았다는 소식이 조금이나마 염려를 덜어주고 있습니다.
지난 1일 미워할 수 없는 죄를 선처해달라는〈탄원서〉를 담당 검사님께 띄웠습니다. 격랑에 휩쓸린 가랑잎 같은 처지의 김씨 아저씨네 큰아들 신세를 살펴달라고, 그가 교통사고를 내고 엉겁결에 달아난 것은 분명한 죄이지만 돌봐야 할 어린 딸과 병환에 시달리는 부모의 절박함을 볼 때 검사님의 선처가 너무 절실하다고 호소했습니다.
"사방팔방 꽉 막혀 어디로도 헤쳐나갈 길이 없는 이 가정이 검사님의 선처로 김아무개 군이 죄를 뉘우치고 사회에 복귀하여 어린 딸을 돌보고 병든 부모님을 봉양하는 자식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다면 저희 주민들은 너무 기쁠 것 같습니다"라고 간청했습니다.
덧붙여 "이웃의 불행이 마을 주민 모두의 불행이 될 수밖에 없는 마을공동체로써 감옥에 갇힌 아들은 주민들의 형제요, 자식일 수밖에 없으며, 또한 애타는 어머니의 마음은 모두의 안타까움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 마을에 평화의 꽃이 피고 화합의 소리가 움틀 수 있도록 감히 검사님의 선처를 거듭 간구 합니다"라는 탄원서를〈평화를 여는 주민 일동〉의 이름으로 띄웠습니다.
오늘(13일) 큰아들 첫 번째 재판이 16일 열린다고 알려온 정일순 씨는 "만고에 어쩔 도리가 없다"고 울먹입니다. 생계는 어쩌고 있냐고 물었더니 "대구의 동생 집에 갔다왔는데 돈 소리가(돈 빌려달라는 소리)가 안나와 그냥 집에 왔어요"라고, 또 아저씨는 어떠냐고 했더니 "맨날 그래요"라며 말끝을 잇지 못했습니다.
탄원서 한 장 써드린 일밖에 없는 저에게 황송한 목소리로 안절부절 못하는 이웃 아주머니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사실에 저 또한 절망스럽습니다. 변호사만 산다면, 돈만 있다면 금보석으로 나올 수 있다는 주변의 귀띔이 더욱 원망스럽니다.
죽은 사람도 살리고 살 사람도 죽인다는 <돈> 죄가 하늘 같아도 풀려나고 죄가 지푸라기만 해도 갇힌다는 <돈> 그 위대한 돈이 없어 안절부절 어쩔줄모르는 어머니를 망연히 지켜보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다시 <탄원서>를 띄웁니다. 누가 이 어머니를 저 절망의 깊은 수렁에서 건져주시겠습니까?
덧붙이는 글 | 정씨 아주머니를 위해 법률적으로 도움주실 분 계시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연락을 기다리고 싶습니다.(019-680-7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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