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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한참 게으름을 피우다가 두 아들과 세현·세원 형제를 거느리고 섬진교 다리 건너 경남 하동 읍내 목욕탕에 갔습니다. 시골 목욕탕 주인은 사내 다섯이 한꺼번에 입장하자 반가이 맞으며 기꺼이 천원을 깎아 주었습니다.

아들을 둔 행복은 이런 건가 봅니다. 어김없이 자신을 닮은 아들과 함께 부끄럼도 없이 홀라당 옷을 벗고 함께 목욕탕에 들어가는 것, 이것은 추억을 남기는 일, 훌쩍 자란 자식의 몸무게를 달아보며 "우리 아들 많이 컸네"하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 것, 이문도 없이 밑천만 잡아먹는 자식 농사의 희락은 이렇듯 유치한 것인 듯 싶습니다.

육학년 큰아들 승이는 목욕탕 가는 것은 즐거워하지만 육중한 자신을 저울질하려 하질 않습니다. 그저 남몰래 몸무게를 달았다가도 잽싸게 몸을 비키곤 합니다. 곁눈질로 재어보았더니 아뿔사 64kg... 삼겹살로 축 처진 뱃가죽과 출렁거리는 젖가슴, 주변에서 비만증 초기라며 경고하지만 저는 끄덕도 하지 않습니다. 저렇게 잘먹고 잘 싸고 잘 자는 데 무슨 탈이 있을라고?

삼학년 솔이는 32kg로 엉덩이가 통통하지만 오학년 세원이는 솔이 보다 가벼운 30kg로 어깨뼈와 날개죽지가 튀어나왔습니다. 승이와 같은 학년인 세현이도 키만(159cm) 훌쩍 컸지 몸은(42kg) 가볍습니다. 두 아이의 마른 모습이 맘에 걸립니다.

고추 네 놈을 대동하고 탕으로 들어갔습니다. 누가 오래 잠수하나 시합도 하고, 냉탕을 함께 첨벙거리고... 물 속에 잠수해서 고추를 잡으며 희희낙락하는 재미, 아이들을 등에 업고 헤엄을 치거나 엉덩이를 잡고 미사일처럼 발사해주면 물먹은 듯 '허푸허푸' 하면서도 "또 해주세요!"하며 벌거숭이 웃음을 짓는 아이들. 네 놈과 함께 첨벙거리는데 어떤 이가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머쓱한 표정으로 냉탕에서 나왔습니다.

냉탕·온탕을 번 가르며 불린 때를 이태리 타올로 빡빡 문댔습니다. 진이 빠지도록 죽치면서 한 알갱이의 때도 남기지 않으려는 긴 시간 목욕법은 유년시절 일 년에 서 너 차례밖에 못 가던 목욕습관에서 비롯된 듯 싶습니다. 목욕이 끝난 뒤에 아릿한 쓰라림이 찾아올 정도로 문대는 목욕법은 쉽게 고쳐지질 않습니다.

눈여겨보던 전용 때밀이 판이 노는 틈을 이용해 두 아들을 불러 눕혔습니다. 아들 둔 행복도 있지만 때를 벗길 때는 장난이 아닙니다. 큰아들의 육중한 몸매를 밀 때는 면적과 부피만큼 힘겨움도 비례했고 "아빠, 내 손이 할아버지 손이 됐어요"라고 조막손을 내밀며 웃는 둘째의 때를 밀 때는 콧노래가 절로 나왔습니다.

자식의 몸 구석구석을 밀면서 이놈이 내 핏줄이구나! 하는 흐뭇함, 이렇게 컸구나 하는 대견함, 잘도 벗겨져 나오는 때조차 정겹습니다. 때밀이 못지 않은 실력으로 앞으로 눕히고 뒤로 젖히며 두 아들의 때를 민 뒤에 세원이를 불러 눕혔습니다.

두 아들과 달리 앙상한 세원이는 어색한 듯 부자연스런 자세를 취했습니다. "어, 이 놈 봐라! 몸을 눕혀" 하고 엉덩이를 찰싹 때리자 "헤헤"하며 긴장을 풀었습니다. 때를 밀면서 생각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살았다면 얼마나 살가운 몸뚱일까! 하는 생각에 콧날이 시큰거렸습니다.

얼마 전 집에서 두 아들을 씻기는데 세원이가 문밖에서 한참이나 기웃거렸다고 했습니다. 몸을 씻기며 실갱이를 벌이는 부자의 정겨운 소란에 귀를 기울였다는 세원이의 모습을 아내로부터 전해듣고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았습니다. 아, 그랬구나. 이놈이 세상 떠난 아버지의 손길을 그리워하고 있구나. 홀로 두 아들을 키워야하는 긴장감으로 엄하게 단속하는 엄마를 향해 아빠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며 반발했구나.

키가 훌쩍 큰 세현이가 마지막 차례였습니다. 이놈 역시 어색한 자세였습니다. 이런 놈을 다루는데는 저도 재간이 있습니다. 일단 곱지 않은 소리로 군기를 잡은 뒤 부드럽게 때를 밀며 친근한 목소리로 몇 가지 이야기를 건네면 편한 자세로 몸을 맡긴답니다.

네 아이의 때를 밀고 나자 맥이 풀렸습니다. 네 놈을 해치웠다는 개운함, 아이들은 어서 집에 가자고 안달입니다. 그럴 법도 합니다. 목욕탕에 온지 두 시간 반, 음료수를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에게 "여기는 비싸니까, 밖에서 사줄게"라고 달랜 뒤 밖으로 나오니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렸습니다.

인근 마트에서 산 음료수와 빵을 사이좋게 나눠먹으며 돌아오는 목욕재계한 귀가길, 멀지 않은 하동과 섬진강에서 바라 본 '평화를 여는 마을' 불빛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개운하게 켜졌습니다.

평온한 일요일의 섬진교를 건너면서 아버지의 등이 왜 넓어야 하는지 어렴풋하게 깨달았습니다. 때를 밀듯이 함께 밀고가야 할 이놈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등 좁은 아버지 노릇, 밤하늘 멀리 세원이 아버지가 '우리 두 아들 잘 좀 부탁합니다'라고 당부하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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