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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암, 은혜를 갚아야지 그럼 그래야 쓴 것이여! 은혜를 모르면 사람이 아니여, 어서 가세! 어서 가세!"

칠순을 앞둔 부녀회장 손순덕 어머니는 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일손을 보태러 가자고 귀띔하자 손뼉을 쳤습니다. 작년 한해 집 짓는데 신명을 다한 탓에 아직도 뼈가 아프다고 하면서도 사람 도리를 해야 한다며 기뻐했습니다.

레미콘 운전기사인 진규 아빠는 회사의 엄포를 뿌리치고 월차휴가를, 중고타이어 가게를 운영하는 인호 씨는 아예 가게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백혈병 처제로 마음 고생한 갑종 씨 부부, 두 아들을 홀로 키우는 세현이 엄마, 칠순을 앞둔 최정부 어르신, 홀아비인 영호 아빠, 빚더미에 아직도 힘겨운 수녀 씨 등은 열일을 제쳐놓고 모였습니다.

집 없는 설움을 면한 '평화를 여는 마을' 주민 열 한명이 제헌절을 이용해 경남 진주시 명석면 외율리 일대에 짓고 있는 '평화마을'에 일손을 보태러 갔습니다. 부녀회장은 작업현장에 전달할 김치를 한 통 담아 챙겼고, 혜진이 엄마는 밑반찬에 쓰라고 감자 한 박스를 사는 등 적은 정성을 모았습니다.

평화를 여는 마을을 건축한 '한국 사랑의 집짓기운동연합회(이사장 정근모)'는 국제 해비타트(Habitat For Humanity intemational)와 함께 이 운동의 주도자인 지미카터 전 미대통령이 참여하는 '지미 카터 특별건축사업'을 펼칩니다.

오는 8월 5일부터 11일까지 일주일 동안 국내외 자원봉사자 9000여명이 참가해 120채의 집을 짓게 될 '지미 카터 특별건축사업'은 충남 아산시 도고면,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 경남 진주시 명석면, 강원도 태백시 화전동, 경북 경산시 하양읍 등 5곳에서 기초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모두 12채를 짓는 진주 '평화마을'에 도착한 광양 평화마을 주민들은 곧 바로 작업에 투입되었습니다. 남자는 담장 터 파기 작업, 여자는 벽돌 나르기를 맡았습니다. 작년에 갈고 닦은 일솜씨를 발휘한 주민들이 오전이 가기도 전에 터파기 작업을 끝냈습니다.

만족한 표정을 짓던 현장 간사님은 다시 외부 합판작업을 맡겼습니다.
간단한 작업설명을 들은 주민들은 못주머니와 망치를 솜씨좋게 휘둘렀습니다. 밑에서는 치수에 맞게 재단을 하고 위에서는 '뚝딱뚝딱' 못을 박는 일손들, 일머리를 놓고 생각이 다른 최정부 어르신의 고함이 간혹 터져 나왔지만 손발이 척척 맞았습니다.

진주 평화마을 입주예정자인 이상익(31·용접공) 씨는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마을운영위원회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공동관리비는 얼마나 내는지, 마을 구성원들의 연령층은 어떻게 되는지...

딱히 도움 줄 말은 없었지만 마을 운영의 어려움과 좋았던 일 등의 짧은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난생 처음 갖는 내 집 마련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 내집에 들어 앉아 쓸고 닦다보면 지난 설움이 아무렇지 않게 지워진다고...

한국 해비타트 마을 입주자는 500시간 이상의 노동과 주택원가 무이자 분할상환의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광양 평화마을 주민들이 그랬듯이 진주 평화마을 주민들 또한 내 집 마련의 기쁨으로 한 여름 뙤약볕 노동을 잘 해내고 있었습니다.

진주 평화마을 입주자 가운데 구두닦이를 하는 농아부부와 최고연장자인 김대웅 씨의 노동시간이 1000시간을 육박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특히 농아부부는 집짓기 노동을 통해 아들과 화해가 이뤄지는 등 가정회복이 순조롭다는 이야기는 듣고 해비타트 운동의 귀한 열매가 이루지고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진주 평화마을 실행위원장 염경호(63) 목사님은 사모님과 아들과 딸 등 온 가족을 집짓기 운동에 투입했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작업에 매달린 염 목사님은 주택원가를 낮추기 위해 못 하나, 합판 한 장 함부로 낭비하지 않도록 쓴소리 잔소리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삶의 변화가 가장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공동체 생활에서 갖춰야 할 모습을 훈련할 수 있도록 매주 토요일마다 모여 의논하고 교육합니다. 사람이 서로 모여 사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아시잖습니까?

사람의 삶이 각본이나 목적대로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평화마을 주민들은 목사님의 말씀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평화마을'은 평화를 지향하는 마을이지 평화를 달성한 마을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늘상 이렇게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노동을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향기 못지 않은 땀내로 귀가 길에 오른 주민들은 몹시 기쁜 표정으로 노동의 기쁨을 토했습니다.

갑종 씨는 말합니다.
"이 기쁨 아무도 모를 겁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즐거워서 하는 것이 해비타트의 노동인 것 같습니다."

부녀회장 어머니는 "아따 뿌듯하다, 아따 뿌듯하다"를 연발했고 진규 아빠는 "누가 일당을 준다면 회사를 빼먹고 땅파러 갔겠냐"고, 세현이 엄마는 "어서 빨리 자리잡아 더 많은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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