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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나 중풍환자에 대한 재활이나 사회적 배려가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혈액순환장애'란 말 만큼 환자들을 유혹하기 좋은 말이 없는 것 같다. '중풍이나 치매에 걸리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죽음보다도 더 두려운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혈액순환장애 개선'을 내세운 약이나 치료는 그 성분이나 효과에 상관없이 돈벌이가 되는 장사이고, 또 웬만한 건강식품, 개인건강 보조기구 등에는 어김없이 이 말이 따라 붙는다.

사실 의사들도 마땅히 설명하기 어려운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 수동적으로 이런 용어를 사용하곤 한다. 환자들이 먼저 '혈액순환장애 아닌가'하고 물어오는 경우, 굳이 그걸 부정할 만한 단서가 없을 때 말이다.

그런데 '혈액순환개선제'라는 광고에 흔히 등장하는 증상이 '손발저림'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손발저림은 당연히 혈액순환이 문제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양의학적인 견지에서는 혈액순환장애 자체로 손발저림이 온다고 설명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의학적인 측면에서 손발이 저리는 원인은 뇌를 포함하는 신경계, 순환계, 골격계, 내분비계 등은 말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심리적 요인으로도 올 수 있다. 그런데도 손발이 저리는 증상에 혈액순환개선제가 만병통치약처럼 인식되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한의원에서 '혈액순환장애'라고 진단했다고 하며 혈액순환개선제를 찾는 경우도 흔한데, 한의학은 그 나름의 체계와 개념이 있는 것이고, 이는 양의학적 개념과 동일하지 않다. 이렇게 양한의학을 넘나들며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혈액순환장애'는 과연 어떤 질병인가?

양의학에서 혈액순환장애가 증명된 질병에는 혈전으로 인해 뇌혈관이 막히는 뇌혈관장애(중풍)와 심장의 관상동맥이 막히는 심근경색증, 동맥경화성 말초혈관질환(급성동맥폐색, 버거씨병 등), 그리고 혈전이 생기기 쉬운 여러 상황에서 주로 하지의 정맥에 혈전이 생겨 막히는 심부정맥혈전증과 이로 인한 폐동맥색전증, 그리고 감염, 종양 등에 의해 전신의 혈관에 발생하는 혈관내응고증 등이 있다.

이러한 혈액순환장애의 경우, 단순히 손발저림 증상을 일으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손발저림은 사실, 손이나 발의 피부 밑에 존재하는 말초신경에 염증이 생긴 '말초신경염'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특히 당뇨를 오래 앓은 환자라면 당연히 이를 의심해봐야 한다. 그리고 다음으로 흔한 것으로는 목이나 허리의 디스크 돌출로 인한 신경압박에 의한 증상인 경우다.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뇌졸중(중풍)에 의한 손발저림인 경우는 무엇보다도 갑자기 증상이 나타나고 양쪽이 동시에 나타나지 않으며, 얼굴, 손, 발에 운동장애, 언어장애 등을 동반할 수 있다.

말초혈관의 순환 장애가 있는 경우에는 팔목이나 발 등 부위의 맥박이 약해지거나 찬물에 손을 넣으면 손과 손가락이 하얗게 변하면서 저림과 함께 통증을 느끼는 증상이 동반될 수 있다. 또한 척추질환은 일반적으로 증상이 척추부위에서 팔다리 쪽으로 뻗치는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당뇨병 등과 같이 혈관에 동맥경화를 유발, 악화시키는 병을 가진 경우는, 말초신경염뿐만 아니라 말초혈관의 협착이나 실질적인 순환장애에 의한 증상이 생길 수 있는데, 이럴 때의 증상들은 말 그대로 혈액순환장애라 할 수 있다.

최근에 우리나라의 당뇨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300만명 이상이 당뇨병이며 이들의 대부분이 본인이 당뇨병이 있는 것을 잘 모르고 있다고 한다면, 실제로 손발저림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서 당뇨병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혈액순환장애를 예방하는 것은 심혈관질환을 예방하는 것과 같다. 심혈관질환의 위험요인인 담배를 끊고, 콜레스테롤을 낮추며, 적절한 운동과 체중조절, 혈압이나 당뇨의 치료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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