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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유난히 붉게 물드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마당 가상이에 아이 키만한 그 나무를 나는 붉나무나 드룹나무로 여겼습니다. 꺽다리처럼 호리호리한 몸통에 위에만 더벅머리 같은 잎사귀를 얹고 있는 그 나무를 위해, 나는 열심히 풀도 매어주고, 가물 때면 물도 뿌려주었지요.
어느 날인가 그 나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변을 찾아 보니 그 나무는 뿌리를 뽑힌 채 산비탈에 던져져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마실온 이웃 사람이 옻나무라고 뽑아버렸다는 것입니다. 나는 비로소 그 나무가 옻나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멀쩡히 살아 있는 나무가 말라죽어가는 걸 그냥 지켜볼 수가 없어, 나는 그것을 제자리에 다시 심었지요.
가족들 가운데 옻을 타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치악에 사는 분이 옻으로 고생을 겪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동네 사람들 술자리에 불려 갔다가, 얻어 먹은 정체 모를 시커먼 고기 때문이라고 했지요. 깊은 산속에서 기른 흑염소 고기라길래 생각없이 먹었는데, 그날 저녁, 갑자기 온몸에 가렵고 붉은 반점들이 돋아나기 시작하여 결국 그날 밤으로 벼원에 실려 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그 정체모를 시커먼 고기는 옻의 진액을 넣고 끓인 개고기였답니다.
옻이 열을 일으켜 내장을 튼튼히 한다는 속설에 요즈음 옻달이니, 옻개니 하는 것을 보양식으로 먹는 사람들이 많다 하네요. 그이들 말에 의하면, 내장에 코팅을 한다고 하는데, 세 번만 먹으면 어지간히 술을 마셔도 속이 부대끼지 않고, 속이 찬 사람들에게 특히 좋다고 했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지만, 일부러 보약 삼아 옻을 오르게 하는 사람도 있다 합니다. 온몸에 옻이 심하게 오를수록 약효도 크다고 믿는 그들은, 아예 수도꼭지 밑에 앉아 온몸에 물을 뒤쓰며 그 견딜 수 없는 가려움과 화끈거리는 열을 이겨낸다고 하는데, 세 번만 그 짓을 겪으면 더 이상 옻을 타지 않는다며 스스로 그 고역을 감당한다니, 어지간한 분들이지요.
그 바람에 산마다 옻나무들이 수난을 겪고, 특히 참옻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옻을 심하게 타는 사람들은 그 근처는 물론이고, 옻칠을 한 칠기나 밥상만 마주해도 옻이 오른다 합니다. 다행히 옻을 타지 않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물을 갈아 먹거나, 풀섶에 가면 두드러기나 심한 가려움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럴 때면 할머니께서는 도꼬마리라는 풀을 베어다 가마솥에 삶은 물로 몸을 씻겨 주었지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심하던 가려움이 가라앉곤 했습니다.
시골에 들어와 살면서 매년 풀독 때문에 병원을 찾곤 합니다. 언젠가 닭장을 치우다 반바지 밑으로 따끔하는 느낌이 들어 모기가 물었다고 여겼는데, 순식간에 허벅지로부터 오돌도돌한 것들이 돋으며 따끔거리고 가렵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긁적일 때마다 혈관을 타고 허벅다리로부터 허리, 팔죽지까지 번지는데, 무어라고 그 괴로움을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마을의 병원을 찾으니, 풀독이라며 주사를 놓아주었습니다. 의사 말로는 풀에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뿜는 독성물질이 있답니다. 이제 도꼬마리 풀을 삶아서 발라주시던 할머니도 안계시니 올 여름에도 그 지독한 풀독을 어찌 피해 나갈까 걱정이 앞섭니다.
풀섶에 가까이 할 일이 많은 시골살이에서 비켜가기 힘든 일이지만, 풀을 벨 때는 가급적 긴 팔옷을 입고, 옻을 타는 이들은 집 주변의 옻나무를 피해야 할 것입니다. 마을 사람 말로는 벌레에 물리거나, 풀독이 오르면 질갱이 잎을 짓찧어 바르면 가려움이 가라앉는다고 합니다. 풀로 풀의 독을 이겨내는 지혜가 신기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