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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규 기자의 '전용학과 이완구의 이름을 기억하자'란 <오마이뉴스>기사를 잘 읽었다. 그들을 삼국지의 여포에 비유하여 비판한 것은 적절하였다. 그들은 마땅히 신념과 정책을 가지고 있지 않는 탐욕스런 정치인으로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기사에 인용된 조선일보의 만평을 들여다보면 착잡한 심정이 된다. 사실 조선일보 만평의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만평에 그려진 것은, 인정하긴 싫긴 하지만 현실 그 자체라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인 중에서 일관된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행동하는 정치인을 참으로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전용학과 이완구가 먼저 깃대를 들었기 때문에 욕먹는 것이지, 앞으로 이들이 닦아놓은 '배신의 길'로 얼마나 많은 정치인들이 몰려갈지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 아마 크게 표나지 않게 권력이 있는 곳으로 슬그머니 옮겨갈 궁리나 하고 있을 금배지들이 꽤나 많을 것이다.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이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크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가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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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명망을 얻은 정치 지망생들이 정책과 소신보다는 공천을 주는 곳으로, 당선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찾아다니는 현실은 그렇다치더라도 공천을 받아 당선된 자신의 정당을 버리는 일이 밥먹듯 되풀이되는 이해되지 않은 일들이 일상화되어 있는 곳이 한국의 정치 현실인 것이다. 특별히 전용학과 이완구가 남들보다 더 소신과 원칙이 없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작금의 우리 정치판에서 한나라당이 국회 과반수를 넘기며, 차기 정권이 유력해지자 한나라당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스런 현상인 것이다. 이인제 의원은 98년 한나라당의 대권후보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올해에는 한나라당을 수구적인 반개혁정당으로 비판하면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섰었다.

98년 이회창 후보를 비난하며 탈당했던 박찬종씨가 올해 한나라당을 다시 입당하며, 이인제 후보는 원래 한나라당에 있어야 할 사람이라며 자신이 이인제 의원을 데리고 오겠다는 코미디같은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대통령 후보조차도 정당을 넘나드는 것이 한국적 정치 현실이다. 전용학과 이완구의 행보에 놀랄 게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문제는 오히려 국민들에게 있다. 전용학과 이완구가 한나라당으로 간 것이 다음 총선에서 다시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위해서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들이 지역구민의 선택을 배반했기 때문에, 또 소신과 원칙을 저버렸기 때문에 다음 총선에서 낙선할 것 같은가? 아니다.오히려 거대 정당의 지원에 힘입어 당선 확률이 더 올라갔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니 부산에서 몇 번씩 패대기쳐지면서도 악착같이 원칙과 소신을 지켜온 노무현 후보같은 사람이 별종 취급받는 우리 정치판이 아니던가? 국민들이 막무가내식 지역감정과 '반DJ정서'같은 막연한 악감정을 가지고 정치판을 바라보는 한에는 우리 정치에 희망이 없다. 국민들이 '자전거일보'들이 보여주는 왜곡되고 뒤틀린 정치 현실만을 보는 한에는 '전용학과 이완구'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전용학과 이완구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이 풀어야 할 문제이다. 이런 '여포'같은 정치인들을 다음에도 당선시켜준다면 아무리 욕먹어도 양지만을 좇는 정치인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전용학이나 이완구는 국민들의 뺨을 올려붙인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국민들은 뺨을 맞고도 화를 낼 줄도 모른다. 그리고 금방 잊어버린다. 그러니 밤낮 국민들은 표주고 뺨맞는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용학과 이완구를 비난하지 말자. 대신 그들을 그렇게 내몬 우리 자신들을 비판하자. 번번히 소신있고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을 내친 우리 국민들이, 지역 감정과 특정 정서에 따라 막무가내로 표를 줘왔던 국민들이 스스로 자괴감에 몸을 떨어야 마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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