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언론의 대대적 보도 이후 집권 민주당을 뒤흔들었던 '살생부' 파문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천의 철공소 노동자이자 노사모 회원인 왕현웅(29)씨는 21일 저녁 <오마이뉴스> 기자들을 만나 '살생부' 작성 경위와 그 동안의 사태추이를 바라본 심경을 담담히 설명했다.
| "인적청산 없다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 강수연 PD
'정계은퇴'는 하지 않고 '총선을 준비'하겠다는 왕현웅씨. 그는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검찰에 가는 것은 두렵지 않고 '조중동'과는 인터뷰하지 않겠다고 한다. |
왕씨는 1시간 동안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당선자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원칙이 없고 잇속만 차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앞줄에 갈 사람, 뒷줄에 갈 사람 뒤죽박죽 되어 있어서 반노파를 비판하는 인터넷상의 글들을 종합해 작년 12월25일 2시간만에 작성해 노하우 게시판에 올린 뒤 27일에 보강해서 올렸다"고 밝혔다. 왕씨는 '공신' '역적 중의 역적'이라는 용어도 TV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그는 "그때는 대선이 끝난 후라 글을 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1월16일 '살생부 파문'이라고 뉴스 자막이 뜨더라. 내가 쓴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누가 만들어서 구주류들을 제거하려나 보다고 생각했었는데, 퇴근해 보니까 원본이 내 글이었다"며 언론의 갑작스런 조명에 놀라움을 드러냈다.
왕씨는 자신이 올린 글 때문에 집권당의 최고위원들이 연일 격론을 벌이고 민주당 윤리위원회가 자신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론내린 것에 대해서도 "어처구니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왕씨는 "내가 잘못한 것 같지 않다. 어머님께서도 '네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기염을 토했다.
왕씨는 사태가 확산된 배경에 대해서도 "구주류들이 처음에는 정보를 잘 아는 내부 인사가 만든 것으로 생각했다가 나중에 거기서 발을 빼기 쑥스러우니까 밀고 나가는 것 같다.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도 민주당 분란을 노리고 과잉반응한 것 같은데 나를 황당한 처지로 몰아넣었다"고 촌평했다.
왕씨는 인터뷰에 앞서 20일 오후 노하우 게시판에 '피투성이'라는 ID로 '지금 저의 심정'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왕씨는 원고지 37매 분량의 글에서 "도대체 노무현 지지자로서, 노무현 지지자의 시각으로 노무현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제대로 글도 못 올린다면 이것이 무슨 민주주의 국가인가?"라고 물음을 던졌다.
"게시판에 글도 못 올린다면, 무슨 민주국가인가"
왕씨는 경찰의 수사방침에 대해 "별로 안 떨린다"면서 "내가 잘못한 것 같지가 않다.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하고 있고, 언론에 나온 얘기를 집대성해서 쓴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왕씨는 "이번 건 때문에 정계은퇴를 하려고 했는데 네티즌들이 말려 정계은퇴할 생각이 없다"면서 "총선때까지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월급 130만원에 잡비를 월 7-8만원만 쓴다는 왕씨는 핸드폰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수수한 노동자였다. 왕씨는 기자의 질문에 쑥쓰러워하면서 단문으로 답했다.
다음은 약 1시간 동안 가진 왕씨와의 인터뷰 일문일답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 인터넷은 언제부터 했나.
"3∼4년 정도 됐다."
- 하루 몇 시간 정도 하나.
"4∼5시간 정도."
- 주로 어느 사이트를 많이 찾나.
"노하우 갔다가 오마이뉴스 갔다가 서프라이즈, 대자보 순으로 간다."
- 정치에 관심이 많나.
"많다."
- 어떤 점에서 그런가.
"노무현 당선자를 좋아했다. (내가 당선자에) 미쳐있는 것 같다. 소신이 강하고 기개가 있고…."
- 노무현을 직접 본 적이 있나?
"노 당선자는 작년 4월 인천 국민경선에서 직접 봤고, 대선때는 신촌, 여의도 유세에서 봤다.
노사모에는 2000년 5월 온라인으로 회원에 가입했고, 주로 인터넷만 했기 때문에 노사모 모임에 직접 나가본 일이 없다. 인터넷을 통해 지식이 많이 늘어났고, 정보에 대한 욕구도 대부분 해소된 느낌이다."
- 민주당 의원 '살생부'는 본인이 작성했나.
"맞다."
- 작성은 언제 했나.
"12월 25일 작성해 노하우 게시판에 올린 뒤 27일에 보강해서 올렸다."
- 왜 아이디를 '피투성이'라 했나.
"전투적으로 보이고 싶었다. 관심을 가지고 볼까봐..."
- 올린 뒤 반응은 어떠했나.
"별로 관심이 없었다. 재미로 자주 글을 올리니까 묻혀 가는 줄로만 알았다."
- 왜 근자에 와서 문제가 되고 있다고 보는가.
"그때 대선이 끝난 후라 게시판에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묻혔는데 갑자기 1월 16일 MBC 뉴스를 보니까 살생부 파문이라고 자막이 뜨더라. 내가 쓴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누가 만들어서 제거하려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퇴근해 보니까 원본을 보니 내 글이더라."
- 어느 날 글 한 편이 화제가 됐다. 기분은 어떤가.
"황당하기도 하고 기쁘다."
- 주변 친구들은 반응은 어떤가.
"인터넷으로 미친 척하더니 결국 사고를 치는구나라고 하더라.(웃음)"
"퇴근해서 원문을 보니 내 글이더라"
- 제목은 무엇이라고 달았나.
"살생부라고 달았다. '민주당 의원 살생부'라고 달았다."
- 일부 틀린 자료도 있지만 구체적인 팩트가 많다. 자료수집에 얼마나 걸렸나.
"신문을 자주 본다. 읽어본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인지 다 알지 않나. 모자란 것은 <오마이뉴스>를 참고했다. <오마이뉴스>에 세밀한 기사가 많다. 다른 신문에서 두루뭉수리 넘어가는데 <오마이뉴스>는 비판할 때 확실하게 비판하니 잘 알 수 있지 않나. 거의 <오마이뉴스>를 참조했다."
- 내용이 완전히 허구도 아닌데 왜 지금 반노파라는 의원들이 과민하게 나온다고 보는가.
"내가 볼 때 처음에는 '정보를 잘 알고 있는 당직자가 만든 것이다. 실무자가 작성한 것'이라고 말했는데 뻔히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 하는 것같다.
내가 다시 읽어봐도 유치하다. 당직자가 했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거기서 발을 빼기 쑥스러우니까 밀고 나가는 것 같다."
-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보나.
"그렇다. 뭐냐하면 정치개혁 논의가 활성화되는데 노 당선자에 압박을 하려고 이용해 먹는 것 같다."
- 언제 자신이 작성했다고 공개한 건가.
"그제 얘기했는데 노사모 사람은 믿더라. 그런데 민주당 사람은 믿지 않더라."
- 쓰는데 시간은 얼마나 걸렸나.
"두 시간 정도 걸렸다. 원래 알고 있는 것이 많았고, 유명하지 않은 사람 몇 명은 찾아봤다."
- 그 당시 의원들의 반응이 나오기도 했는데, 크게 문제될지를 알았으면 어떻게 했겠나.
"장영달 의원 평가는 잘못됐다. 장영달 의원을 3등 공신으로 분류했다. 원래 1등 공신을 줘야 했는데... 나는 이런 행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당선자 옆에서 사진 나오려고 붙어 있는 분들 말이다."
- 장영달 의원이 그렇게 했다는 말인가.
"계룡대 찾아가서 장성들 앞에서 어깨에 힘을 주는 것 같더라. 그리고 또 여수에서 발언을 이상한 것을 했다. 축구협회 부회장이고, 정몽준과 테니스도 치고…. 양다리 걸친 것 같았다."
- 전국구 의원이면서 후단협에 가담했던 장태완 의원을 3등공신에 올렸더라.
"장태완. 다른 사람은 노골적으로 나섰지만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는 것 같더라. 내가 쓴 글에 정치인으로서는 '꽝이다'는 말을 썼다. 소신이 없으니까."
- 역적·공신이라는 용어의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찾았나.
"용의 눈물을 보면서 '개국 공신'이니 하는 그런 것을 참조했다."
- 살생부도 그런가.
"살생부, 치부책 그런 말도 나왔다. 살생부에서 평가한 것은 대선 기간 동안만 주로 판단을 했지 그전에 그 사람의 경력을 넣지 않았다. 그걸 넣었다면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한나라당 살생부는 좀 미진한 것 같다"
- 한나라당판 살생부 떠돈다고 하는데 '모방범죄'가 많아지고 있다.
"그것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문제 많은 사람도 많지 않나. 그 분들도 지적해야 한다고 본다."
- 한나라당판 살생부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좀 미진한 것같다. 이번 문제가 아니었으면 정리를 했을 것이다."
-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 것으로 보이던가.
"나라면 한나라당 의원 전부를 망라해서 했을 것이다."
- 기초자료가 있나.
"기초자료는 없는데 얼굴을 알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지 않나. <오마이뉴스>를 뒤져서라도…."
- 한 네티즌이 재미 삼아 한 것인데 현실 정치인이 관련돼 있고 대선 후 논공행상도 관련돼 있고…. 이런 것들 때문에 호들갑을 떠는 것같다.
"나는 그 분들 보라고 쓴 것이 아니고 100∼200명 보라고 쓴 것인데 조선일보에서 이것을 엄청나게 확대 보도를 했다. 내가 알린 것이 아니라 조선일보가 사회문제화한 것이다. 조선일보의 공이다. 정균환씨는 사회문제화 됐으므로 고발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조선일보가 사회문제화한 것이다. 조선일보가 도표로 정리해서 통계까지 냈더라. 네티즌의 글이 하루에도 수천개 올라오는 글 중에 하나를 뽑아낸 것은 이해가 안 간다."
- 조선일보가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나.
"민주당에 좋은 일을 하는 신문은 아닌 것 같다. 민주당 분란을 노리는 것같다. 의원들이 그것을 알텐데 그러면서도 문제 삼는 것을 보면 이해할 수가 없다."
- 자신을 공개한 이유는 무엇인가.
"밝힌 이유는 어떤 당직자 최모씨의 이름까지 거명되면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것 같더라.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잘못했다면 감옥에 가더라도 가면 될 것 같다. 그리고 네티즌이 했다하면 오히려 쉽게 무마될 것같다. 친노 측에서 했다, 실무자가 했다고 하면 사태가 커질 것 같았다."
- 친노 사람과 교류가 있나.
"전혀 없다."
- 국민참여운동본부나 회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나.
"없다."
"살생부는 내가 알린 게 아니라 조선일보가 사회문제화한 것"
- 일부 언론으로부터 노사모의 공격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받을 것같은데.
"인터넷에 무책임하게 글을 올리고 하는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내가 쓴 글 정도는 애교로 봐 줄 수 있고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사모에 큰 피해를 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부풀린다고 보나.
"그분들이 인터넷 속성을 알면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 텐데, 모르기 때문에 과민 반응하는 것이다. 내 입을 틀어막는다고 제2, 제3의 살생부가 나타나지 않겠나. 벌써 업그레이드 살생부를 올리던데…."
- 작년까지는 선거가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올해에는 정치에 대한 관심의 거품이 빠지지 않았나.
"끝나면 덜할 줄 알았는데 반노들이 흔들고 하니까 관심이 계속 가더라. 중독인가 보다."
- 정치에 대해 유별나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있나.
"어렸을 때 87년인가? 김대중 대통령이 연금에서 풀려나 인천을 방문했다. 부평역에서 연설을 했다. 인파가 지금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많았다. 동원한 것도 아니더라. 그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 그 이후 어떻게 관심을 표출했나.
"옛날에도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대통령선거 유세장을 다 쫓아다녔다."
- 신문의 정치면을 다 보나.
"인터넷을 통해 다 본다."
- 종이신문과 인터넷신문을 보는 비율은.
"거의 조선, 동아, 중앙은 보지 않는다. 제일 싫어한다. 인터넷으로도 잘 안 본다. 그 기사에 대해 비판한 글을 보고 그 원문이 필요할 때 본다. 글 자체는 안 본다. 조중동 홈페이지에 가서 보거나 하지는 않는다."
- 최근 정치권의 정치개혁 움직임은 어떻게 보나?
"나도 잘 모르지만, 한나라당은 개혁 가능성이 없는 것같다. 거기 있는 분들은 '개혁파'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민주당도 인적청산이 없는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사람은 그대로 놔두고 법만 바꾸면 개혁이 될까?"
- 민주당 내 갈등은 어떤 형식으로 정리될까?
"민주당은 깨질 것이다. 이유야 어떻게 됐든 살생부 파문이 더욱 갈등을 부추긴 것같다."
- 철공소에 있는 직장 동료들은 이 사실을 아는가?
"잘 모른다. 8명 정도 되는 조그만 회사이고, 대부분 나이가 많고 내가 제일 막내다. 정치적 성향은 장세동 지지자가 많다. '쿠데타가 일어나서 세상이 확 바뀌어야 한다'는 말들이 많았다. 결국 내가 다 노무현 지지로 돌려놨다.(웃음)"
"풍자적으로 쓴 글... 정치인들 전부 다 발끈하는 게 더 웃겨"
- '제2의 앙마'로 보는 시각도 있다.
"벌써 여기저기서 만나자는 연락이 온다. 내일은 SBS 아침프로그램에 나가게 된다. 방송, 신문에서 연락오는 게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조중동과는 안 만나겠다. 조선일보 기자가 옆에서 다른 기자에 섞여 취재하더라도 '가라'고 하겠다. 이번 사건은 1회성 해프닝이라고 생각한다."
- 본인 생각보다 파장이 굉장히 커졌는데....
"애교로 받아들여주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풍자적으로 쓴 글에 대해 정치인들이 전부 다 발끈하는 게 더 웃기더라."
- 경찰에 고발한다고 하는데 지금 심경은 어떤가.
"별로 안 떨린다."
- 왜 그런가.
"내가 잘못한 것 같지가 않다.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하고 있고, 언론에 나온 얘기를 집대성해서 쓴 것뿐이다."
- 이번 건과 관련해 정식으로 검찰에 수사 의뢰되면 어떤 자세로 임할 것인가.
"내 소신대로 할 것이다. 여기서 말한 대로 할 것이다."
- 어머님이 알고 계시나.
"그렇다. 걱정은 하지 않으신다. 자세히 말씀 드렸다. 어머님께서도 이긴다고 생각하신다."
- 곧 결혼할 예정이라는데, 여자친구도 알고 있나.
"처음에는 걱정을 했는데 그래서 내가 '반노파를 제거하겠다'고 했다."
- 노하우 사이트에 "정계은퇴를 해야겠다"고 심정을 밝혔는데, 정말 정계은퇴를 할 것인가?
"본의 아니게 이 사건으로 '정계은퇴'를 해야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은퇴하지 말고 내년 총선을 준비하라고 한다.
내년 총선에서 특히 수도권, 충청권의 철새정치인들은 다 떨어질 것 같다. 나도 끝까지 한번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