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에서 조사한 '프로들이 뽑은 우리분야 최고 - 연극, 뮤지컬 부문에서 차세대 연출가 1위로 뽑혔다. 자신의 어떤 면이 차세대 리더로 뽑힌 이유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나라의 공통된 현상이기도 하지만, 연극계도 사실 혈연, 학연, 지연 등 여러 가지가 발목을 잡고 있다. 나 같은 경우, 그런 것에 조금이라도 자유롭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나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신선한 모양이다. 아마 그것이 평가를 받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 지금까지 공연 된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게 된 것이 좋은 희곡을 선택한 면도 적지 않다. 희곡 선택의 기준은 어떠한가?
"연극적으로 어떤 것을 표현할 것인가, 주제를 무엇을 삼을 것인가 생각해 보았을 때 인간을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데뷔한 지 벌써 9년 정도 되었다. 한번은 극단 공연보를 정리하다 보니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주제의 일관성이 있었다.
희곡 선택 기준은 인간탐구의 모습이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사회적인 현상, 여러 가지 정황들에 대해서 본질이 어떻게 변질되어 가고, 인간의 모습이 어떻게 변형되어 가는지 관심을 갖고 선택한다. 그러다 보니 인간에 대해 많이 다룬 것 같다."
- 작품을 연출할 때 어떠한 면을 중요시 하는가?
"주제적 측면은 조금 전 이야기했던 인간이라는 측면이다. 몇 일전 일본의 ‘니시도’라는 평론가가 <인류최초의 키스>를 보고 갔다. 그 사람은 한국연극을 굉장히 많이 보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단적으로 이렇게 얘기하더라.
‘한국에서 보는 여러 가지 연극 중에서 김광보의 연극이 다른 연극과의 다른 점은 배우가 돋보이는 연극을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연출자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한국 연극은 연출 중심의 풍토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김광보라는 연출자가 펼치는 연극에서는 연출이 너무 앞서기 보다는 무대 위에서 배우가 돋보이는 연극을 한다’라고 얘기를 하더라.
제가 보기에는 아무리 주제성도 좋고 여러 가지 방법적인 측면도 다 좋아도 연극에 있어서 연기자가 중심에 설 때 올바른 연극이 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연기자가 중심이 되는 연극을 해야 한다."
- <인류최초의 키스>를 보면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살아있는 배우의 모습이다. 배우 선택의 원칙이나 특별한 연기 지도방법이 있는가?
"사실 여타의 다른 연극을 많이 보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대학로 연극배우들을 잘 모른다.
제가 가진 편견중 하나가 연기자는 백지장 한 장 차이로 잘 할 수도 있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연극자체가 100% 프로페셔널 한 상태가 아니어서 아직까지는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한, 연극정신이 앞서는 연극을 많이 한다. 그래서 배우를 선택하는 기준 중 하나가 얼마나 투철한 연극정신을 소유하고 있는가이다.
그 다음, 연기 메소드이다. 연기 메소드에 관한 고민을 오랫동안 해왔다. 소위 무대 위에서 표현되어지는 연기의 표현방법이라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것은 연출자의 숙제 중 하나이다. 나 같은 경우, 이렇게 저렇게 코피도 터지기도 하고, 얻어 맞아보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인류최초의 키스>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연기의 표현 방법이다. 자연스러운 연기는 TV 연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대 언어와 갇혀있는 TV 또는 영화의 연기 방법은 좀 다르다. 연극에 있어서도 TV드라마와 영화와는 다른 일상성을 회복해야 한다.
어떤 시행착오에 의해 변형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런 화두를 두고서 연기자들에게 그런 연기를 요구하고 있다."
- <헨리 4세>에서의 여무영, <인류최초의 키스>에서의 주진모와 같이 연출자보다 나이 많은 연기자들과 같이 공연을 했다.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는가?
"불편함은 전혀 없다. 젊은 연출자와 나이든 배우들의 관계가 조금은 껄끄럽고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하는데 제가 만나본 나이든 연기자분들을 통해 이들의 갈구, 갈망을 알아냈다. 오히려 어린 연출자들이 나이가 많은 선생님 뻘 되는 연기자들에게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된다.
연출자와 배우의 관계는 사실 상호간의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 하는 관계이다. 연기자와 연출자의 관계는 어떤 누군가가 우위에 있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오히려 나이든 선생님 뻘 되는 연기자들은 적극적인 연출자라고 얘기할 수 있다. 많은 것들을 토론하기를 좋아하고 많이 지적해 주었을 때 오히려 더 좋아한다. 그런 경험을 통해 지금 같은 경우는 오히려 나이 드신 연기자분들과 더 많이 작업을 해보고 싶다."
- 동년배의 연출가 중 눈여겨 볼만한 사람이 있다면.
"역시 박근형 형이다. 사람들이 박근형과 김광보를 많이 비교한다. 연극적 태생은 두 사람이 비슷하다. 앞서 말씀드린 것 같이 혈연, 학연, 지연에 관계없이 자유로운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고졸 출신의 대통령이 되었지만 아직 학력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나와 근형이 형은 연극판에서 드문 고졸출신의 연출자이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을 많은 사람들이 독특하게 본다.
연극적 배경과 태생은 비슷한데 연극의 결과물은 판이하게 다르다. 아무리 내가 일상성을 무대 위에서 펼친다고 하더라도 내 연극은 다분히 연극적이다. 그런 반면에 박근형 형은 일상성을 무대 위에 펼치는데 그야말로 일상을 무대 위에서 그대로 보여준다. 그것이 박근형 형과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어차피 비슷한 동년배의 세대, 같은 386세대이다 보니 이야기하는 주제적 측면은 비슷하다. 근형이 형은 극사실의 일상성을 통해 인간을 표현해 낸다."
- 박근형씨 같은 경우 극작을 병행한다. 극작도 같이 할 생각은 없는가?
"극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된다. 98년도에 극작은 아니고 각색을 했었다. 박상륭 선생의 소설 <뙤약볕>을 가지고 연극을 했다. 그때 제가 깨달은 것이 극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 사실은 자기 고백이다. 그런데 지금 극작가들 중에는 섣불리 글을 쓰는 사람이 많다. 나는 아직도 창피하게 기억하는 것이 <뙤약볕>을 각색해서 첫 번째 대본을 배우들에게 내 놓았을 때의 가슴 두근거렸던 기억이다. 내 고백을 다른 사람이 읽는다는 것이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연출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는데도 정말 발가벗겨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 글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고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내공의 깊이가 아직까지 덜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에는 내가 얘기하고 싶은 주제를 내가 써서 내가 연출해보고 싶다는 욕망은 끊임없이 가지고 있다."
- 연출작 대부분 창작극이다. 세계 명작을 무대화 할 생각은 없는가?
"본의 아니게 창작극을 많이 했다. 이것이 한국연극의 문제점이다. 한국연극의 지원체계 자체가 창작극 우선순위이다. 문예진흥기금을 신청해도 그렇고, 문광부특별지원금을 신청해도 그렇고, 공연창작활성화지원기금을 신청해도 모든 것 다 1순위가 창작극이다. 아직까지 연극적 환경 자체가 미천하다보니 지원금을 받지 않으면 연극을 올리기 힘들다. 한편의 연극을 올리기 위해선 문예진흥기금이라든지 여타의 지원금을 받아야지 연극을 할 수 있는 아이러니가 있다. 그렇다 보니 본의 아니게 창작극을 많이 하게 됐다.
사실 세계명작을 해보고 싶다. <헨리4세>를 서울시극단에서 해봤지만, 셰익스피어도 해보고 싶고, 베케트도 해보고 싶다. 여러 가지 욕심은 많다. 그런데 창작극 아니면 지원금을 안 주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창작극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레파토리 개발이 힘들다. 지원금 체제라는 것이 창작극 위주, 초연 위주란 말이다. <인류최초의 키스> 같은 경우 두 번째 공연인데 한 공연을 하고 재 공연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힘들다. 한국연극의 현실 자체가 그러다보니 좋은 작품 하나를 계속 다듬어서 명작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은 불가능하다.
그런 측면에서 창작극이 활성화 되었는데 80년대, 90년대 초까지는 당위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제도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본다."
- 레파토리화 하고 싶은 작품이 있는가?
"지금 공연 하고 있는 <인류최초의 키스>이다. 이것은 담론자체가 일반 관객이 보기에는 그렇게 거대해 보이지 않다. 그런데 사실 거대한 담론을 담고 있다. 우리가 통시성이라고 얘기하기도 하고 공시성이라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인류최초의 키스>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 가서도 먹히는 얘기이다. 국가라는 기관이 존재하고 그것에 상응하는 개인이라고 하는, ‘나’라는 존재가 국가 기관의 한 부속품을 이룰 때, 어느 국가에서도 이 이야기는 먹힐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저는 이 이야기가 한국적 상황에서도 2020년까지 가더라도 꾸준히 이야기 할 수 있는 주제거리가 된다고 본다. 그래서 <인류최초의 키스>는 지금 계획으로는 매년 겨울에 레파토리로 해볼 까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역시 이것도 2003년 기금신청을 했는데 기금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겨울에 하기가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하나 더 있다면 <종로고양이>라는 작품도 레파토리로 개발해보고 싶다."
- 영향을 준 연극인이 있다면?
"중요한 고비에서 몇 분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연극적 태생이 부산이다. 부산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적지 않게 이윤택 선생의 영향을 받았다. 그 다음에 가장 큰 변화의 전기를 마련해 주신 분이 손진책 선생이다. 손진책 선생의 연극을 보고 쇼크를 받았다. 소리 지르지 않고도 연극이 된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가 96년이었다.
내가 94년에 연출로 서울에서 데뷔했다. 94년, 96년, 최소한 2000년도 <오이디푸스-그것은 인간>까지도 연극은 연극다워야 한다는 무식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소리 지르고 과하게 표현하고 하는 것이 연극인줄 알았다. 그것에 브레이크를 걸어주고 또 다른 방법을 제시해 준 분이 손진책 선생이다. 그 분 연극을 보면서 느꼈던 것 중 다른 하나가 여백이다. 우리가 동양적 미학중 하나가 여백이라고 하는데 여백을 알게 되었고, 아까 말씀드린 데로 소리 지르지 않고도 연극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류최초의 키스>를 하는 부분에 있어 또 하나 큰 깨우침을 준 것은 레프 도진이라고 하는 러시아 연출자이다. 재작년 LG아트센타에서 <가우데아무스>라는 작품을 공연했는데 우연찮게 그 공연을 보게 됐다. 1시간 50분짜리 러시아 군대 이야기이이다. 굉장히 무거운 주제였다. 레프 도진이 나에게 깨우침을 준 것은 뭐냐 하면 우리가 배웠던 연극은 ‘play’ 놀이라는 것이다. 놀이로서 연극적 기능을 깨우쳐 주었다. 1시간 50분짜리 연극을 1시간 40분 동안 신나게 놀고 나머지 10분 동안 주제를 때리는데 그 감동이 배가되면서 눈물이 다 나올 정도였다.
그 연극을 보고 <인류최초의 키스>를 만들었다. 이 연극도 굉장히 무거운 주제다. 사람이 죽이고 하는 굉장히 무거운 주제를 전달방법을 조금 다르게 선택했다. 그렇게 만든 것이 <인류최초의 키스>이다."
- 올해 계획이 어떻게 되는가?
"잘하는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올해 예약되어있는 것이 6편이다. 물론 잘하는 짓이 아니다. <인류최초의 키스>가 2월 2일날 끝난다. 2월 5일부터 연습 들어가는 <프루프>(proof)라는 작품을 3월 22일 올리고, 4월 초에 <산소>라는 작품을 올리고, 5월 25일에 국립극장의 <당나귀들>이라고 하는 작품을 올리고, 9월 달에 <해가 뜨면 달이 지고>라는 창작극을 하나 하게 될 것 같고, 11월쯤에 <코펜하겐>이라는 아주 좋은 작품을 하게 될 것 같고, 마지막 12월에 우리극단의 작품, 역시 고연옥씨 작품인데 <웃어라 무덤아> 라는 작품을 하게 될 것 같다. 지금 예약된 작품이 6편이다."
- <오마이뉴스>에 한 말씀 부탁드리면.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날을 나는 기억한다.
모 사람이 대통령 지원을 중단했을 때, <오마이뉴스>에서 계속 속보를 내보냈다. <오마이뉴스>의 맨 마지막 속보를 기억한다. 그것이 5시 삼십 몇 분쯤 됐었다. ‘여러분 이제 제발 주무십시오’ 그것이 <오마이뉴스>의 마지막 속보였다.
인터넷을 자주 하다 보니 <오마이뉴스>는 굉장히 가깝게 느껴진다. <오마이뉴스>가 관심을 보내 주어서 정말 고맙다."